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서 유일한 적후 비밀 항일자위대
장인강 십리평 산속 첫 목재판 습격은 아주 성공적이였다. 문두만의 담력과 지휘재능이 대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이어놓았다. 그들은 평소엔 자기 마을들에서 량민백성으로 생활하면서 포수의 역할에 소홀히 하지 않았다.

2019-07-22 09:15:58

우리 민족의 무명영웅들-46

1961년, 문두찬 렬사의 셋째 삼촌 문창렬 회갑사진. 사진 뒤줄부터 좌1이 문두찬 렬사의 남동생 문두만, 좌5가 문두만의 둘째 아들 문명학, 좌6이 문두만의 맏아들 문명훈, 우2가 문두만의 안해 리순선. 앞줄 좌1 남자애가 넷째 문명전, 녀자애가 막내딸 문영해, 우1이 큰딸 문명해, 우2가 셋째 문명호. (사진 문명호 제공)

1

지난 5월 9일부터 5월 18일까지 한국행에서 거의 날마다 항일렬사 문두찬의 조카들인 문명호, 문명전과 어울리는 기회를 가지였다. 낮이면 서로 자기 일에 충실하다가도 아침저녁이면 흔히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주고받군 하였다. 이야기 거개가 이들의 아버지인, 문두찬 렬사의 친남동생 문두만씨를 둘러싸고 이어졌다. 더우기 1932년 겨울 친누나 문두찬이 그 시절 화룡현 장인강에서 장렬히 희생된 후 문두만씨가 그 원쑤를 갚고저 비밀리에 민간 항일자위대를 조직하여 일제놈들과 싸운  이야기는 우리 조선족력사 연구가들도 모르는 처음 듣는 생생한 이야기였다.

문두만의 생생한 이야기는 근 90년 전인 1932년 겨울로부터 시작된다. 이해 1932년 음력 11월 5일(양력 12월 2일), 공청단평강구위 소선대 총책임자인 친누나 문두찬이 장인강 도대구에서 시아버지 리언삼과 같이 장렬한 최후를 마치였다. 그해 문두찬은 21세의 한창 피끓는 나이였고, 장인강 아동단 단장으로 활동하던 문두만은 겨우 16세였다.

장인강 도대구도 1933년 봄에 집단부락이 세워지면서 적들의 통제가 말이 아니였다. 그렇다고 맥을 버릴 수는 없었다. 1934년 봄인가 어느 날 문두만은 자기 또래인 문두산을 조용히 불렀다. 문두산은 문두만 아버지의 다섯째 동생 즉 막내동생의 아들이고 두만이와는 사촌 관계이지만 두살 즈음 일찍이도 부모님을 잃어서 두만이랑 같이 셋째 맏아바이 문창렬 집에서 자라게 되였다.

“두산아, 난 아무래도 이렇게 억눌려 지낼 수는 없어. 두찬 누나의 원쑤를 갚기로 맹세했지. 이제부터 두찬 누나를 죽인 원쑤놈들을 하나하나 죽여버릴 테야.”

“그래야지. 나도 따라 나설게. 한데 어떻게 할 텐데?”

그들 둘의 이야기는 단도직입적으로 한곬으로 흘렀다. 문두만은 누구도 모르는 비밀 자위대를 조직하는 형식이라며, 뜻을 같이하는 장인강과 어랑촌, 맹산촌, 천보산 쪽의 미더운 포수들을 중심으로 조직할 것이라고 자기 속타산을 터놓았다. 그날이 지나고 한동안 지나자 문두만을 대장으로 하고 문두산을 부대장으로 하는 10여명 비밀 항일자위대가 무어졌다. 모두가 항일렬사의 자제들이 아니면 공산당의 영향하에서 항일에 나섰던 그제날 아동단원들, 소선대원들이고 포수 출신들이였다.

