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무원으로 진지를 사수한중국원정군의 명장 대안란

2019-09-07 14:18:59

풍경이 아름다운 안휘성 무호시의 자산에는 중국원정군 명장 대안란 장군의 유골이 안장되여있다. 해마다 청명절이면 성묘객들이 이곳에 찾아와 헌화하면서 영웅렬사에 대한 경모와 그리움을 표달하군 한다.

대안란은 자가 연공이고 호는 해구(海鸥)이다. 1904년 11월 25일, 무호시 관할구역내의 무위현 련계향 풍화대촌(지금의 무위현 곤산향 련계사회구역)에서 태여났다. 1924년, 국민혁명군에 가입하였으며 황포군관학교 제3기를 졸업하고 1926년 북벌에 참가했다. 1938년, 로남회전에서 부대를 거느리고 중애산에서 일본군과 4일 낮과 밤을 치렬하게 싸웠으며 전공이 탁월하여 89사 부사장으로 승진하였다. 1939년 국민당 제5군 200사 사장으로 승진하고 12월 계남회전에 참가하였다. 곤륜관대전에서 대안란은 중상을 입고도 화선에서 물러나지 않고 싸워 일본군 려단장 나까무라 소장을 사살하였고 중대한 승리를 거두었다.

대안란 렬사

1942년 3월, 대안란은 부대를 거느리고 미얀마에 도착해 원정군의 항일전쟁에 참가했다. 동고보위전이 시작된 후 200사 전체 장병들은 진지를 고수하면서 용맹하게 반격하였다. 고군분투하면서 후원이 어려웠지만 대안란은 목숨을 걸고 끝까지 막아내기로 결심하였다. 대안란은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이번에 명령을 받고 동고를 고수하게 되였소. 상급의 방침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며 후방이 너무 멀고 적들의 행동 또한 빨라서 현재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죽음으로 국가가 키워준 은공에 보답할 각오를 하고 있소. 나라를 위해 전사하는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요.”그는 앞장서 유서를 작성하였으며 마지막 한명의 전사가 남을 때까지 끝까지 싸울 각오를 할 것을 명령하였다. 사장이 전사하면 부사장이 사장을 대신하여 전투를 지휘하고 부사장이 전사하면 참모장, 참모장이 전사하면 퇀장이 그 뒤를 이어 전투를 지휘하도록 하였다. 동고보위전은 12일간 이어졌는데 200사는 800명 희생자의 대가로 일본군의 20여차례 공격을 물리쳤고 적군 4000여명을 사살하고 400여명을 생포하여 적들을 엄중하게 타격하면서 국위를 선양했다.

전투가 끝난 후 대안란은 철수 과정에서 적들의 습격을 받아 중상을 입었다. 미얀마 북쪽의 복잡한 지형과 련일 이어진 장마비로 약품 공급이 딸리면서 대안란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상처가 곪기 시작했다. 조국과 100여킬로메터 떨어진 미얀마 북쪽 모방촌에 이르러 대안란은 장렬하게 순국하였으며 당시 나이는 38세였다.

1942년 7월 31일, 대안란 장군의 국장의식이 광서 전주의 향산사에서 장중하게 진행되였고 국공 량당 지도자들이 추념사를 써 대안란에 대한 애도의 마음을 전했다. 1943년 가을, 대안란의 령구는 광서 전주에서 무호의 고향에 이장되였다. 1956년 9월 21일, 중화인민공화국 내무부는 대안란 장군을 혁명렬사로 추인하였다.

2009년 9월 10일, 대안란은 ‘새 중국 창건을 위해 특출한 기여를 한 100명 영웅모범인물’로 평의되였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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