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군 항일명장 라충의

2019-08-10 14:42:59

백년 력사의 양양시소명소학교에는 영원히 퇴색하지 않는 혁명이야기가 있는데 바로 항일영웅 라충의에 관한 이야기이다. 양양시에서 나온 신사군의 항일명장 라충의의 사적은 지금까지도 후대들을 격려하고 있다.

라충의 렬사

라충의는 1907년에 출생했으며 일찍 진보적 학생들의 운동에 참가했다. 1927년에 풍옥상부대에 참군했으며 1931년 국민혁명군 제26로군을 따라 강서로 갔고 그해 12월에 녕도봉기에 참가했으며 중국로농홍군 제5군단에 편입되였다. 라충의는 용감하게 싸웠고 여러번 공을 세워 반장으로부터 패장, 련장, 영장으로 승진했고 후에 서금으로 가서 홍군학교에서 공부했다.

라충의는 1932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1933년부터 복건군구 사령부 작전과 과장, 련(성)녕(화)(룡)암군분구 참모장을 맡고 중앙쏘베트구역 제4차, 제5차 반‘포위토벌’에 참가했다. 1934년 10월, 중앙홍군 주력이 장정을 시작한 후 라충의는 복건군구 제3분구 부사령원 겸 참모장, 민서남 제1작전분구 사령원, 민서남유격대 제1종대 사령원, 민서인민항일의용군 사령원을 력임하고 민서남지역의 극히 간고한 환경에서 3년 동안 유격전쟁을 견지했다.

1940년 7월, 신사군 강남주력이 북에서 장강을 건넌 후 라충의는 다시 설립된 강남지휘부 지휘를 책임지고 소남에 남아 적후 항일유격전쟁을 견지했으며 부대를 지휘하여 일본군과 괴뢰군의 ‘소탕’, ‘숙청’ 그리고 국민당 완고파군대의 진공을 여러번 물리쳤다.

1941년, 환남사변 후 라충의는 부대를 거느리고 간고하게 싸웠으며 포위돌파 후 북으로 철수한 신사군 병사들을 맞이했다. 서지당전투에서 신혼한 안해 류조진이 희생되였다. 그해 4월, 라충의는 신사군 제6사 참모장 겸 16려 려장을 맡고 부대를 거느리고 구용, 단양, 무진, 담수 지역을 종횡무진하였으며 부대를 지휘하여 황금산지역에서 국민당 완고파부대와 싸워 적들의 공세를 꺾어놓았다.

1941년 11월 28일, 일본군과 괴뢰군 3000여명이 률양 당마촌을 습격하자 그는 소남항일근거지 당정군 간부들을 안전하게 전이시키기 위해 16려의 정치위원 료해도와 함께 부대를 거느리고 적들과 필사적인 싸움을 전개하다가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그때 그의 나이는 34살이였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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