문두만이 조직한 항일자위대는 지금까지로 보아 연변에서의 지방 당조직과 유격대, 여러 혁명단체들이 전무한 현실에서 고고성을 터친 연변에서의 첫 민간 비밀 항일자위대로 된다. 이 항일자위대의 첫 행동은 장인강에서 북쪽으로 20리쯤 되는 십리평 뒤 산 속 목재판 습격으로 시작되였다. 목재판에는 일본놈 경찰 5~6명, 그 앞잡이 놈팽이 두어놈 등 7~8명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어느 날 모두가 명포수로 무어진 항일자위대 10여명은 급한 지령을 받고 십리평쪽 목재판 부근으로 모여들었다. 자위대는 문두찬의 통일지휘하에서 즉각 3개 조로 나뉘였다. 이어 목재판 놈들의 병력을 몇곳으로 분산시키는 목적이 이루어졌다. 이어서 목재판 로동자들 속에 끼이는 척하다가 속전속결의 통쾌한 섬멸전으로 7~8명 모두를 삽시에 황천객으로 만들어버렸다.

좌1이 문두만의 셋째 아들 문명호, 우1이 넷째 아들 문명전, 가운데 분이 문두만의 안해 리순선. (사진 문명호 제공)


문두만의 5자녀 사진. 뒤줄 왼쪽부터 둘째 문명학, 셋째 문명호, 넷째 문명전. 앞줄 왼쪽부터 큰딸 문명해, 막내딸 문영애.

2

목재판과 그 주변의 집단부락들을 지켜선 적들과 그 앞잡이 무장자위단놈들은 간이 콩알만해졌다. 산속 항일부대들이 신출귀몰로 일본놈 경찰들을 요정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의식적으로 퍼뜨린 소문이였으니 그 덕에 문두만의 항일자위대원들은 산속에 무기를 감추어두고 소속 마을과 집단부락들에 돌아가도 적들은 아무런 낌새를 차리지 못하였다.

장인강 십리평 산속 첫 목재판 습격은 아주 성공적이였다. 문두만의 담력과 지휘재능이 대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이어놓았다. 그들은 평소엔 자기 마을들에서 량민 백성으로 생활하면서 포수의 역할에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두만은 그들과 달랐다. 누나 문두찬 등의 원쑤를 갚으며 적들을 흔적 없이 타격하자면 적들 속에 박아놓을 내선이 필요했다.

그 시절 평강벌 투도구는 간도 일본총령사관 투도구령사분관이 자리한 곳이여서 이곳의 령사분관을 잘 리용할 필요가 있었다. 마침 투도구에는 령사분관 나부랭이들이 잘 다니는 음식점 하나가 있고 음식점에서 경영하는 꿩고기가 동네방네에 소문이 났다. 령사관 놈들은 꿩고기 생각이 나면 이 음식점으로 모여들었다. 문두만은 적정을 잘 헤아린 데 토대하여 이 음식점에 내선을 박아두었다. 문두만의 6촌 형님이고 장인강 항일렬사 문창룡의 매제인 박필구였다. 평소 박필구가 좀 모자라는 사람처럼 행동하니 령사관 놈들은 꼬물만한 의심도 가지지 않았다.

박필구가 투도구 음식점을 기지로 내선으로 움직이자 룡정 쪽 적들 동태, 투도구, 이도구, 삼도구 쪽 동태가 솔솔 흘러나왔다. 문두찬 희생과 관련되는 투도구령사분관 경찰서 마병 4명이 아동을 거쳐 장인강 집단부락으로 올라간다는 정보가 비밀경로를 통해 장인강 문두만에게 전해졌다. 어느 날 문두만은 비밀경로로 항일자위대를 조용히 장인강 부근 청룡의 가파른 바위굽이에로 불렀다.

이윽고 적 마병 네놈은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거들먹거리며 아동을 지나 청룡 아래 바위굽이에 이르렀다. 명포수들 명사격으로 마병 네놈이 찍소리도 못하고 말에서 허망 떨어졌다. 적들은 또 저들 마병 네놈을 잃었지만 너무도 번개 같은 군사행동에 가리워 문두만네 항일자위대 소행임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산속에서 신출귀몰하는 항일부대의 소행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였다.

