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바쳐 혁명에 참가한 신예

2019-08-12 08:41:19

산동성 제남시 장구구에는 렬사의 이름으로 명명된 중학교-신예중학교가 있는데 이 학교의 학생들은 항일 녀영웅 신예를 따라배우고 신예를 노래하기 위해 여러가지 형식을 통해 경상적으로 추모행사를 조직하고 있다.

신예의 본명은 신수하이며 1918년 산동성 장구현(오늘의 제남시 장구구)의 한 명문가족에서 태여났다. 10살 되던 해에 당시 산동성 참의원으로 있던 할아버지 신주구를 따라 제남에 가 대명호수가에 정착했으며 제남 명화가 황고원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림공부를 했다.

신예 렬사

장성항전이 시작된 후 각계 인사들은 나라와 민족을 구하기 위한 기부활동을 일으켰다. 신주구는 제남민중교육관에서 신예를 위해 그림전시회를 마련하여 자선판경금을 전부 항일장병과 동북의 류랑 동포들에게 기부했다.

‘7.7사변’ 이후 일본침략자들은 황하 북안까지 내려와 제남을 위협했다. 같은 해 8월말, 신예는 아버지 신가주를 따라 제남에서 떠나 여러번 전전하다가 등현 상촌진으로 이주했다. 일본침략자들은 등현을 강점한 후 강간, 살인, 방화를 일삼았으며 날따라 심해졌다. 신씨네 일가족은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고 나라를 구할 길 없는 위급한 시각에 팔로군에 가입했다. “팔로군에 가입했으니 이젠 혁명전사이다.”라고 신예는 경상적으로 남동생과 녀동생에게 일깨워주었다. 전쟁의 봉화가 곳곳에서 타오르는 전쟁년대에 신씨네 일가족은 간고한 군인생활을 시작했다.

부대가 이수현에 도착한 후 신예는 산동항일군정간부학교 제2기 녀성대에서 학습했다. 그는 자기에 대한 요구를 엄격히 하였고 매일 제때에 학습임무를 완성한 외 휴식시간에는 시간을 짜내 그림을 그렸다. 얼마 후 중공산동성위 기관지 《대중일보》 창간을 위해 산동성부녀련합회에는 신예를 추천해 기관지 창간 준비사업에 참가시켰으며 창간호 신문 자제란의 모택동 목각화는 그녀가 직접 그린 것이였다.

1939년, 신예는 당학교에서 학습하는 기간 당시 부교장이였던 진명을 알게 되였다. 공동한 리상과 신념을 갖고 두 사람은 부부가 되였다. 결혼 3일째 되던 날 신예는 중공산동분국에서 설립한 자매연극단에 돌아가 단장을 맡았다. 연극단에서 사업하는 동안 신예는 앞장에서 실속있게 일하고 직접 극본을 썼으며 연출을 맡고 무대에서 공연했다. 연극단에서 창작한 연극 《뢰우》, 《혈로》 등은 부대와 광범한 군중들 속에서 큰 환영을 받았다.

1941년 11월, 중국침략 일본군은 5만명 병력을 출동해 기몽산구에 대해 ‘대소탕’을 진행했다. 그당시 임신 5개월이였던 신예는 부분적 인원들과 함께 대청산의 대고일대에 은페해있었고 진명은 60여명 기관일군들을 거느리고 적들의 방어선을 돌파하여 적후에 들어갔다.

11월 30일 새벽, 중공산동분국과 전시사업추진위원회는 대청산에서 포위되였고 하루 낮과 밤 동안 치렬한 싸움을 벌렸다. 대부분 사람들은 겹겹한 포위를 뚫고나갔지만 인명피해가 막심했다. 그중 부대를 거느리고 포위를 돌파해 북상하던 진명 등은 불행하게 희생되였다. 신예는 두 무릎관절에 중상을 입었고 한 할머니의 엄호를 받았다. 휴양을 거쳐 신예의 상처는 나았지만 두 다리는 불구가 되였다. 그는 “진명은 지금 어디에 있어요? 왜 저를 보러 오지 않는가요?” 하고 여러 번 신변의 동지들에게 물었다. 동지들은 차마 진실한 상황을 그에게 알려줄 수 없었다.

12월 17일, 철수했던 한 무리의 일본군이 신예가 있는 주둔지를 포위했다. 상황은 아주 긴급하여 즉시 전이해야 했다. 4명 동지가 신예를 담가에 메고 북산으로 가는데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총소리 요란하게 울리더니 적들이 모여들었다. 신예는 동지들에게 그를 내려놓고 빨리 포위를 돌파하라고 과단하게 명령했다. 4명 동지는 차마 그럴 수 없어 그를 들고 싸우며 돌격했다. 뜻밖에도 신예는 훌쩍 뛰여 담가에서 굴러떨어졌다. “빨리 가세요. 한 사람이라도 포위를 뚫고 나가야 합니다.” 이때 적들은 에워싸고 올라오면서 “생포하라! 생포하라!”하고 미친 듯이 웨쳤다. 신예는 련거퍼 수류탄 두개를 던졌다. 몇명 적이 쓰러졌다. 갑자기 탄알들이 날아와 신예의 가슴을 명중했다. 그는 극심한 아픔을 겨우 참으면서 돌 옆에 기대여 적들을 노려보다가 일본군이 접근한 뒤 그들 속에서 마지막 수류탄을 터뜨려 장렬히 희생되였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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