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바쳐 직분에 충실한 왕덕상

2019-09-05 08:42:48

안휘성 금채현 혁명박물관에는 1만 1000여명 렬사의 이름이 소장되여있는데 그중의 한명이 바로 왕덕상이다.

왕덕상은 1916년 안휘성 륙안현 금가채의 한 가난한 농민 가정에서 태여났다. 어릴 적에 아버지를 잃은 그는 홀어머니와 서로 의지하면서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는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 1931년 11월, 중화쏘베트공화국 림시중앙정부가 설립된 후 홍군은 환서 륙안, 곽산 일대에서 토지혁명을 전개했으며 왕덕상은 토호를 타도하고 땅을 나누어주는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혁명투쟁 가운데서 단련 성장했으며 그해 청년단에 가입하였다. 같은 해 그는 어머니를 설복하여 홍군 제4 방면군에 참가했고 1933년에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그는 선후하여 전령병, 반장, 본부전보번역원을 맡고 부대를 따라 남북을 전전하였다. 장정길에서 20살도 안되는 왕덕상은 홍군 제4 방면군을 따라 설산을 넘고 초지를 건너며 기아와 추위를 견뎌내면서 영용히 전진하였다. 1936년 장정부대가 승리적인 합류한 뒤 왕덕상은 또 서로군본부 직속대를 따라 하서주랑을 전전하면서 군벌 마보방부대와 혈전을 벌렸다.

1937년 4월말, 서로군 좌지대는 간난신고 끝에 성성협에 도착해 중공중앙 대표 진운, 등대원을 따라 신강에 들어갔다. 진운의 창의와 조직하에 우리 당은 쏘련이 성세재를 지원하는 군사 장비와 기술을 리용하여 적화를 훈련군사부의 중요기지로 삼고 우리 군의 다병종 다학과 군사기술학교를 설립 운영하였다. 1938년 3월 3일, 항공대가 개학식을 거행했으며 왕덕상 등 25명 청년학원들이 비행반에 편입되였다. 왕덕상과 전우들은 항공대에 들어간 뒤 긴장한 항공기초리론과 비행기 조종, 항법, 의기, 기상 등 전문지식 학습에 뛰여들었으며 뒤이어 단기 비행훈련에 들어갔다. 리론학습이든 비행실습이든 지를 막론하고 왕덕상의 성적은 언제나 다른 학원들보다 많이 앞섰다.

1942년 6월 9일 새벽, 그는 량날개 전투기를 조종하여 3000메터 고공에 날아올라 고난도 기술비행훈련을 시작하였다. 평소 그는 비행기술에 대해 깊이 련마하였고 항상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였으며 조금도 소홀함이 없었다. 이날 그는 크고 작은 경사도 선회 및 급회전을 마친 후 굴림연기를 시작하였는데 첫번째가 그닥 리상적이지 못해 다시 2차 특기훈련에 들어갔다. 갑자기 뜻밖의 상황이 일어나 비행기의 회전속도에 이상현상이 나타나면서 순식간에 비행기는 굴림에서 라선하강으로 변했다. 비행기를 지켜내기 위하여 왕덕상은 락하산을 타고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여 순직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26살이였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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