박필구의 정보에 의한 마병 처단이였다. 그 후 어느 날 룡정의 총령사관에서 악질순사 한놈이 올라왔다. 그자는 꿩고기를 무척 좋아하는 투도구령사분관의 순사놈들과 같이 박필구가 일하는 음식점을 찾았다. 총령사관에서 왔다는 순사놈은 문두찬 렬사 살해 때 앞장섰던 놈이였다. 항일자위대에 미처 알릴 수 없는 박필구는 그자들이 먹게 될 꿩고기국에 아무도 모르게 독버섯을 넣었다. 결과 총령사관 순사놈은 즉사하고 다른 순사 한놈은 번드러졌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3

그번 독살사건으로 하여 투도구 음식점은 적들의 수차 고초를 겪어야 했지만 적들은 의연히 결정적인 단서를 쥐지 못하고 흐지부지해지고 말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장인강과 그 일대를 중심으로 하던 비밀 항일자위대는 그 대원들 구성에서 투도구와 광동, 비암, 룡정, 개산툰 쪽으로 뻗어갔다. 따라서 간도 일본 총령사관 놈들이 자주 드나드는 룡정의 한 음식점에도 문두만이 파견한 한 녀성내선이 자리 잡았다. 그리하여 룡정과 개산툰 사이, 룡정과 투도구 사이에서도 수차례 적 기습사건이 벌어져 적들을 오리무중에 빠뜨려놓기도 하였다. 다만 세월 속에서 그 내막을 더듬을 수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렇게 여러해가 흐르면서 10년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그 세월 문두만과 그가 이끄는 비밀 항일자위대에 의해 장인강일대와 투도구일대, 룡정 일대에서는 잔인한 일본 경찰들과 그자들 앞잡이들이 뻐드러졌지만 교활한 적들조차 번마다 단서 하나 잡아내지 못하였다.

서울과 연변에서의 문두만 자제분들 문명호씨와 문명전씨 그리고 이들의 둘째 형님 문명학씨를 통해, 이들 형제가 또 장인강 출신들, 그제날 항일자위대 출신 자녀들을 통해 지금까지 항일자위대 20여명중 10여명의 이름과 출처가 밝혀졌다. 그들 10여명은 아래와 같다.


문두만 대장

문두산 부대장, 문두만 사촌동생

문화동 문두만 사촌형

문수철 문씨 종친

문재일 문씨 종친

문석수 문씨 종친

리한봉 문두만 처형

리진옥 문두만 처제 남편

최포수 장인강 십리평 문두만 친구

박포수 장인강 맹산촌 문두만 친구

리포수 장인강 청룡촌 문두만 친구

강포수 장인강 봉의동 문두만 친구

박필구 장인강 문창룡 렬사 매제

배만수 약수동 부근 아동촌

김동춘 서성 와룡촌


이들 항일자위대 대원 10여명외 투도구일대와 룡정일대 자위대원들은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문두만과 그가 이끈 항일자위대는 절대적인 비밀행동대여서 이들 항일자위대 대원들외 어느 가족에서도 알지 못하여 전해지지 못했다. 세상은 이들 항일자위대를 알지 못하였고 그 어떤 력사기록조차 남기지 못하여 전해질 수조차도 없었다.

필자가 문두만과 그의 항일자위대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올 6월 서울에서였다. 항일렬사 문두찬의 남동생 문두만의 자제분들인 문명호, 문명전씨와 조석으로 어울리면서 항일자위대 그 조직과 그 활동내막들이 밝혀지기 시작했으니 그 취재는 서로의 통화형식으로 7월에도 계속 이어졌다.

알고 보면 술을 즐기는편인 이들의 아버지 문두만씨는 술이 과하면 늘 “나가자 나가자 싸우러 나가자…” 혁명가요를 부르면서 지난 30대 중반과 후반, 40년대 해방에 이르기까지 일제놈들을 소리없이 해버리던 자위대 옛말을 들려주기가 일쑤였다. 자연히 어머니 리순선에게서도 비밀자위대 이야기를 들었지만 희생돼야 중요하고 희생돼야 렬사인 줄 알았지 아버지와 같은 자위대 거사가 그토록 중요한 우리 조선족 항일사의 한페지였음을 알지 못하였다.


