목숨걸고 중조산을 지켜 싸운 당회원

2019-07-16 15:51:15

강천혁명렬사릉원은 운남성 옥계시 강천시 남쪽에 위치해 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노라면 ‘혁명렬사 영생불멸하리’라고 새긴 기념비가 우뚝 솟아있고 기념비 뒤쪽의 왼쪽이 바로 항일명장 당회원의 묘지가 있다.

당회원은 자가 불천이다. 1886년에 출생했으며 운남 강천사람이다. 1911년 운남륙군강무당을 졸업하고 운남부대에 가입했다. 선후로 패장, 련장 등 직을 력임했다. 1930년 제12사 부사장 겸 제35려 려장을 맡았다. 1932년 제12사 사장을 맡았다. 1936년 10월에 제3군 부군장을 맡았다.

당회원 렬사

1937년 전면적 항일전쟁이 폭발한후 당회원은 명령을 받고 북상하여 하북성 서부일대 및 산서성 동부, 남부 일대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1937년 가을 제3군 군장으로 승진했다. 1938년 명령을 받고 부대를 거느리고 산서성 남부 중조산으로 들어가 싸웠다. 1941년 5월, 일본군은 10여만 병력을 집결시켜 세개 로선으로 나뉘여 중조산에 침범했다. 당회원의 소속부대는 온유촌부근에서 일본군에 포위되였다. 당회원은 장병들을 거느리고 거듭 돌격하면서 있는 힘을 다해 포위를 돌파하였다. 하지만 나중에 사방으로 적들의 공격을 받는데다 탄알이 거덜이 나 소속부대 장병들 거의 다 부상당하고 사망했다.

궁지에 빠졌을 때 당회원은 유서를 썼다. “이 몸은 나라의 은혜를 받았고 3군의 중임을 떠메였는데 현재 전사들 거의 다 부상당하고 사망했으며 상황이 악렬하다. 3군의 두개 부대는 련계가 끊어졌다. 이 몸이 죽은후 총사령과 참모장이 3군의 난국을 뒤수습해주기 바란다. 항전을 계속 한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

5월 12일, 일본군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당회원은 스스로 자결하였다. 그때 나이는 55살이였다. 1942년 국민정부는 당회원을 륙군 상장으로 추서했다.

1990년, 당회원의 유골은 산서로부터 강천혁명렬사릉원으로 이장되였다. 현재 해마다 연 2만여명이 이곳을 찾아 애국주의교육을 받고 있으며 여러 가지 방식을 통해 죽어도 중조산과 생사를 같이 하겠다고 다짐하고 싸우다 희생된 항일영웅렬사 동회원을 기념하고 있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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