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에서 끝까지 전투를 지휘한 양굉명

2019-08-17 13:58:18

한겨울에도 악예접경지역의 대별산으로 둘러쌓인 호북성 홍안현 이정진 삼리강촌 부가요만에서는 아직도 대면적의 푸른색과 논밭에서 일하고 있는 농민들을 볼 수 있다. 부가산을 등지고 금사호 국가습지공원을 마주하고 있는 중공항전 영웅 양굉명의 기념관은 바로 이곳 푸른 참대 숲속에 자리잡고 있다.

양굉명 렬사

양굉명은 1910년에 태여났고 호북 황안(오늘의 홍안현) 사람이며 1929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1928년에 로농홍군에 참가했으며 련장, 영장, 퇀장 등 직을 력임했다. 중앙쏘베트구역의 력차 반’포위토벌’투쟁과 2만 5천리 장정에 참가했다.

전민족항일전쟁이 폭발한 후 양굉명은 명령을 받고 화북 적후에 가 항일유격전쟁을 전개했다. 1938년 1월 팔로군 제129사 보충퇀 부퇀장을 맡았다. 1940년 6월 팔로군 기남군구 제1군분구 사령원을 맡았다. 백퇀대전에 참가해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1941년 가을부터 1942년 봄까지 기남군구 제4군분구 사령원으로 전근했다.

1941년 가을, 일본군이 양굉명소속부대 주둔지 일대에서 대‘소탕’을 발동하자 양굉명은 부분적 전사들을 거느리고 형제로 북쪽에 가 작전했다. 얼마 후 제남에 주둔해있던 괴뢰군 풍이피는 3개 퇀을 거느리고 림서에 십여개 거점을 세웠다.

1942년 4월, 양굉명은 명령을 받고 두개 퇀을 거느리고 괴뢰군이 차지하고 있는 마명당촌을 공격하였고 전투 가운데서 직접 전선에서 전투를 지휘하였으며 지붕에 올라가 기관총으로 적들을 소사하였다. 전투는 승리적으로 끝났고 풍이피부대는 대부분이 섬멸되였으며 나머지는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다.

적들은 실패를 달가워하지 않고 4월 29일 대량의 병력을 긁어모아 양굉명부대를 포위 공격했다. 양굉명은 적정을 정확하게 판단한 후 부대를 거느리고 성동격서하면서 침착하게 응전하고 필사적으로 싸워 성공적으로 포위를 돌파하였다. 포위를 돌파하는 과정에 양굉명은 총탄에 맞아 희생되였으며 그때 나이는 32살이였다.

기념관에는 또 양굉명의 어머니 여세녀와 큰형 양흥조 등 2명 렬사의 영웅사적도 똑똑히 기재되여있다.

“촌에는 양굉명과 같은 렬사가 아직도 10여명 있다.” 삼리강촌당지부 서기 양군덕은 기자를 안내하여 촌민들이 직접 재배하고 있는 차밭, 과일밭과 꽃과 나무 등을 참관시키고 나서 “렬사들의 간고분투와 리상을 추구하는 정신의 인도하에 오늘날의 삼리강촌의 사람들은 신근한 노력으로 ‘대별산빈곤촌’의 모자를 벗어버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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