4

1945년 8월 일본이 무조건 투항을 선포하였지만 장인강에서 북으로 20리쯤 떨어진 산속 목재판의 일본경찰 근 10명은 투항할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문두만은 이자들을 곱다랗게 일본으로 돌려보낼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즉각 공개적으로 10여년을 견지해온 비밀 항일자위대원들을 이끌어 목재판을 겹겹히 포위하였다. 일본경찰놈들은 별수 없이 두 손을 쳐들었고 포승줄에 묶이였다.

헌데 뜻밖의 일이 생겨났다. 체포된 놈들은 모두가 죽어도 항복하려 하지 않는 놈들이였다. 목재판을 떠나 내려오는 도중 길가에 우물이 있었는데 우두머리인 듯한 놈이 뭐라고 지지벌거리자 이자들은 우두머리를 앞세우고 하나 둘 모두 우물 속에 뛰여드는 자결을 선택하였다. 말 그대로 너무도 뜻밖의 일이였다. 이 우물을 두고 두가지 설이 공존한다. 하나는 장인강 집단부락인 봉의동마을 우물이라는 설과 다른 하나는 십리평과 장인강 구간 길가 우물이라는 설이다.

1945년 8.15와 더불어 이들 비밀항일자위대 부대장 문두산은 총을 메고 연변의 토비숙청에 뛰여들었다. 그러다가 1945년 그해 11월 15일에 토비놈들에게 피살되니 해방전쟁 렬사다. 문두산은 해방된 강산에서 희생된 비밀항일자위대 첫 대원으로 알려졌다.

문두만은 장인촌 첫 민병대장으로 활동하다가 투도구에 내려가 구무장부 일군으로 뛰였다. 그러다가 항미원조로 지원군에 참가했고 전투에서 부상당해 1952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본인의 희망과 조직의 배려로 문두만은 그 시절 화룡현 서점 꾸리기에 나서며 서점 책임자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같이 그는 화룡, 투도, 복동 등지에 서점을 꾸리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마을들이 있는 곳마다 여러가지 책들을 문전송달하다가 외진 산속에서 호랑이를 만나 고생한 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 로력적 성과와 기여가 인정을 받아 문두만은 성과 자치주의 로력모범으로 되여 북경에 가 당과 국가 지도자들의 접견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던 그는 1963년 5월인가 급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니 그때가 47세였다. 7살 차이인 안해 리순선씨는 40세이고 자녀 6남매가 주렁주렁하니 맏이 문명훈이 22살, 둘째 문명학은 19살, 누나 문명해가 14살일 때 문명호가 11살, 문명전이 9살, 녀동생 문영애가 겨우 6살이였다.

항일자위대원 20여명 가운데서 해방 후 흐름을 알 수 있는 이는 문두만과 문두만의 사촌 문두산이고 그외 문두만씨 처제 남편인 김진옥이 후날 조선으로 나가고 인민군 퇀장으로 근무했다는 것외에 다른 자위대원들의 해방 후 사실은 아직 모르고 있다.

지난 30년대와 40년대 험악한 연변의 적후에서 활동한 문두만과 그의 비밀적이고 민간적인 항일자위대, 그들 자위대원들의 빛나는 항일업적은 우리 연변의 항일투쟁사, 적후 항일운동사에 기록되여 길이 전해질 것이다.

  •  
  • 많이 본 기사
  • 종합
  • 스포츠
  • 경제
  • 사회

주소:중국 길림성 연길시 신화가 2호 (中国 吉林省 延吉市 新华街 2号)

신고 및 련락 전화번호: 0433-2513100  |   Email: webmaster@iybrb.com

吉ICP备09000490号 | 吉新出网备字005号 | Copyright © 2007-2017

吉公网安备 22240102000014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