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명장 범자협

2019-08-13 13:57:59

강소성 서주시 풍현의 자협소학교에 들어서면 학교 대문을 마주한 간선도로에 범자협의 청석 반신상이 있다. 이 학교는 항일명장 범자협의 모교이다.

범자협은 1908년 강소성 풍현 화산진 대사루촌의 한 가난한 소작농가정에서 태여났다. 1922년 14살에 나는 범자협은 정처없이 헤매다가 혼자서 복건성까지 갔으며 자진해 나서서 한 부관의 근무병이 되였고 후에는 천진으로 파견되여 동북군종군학교에서 공부했다. 졸업후 그는 동북군에서 련장, 영장, 퇀장 등 직을 력임했다. 1931년 ‘9.18’사변이후 국민당의 무저항정책에 불만을 품은 범자협은 분노하여 군사직무를 사직하고 따로 항일구국의 기타 경로를 찾았다.

범자협 렬사

1933년 범자협은 차하르민중항일동맹군에 가입하였고 모 부의 퇀장을 맡았으며 부대를 거느리고 캉보, 둬룬 등 지역을 탈환하기 위해 일본군과 싸웠다. 1935년 수동항일전쟁이 폭발한후 범자협은 비밀리에 괴뢰군 리수신부대의 김헌장려단에 가입하여 영장을 맡았으며 백령묘전역에서 전 영을 책동하여 봉기를 일으키고 김헌장려단이 투항하도록 강요했다. 이때문에 범자협은 국민당군사당국으로부터 위험분자로 지목되였고 감금당했다가 ‘7.7사변’후에야 석방되였다.

전국항일전쟁이 폭발한후 범자협은 항일의용군을 조직하고 하북성 무극, 고성, 신악, 행당 일대에서 유격전을 벌였다. 1938년 봄, 범자협은 자기절로 군대번호를 기찰유격 제2사로 고쳤고 부대를 거느리고 하북성 행당에서 남하하여 하북성 서부, 하남성 북부 일대에서 종횡무진하였다. 1939년 6월, 범자협은 초청에 응해 팔로군 129사 사부에서 사장 류백승, 정위 등소평과 접촉했다. 그해 11월, 범자협 소속부대는 129사 평한유격종대로 개편되였고 범자협이 사령원을 맡았다. 그해 년말, 범자협은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1940년 범자협은 팔로군 제129사의 새로 편성한 10려 려장을 맡았고 부대를 거느리고 백퇀대전에 참가했다. 범자협은 용맹하고 싸움을 잘해 소문이 났으며 량손 다 총을 잘 다루었다. 적들의 암살을 방비하기 위해 그는 총 세자루를 갖고 다녔다. 매번 싸울 때마다 그는 량손에 총을 쥐고 좌우 량쪽으로 모두 총을 쏘는데 백발백중이였다.

1942년 2월, 일본군은 태항, 태악 항일근거지에 대해 ‘제2기 산서성주둔 일본군 총공격’을 발동했다. 2월 12일, 범자협은 사하에서 반’소탕’격전을 치를 때 총에 맞아 숨졌다. 그때 나이는 34살이였다.

범자협을 기념하기 위해 1998년 풍현인민정부는 화산진 사루소학교를 ‘자협소학교’라고 이름을 고치고 현애국주의교양기지로 결정했다. 현정부는 현렬사릉원에 범자협기념비를 세웠고 범자협이 출생한 소재지 화산진정부는 범자협을 위해 옷무덤을 만들었다.

“해마다 렬사기념일, 청명절 등 기념성 명절이면 학교에서는 전교의 사생들을 조직해 범자협장군의 조각상앞에 헌화하고 그의 옷무덤을 찾아 추모하며 또 로동지들을 요청해 범자협장군에 대한 영웅사적을 듣는다.” 자협소학교의 교장 류일군은 학교에서는 영웅렬사의 유지를 계승하고 홍색전통을 발양하여 홍색교육이 교학실천속에 융합되게 할 것이며 학생들의 애국감정을 양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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