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유격대장 홍진해

2019-08-21 15:34:54

철도유격대장 홍진해


산동성 조장시 설성구 림산소학교는 철도유격대기념원 소재지 림산으로 이름을 떨쳤다. 해마다 청명절이면 학교에서는 모두 전교 학생들을 조직해 기념원을 찾아가 철도유격대기념비를 참배하고있다.

홍진해는 또 홍연행이라 불렀는데 1910년에 태여났으며 산동 등주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조장의 철도와 탄광에서 일했으며 생활고에 시달려 늘 기차를 상대로 활동하다보니 나는듯이 기차에 오르내리는 재간을 익혀 ‘날개돋힌 다리’라고 불리웠다. 항일전쟁시기 홍진해는 당의 령도하에 조장의 철도와 탄광 로동자들을 발동하여 산동 로남의 조장, 림성과 미산호 일대에서 활약하는 명성이 널리 전해진 인민항일무장인 로남철도대대 즉 철도유격대를 조직하였으며 그가 제1임 대대장을 맡았다.

홍진해 렬사

1938년 3월 18일, 조장은 일본군에 의해 점령당했다. 홍진해와 왕지승, 류경송은 함께 역현의 인민항일무장주둔지 묘산에 가서 정식으로 공산당이 령도하는 소로인민항일의용총대에 참가했다. 그는 항일결심이 크고 싸움에서 용감했으며 아주 빨리 반장, 패장으로 발탁되여 이 인민항일무장의 기층골간으로 되였다.

그해 10월, 총대장 장광중의 파견을 받고 홍진해와 왕지승은 함께 조장기차역 서쪽의 진장에 몰래 돌아가 조장항일정보소를 건립했고 그가 소장을 맡고 부대를 위해 정보를 수집했다. 그해 11월, 상급의 ‘항일무장을 신속히 건립하라’는 지시에 따라 그는 철도와 탄광의 로동자들을 발동해 수십명에 달하는 비밀항일무장인 조장철도대를 건립했다. 날쌔고 용맹한 이 대오는 항일전쟁이 가장 어렵던 세월에 부단히 발전, 장대해져 1940년 상반년에 이르러서는 이미 백여명 되는 항일유격대로 발전했다. 후에 상급의 비준을 거쳐 조장철도대를 팔로군 로남철도대대라고 이름을 고치고 홍진해가 대대장을 맡았으며 동시에 상급에서 정위를 파견해 령도를 강화했다.

홍진해의 령도하에 로남철도대대는 적들이 엄밀히 통제하는 철도간선과 조장 탄광구, 미산호구역에서 철도와 탄광의 로동자, 미산호구역 군중들의 엄호와 도움에 긴밀히 의거하고 령활하고 기동적인 전술을 취해 천리 철도선에서 활약하였으며 신출귀몰하면서 적들을 타격했다. 그들은 마치 예리한 칼처럼 적들의 동맥혈관과 가슴팍에 뚫고들어가 일본군과 괴뢰군로 하여금 머리가 어지리러워 정신을 못차리게 했고 편안히 있을 수 없게 하였다.

1941년 12월의 눈보라치가 휘몰아치는 어느날 밤에 수백병 일본군과 괴뢰군들이 로남철도대대에 대하여 기습, ‘소탕’전을 벌렸으며 홍진해는 부대를 거느리고 적들과 치렬하게 싸우다가 불행하게도 총탄에 맞아 장렬히 희생되였다. 그때 중공로남철도대대 당지부는 이미 홍진해의 입당신청을 통과했었다. 홍진해가 희생된후 로남군구 정치부는 홍진해를 중국공산당 정식 당원으로 추인했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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