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의 항일렬사 진중주

2019-07-22 08:53:31

강소성 염성시 건호현 초언구 중주초급중학교에 가면 교무청사 앞의 중심화원에 진중주 렬사의 반신조각상이 있다. 학생들은 조각상 앞에서 입단선서식을 진행하고 중주상 수여식을 가지면서 진중주 렬사의 영웅사적도 귀담아듣군 한다.

진중주는 자가 퇴지이며 강소 건호사람이다. 1906년 10월 건호현 초언구향 언동촌의 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났으며 1925년 상해전차회사에서 일했다. 1927년 북벌군이 강소에 진입하자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국민당지부와 농민협회조직 건설에 참여했으며 지방 토호렬신들과 투쟁하였다. 1927년 대혁명이 실패한 후 그는 남경에 가서 강소경관학교에서 공부했다. 1928년에 황포군관학교 제6기생으로 입학했으며 1931년 졸업한 후 국립중앙대학, 천진 북녕철도, 강소 진보철도 등 곳에서 사업했다.

진중주 렬사

1937년, 전국적인 항일전쟁이 폭발한 후 진중주는 국민정부 군사위원회 전시특종퇀 제3총대 소장 퇀장으로 위임되였고 대아장전역에 참가했다. 1938년말, 로소환(산동, 강소, 안휘)변구 유격총지휘부 제4종대 사령을 맡고 강소성 북부에서 항일활동에 종사했다. 그는 군대의 문화선전을 아주 중요시했으며 부대에서 정치공작대를 조직하고 《전시보도》, 《신군보》 등을 편집, 출판했으며 당지의 중학교 사생들과 함께 연극, 노래를 조직해 국공 량당의 합작과 항일을 선전했다. 1939년 가을, 그는 부대를 거느리고 강소 태주에 진주했고 신사군과 배합해 일본군과 유격전을 벌였으며 매복하고 있다가 일본군 함정 두척을 격침시켰다.

1941년 6월, 일본군과 괴뢰군은 여러 갈래로 나뉘여 진중주가 소재하고 있는 로소환변구 유격총지휘부를 ‘소탕’하고 그 주요 예봉을 진중주의 제4종대에 돌렸다. 적들의 기세가 사납고 맹렬하여 제4종대는 제때에 전이하지 못해 일본군에 포위되였다. 진중주는 부대를 거느리고 싸우면서 후퇴하다가 흥화 무가택 일대에서 일본군과 괴뢰군한테 가로막혔다. 전투 과정에 진중주는 총탄을 맞고 장렬하게 희생되였는데 그때 나이는 35살이였다.

진중주가 희생된 후 잔인한 일본침략자는 그의 머리를 잘라갔다. 당지의 백성들은 진중주의 시체를 납관 발인하여 매장한 후 ‘진중주 장군’이란 글을 쓴 패말을 꽂아놓았다. 1945년 항일전쟁이 승리한 후 진중주는 국민정부에 의해 중장 칭호를 추서했다.

1987년, 강소성인민정부의 비준을 거쳐 혁명렬사로 추인되였으며 같은 해 염성시인민정부는 진중주 렬사 묘소를 태주로부터 염성시렬사릉원으로 이장했다. 2014년 9월, 진중주는 첫패의 300명 저명한 항일영웅 렬사, 영웅군체 명부에 기록되였다. 진중주 항일영웅렬사를 기념하고 애국주의정신을 고양하기 위해 건호현인민정부는 초언초급중학교를 ‘초언구중주초급중학교’로 명명했다. 2006년 초언구중주초급중학교에 진중주력사자료진렬실을 설립했다.

해마다 청명절이면 초언구 중주초급중학교는 전교 사생들을 조직해 진중주의 출생지 언동촌 렬사의 의관총(衣冠冢)을 찾아 성묘한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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