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전쟁서 목숨 바친 렬사 서보산 삼형제

2019-08-27 08:32:11

산동성 서북평원의 굽이진 강가에는 서하구 삼영렬의 묘소가 자리잡고 있다. 산동성 료성시 치평현 호툰진 서구촌 서남 1킬로메터 곳에 위치한 삼영렬 묘소는 항일전쟁에서 희생된 서보산, 서보벽, 서보진 삼형제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서보산은 1908년 산동 박평(지금의 치평)에서 태여났다. 맏이인 그는 아래에 남동생 6명과 녀동생 1명이 있었다. 어릴 적 열심히 학습하여 성적이 우수하였으나 아버지가 병으로 앓게 되자 중도에서 학업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전국에서 항일전쟁이 폭발한 후 박평 군중들은 자발적으로 련장회(联庄会)를 조직, 설립하였고 서보산은 련장회 회장으로 선출되여 군중들을 거느리고 항일활동을 적극 전개하였다. 1937년 10월 서보산은 항일무장을 조직하였다. 후에 산동성 제6구행정공서 전원, 보안사령 범축선의 소속부대 제32지대 제2퇀에 편입되였고 서보산이 영장직을 맡았다.

서보산 렬사

1938년 서보산은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고 1939년초 박평현 제1기 항일민주정부 현장을 겸임하였다. 같은 해 2월, 소속부대는 항일유격종대 제7퇀으로 확대 편입되였고 서보산이 퇀장직을 맡았으며 부대의 보급품과 군중들의 곤난을 해결해주기 위해 집안에 모아두었던 식량을 내놓아 군량으로 충당하였다. 1940년 6월 서보산은 팔로군 제129사 신편 8려 24퇀 퇀장을 맡았다. 소속부대를 정돈, 개편한 후 즉시 하북성 남부지역으로 가 기남군구의 배치에 따라 8월 20일 부대를 거느리고 백퇀대전에 투입하였다. 백퇀대전에서 전공이 뛰여나 제24퇀은 ‘모범전투퇀’ 칭호를 수여받았다.

1941년 7월, 서보산은 진기로예 변경지역 림시회의 제1차 회의에 참석하였고 중공중앙 북방국 당학교에 들어가 학습하였다. 1942년 5월 중순 일본군은 태항구의 팔로군총부와 제129사 지도기관을 소멸하기 위해 1만여명의 병력을 출동하여 태항근거지에 대해 ‘포위’를 실시하였다. 25일 서보산은 산서성 료현(오늘의 좌권현) 마전지역에서 포위를 돌파하던중 희생되였는데 당시 34살이였다. 서보산의 셋째 남동생 서보벽, 다섯째 남동생 서보진도 항일전쟁에서 희생되였다. 1947년 중공박평현당위는 서가하구에서 추도대회를 열었다.

지금도 서씨 집안의 삼영렬 이야기는 고향에서 널리 전해지고있다. 2015년 서하구 삼영렬의 묘소는 항전유적지, 기념시설로 산동성 성급 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였다. 당지 당정부문과 중소학교에서는 청명, 렬사기념일 같은 날이면 기념활동을 조직하며 선렬들의 유지를 가슴깊이 새겨나가고 있다.

세 렬사의 조카인 서숙지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세 백부를 기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혁명선렬의 후대로서 선렬들의 리상신념을 가슴깊이 새기고 영렬들의 사적과 혁명정신을 선전, 선양하는 것을 견지하며 백년의 가풍을 계승, 실천하여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저그만한 힘이나마 이바지할 것이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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