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의 항일명장 조상지

2019-08-14 15:32:58

료녕성 조양시 조양현 상지향은 항일명장 조상지의 고향이다.

조상지는 1908년 료녕성 조양현에서 태여났으며 일찍 학생애국운동에 참가했다. 1925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동북지역의 최초 당원중의 한사람이다. 같은해 겨울 광주황포군관학교 제4기에 입학했다. 1926년 동북으로 돌아와 혁명활동에 종사했다. 일찍 두번이나 체포되여 투옥되였지만 당의 기밀을 엄수했으며 의지가 강하고 굴할줄 몰랐다. ‘9.18’사변 후 조직의 구출로 감옥에서 나왔으며 중공 만주성위 상무위원, 군위서기로 임명되였다.

조상지 렬사

1933년 10월, 조상지는 북만 주하반일유격대 창건을 령도하였고 대장을 맡았다. 1934년 6월 조상지는 동북반일유격대 합동지대 사령을 맡고 리조린 등과 함께 주하, 탕원 항일유격근거지를 창건했다. 1935년 1월 동북인민혁명군 제3군 군장을 맡았고 1936년 1월 북만항일련군 총사령부 총사령을 맡았으며 그해 8월에 동북항일련군 제3군 군장을 맡았다. 후에 중공 북만림시성위 집행위원회 주석, 동북항일련군 제2로군 부총지휘를 맡았다.

일본군과 괴뢰군이 미친듯이 ‘토벌’, ‘소탕’을 진행하는 극히 간고하고 렬악한 환경 속에서 조상지는 항일련군부대를 거느리고 일본군, 괴뢰군과 용감무쌍하게 간고하게 싸웠다. 조상지는 송눈평원을 원정하며 얼음과 눈길을 헤가르고 풍찬로숙하면서 적들과 백여차 싸웠으며 일본군과 괴뢰군의 한차례 또 한차례의 대규모적인 ‘토벌’과 ‘소탕’을 돌파했다.

‘작은 만주국, 대단한 조상지’는 일본침략자들 속에서 나온 감탄의 소리이다. 일본침략자들은 관동군이 만주에서 사상자가 대량 발생한 것은 모두 조상지가 조성한 것이며 만주의 최대 위험은 ‘남만의 양정우와 북만의 조상지이다고 인정했다.

1942년 2월 12일, 조상지는 부대를 거느리고 적들과 싸우다가 중상을 입고 포로되였지만 죽을지언정 굴복하지 않았고 죽음을 초개같이 여기였으며 적들을 호되게 규탄했다. 극악무도한 적들은 그의 머리를 잘라 장춘으로 운송해가서 공로를 축하하고 그의 시신은 송화강의 얼음구덩이에 던져버렸다. 그뒤 조상지의 두개골은 행방불명이 되였다가 2004년 6월 62년만에야 길림성 장춘시의 호국 반야사에서 발견되였다. 2008년 10월 25일, 조상지 동지 탄신 100주년을 맞으며 그의 두개골이 고향에 있는 조상지렬사릉원에 안치되였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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