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미원조 보가위국

2019-09-09 08:38:51

1950년 6월, 조선 내전이 폭발한 뒤 미국 정부는 ‘유엔군’을 긁어모아 무장간섭하면서 해군 제7함대를 파견하여 중국 대만해협에 침입했다. 그 뒤 조선침략 미군은 3.8선을 넘어 압록강에 곧바로 접근함과 아울러 폭격기를 출동시켜 중국 동북변경을 폭격하면서 새 중국의 국가안전을 직접적으로 위협했다. 비록 그 당시에 중국은 바야흐로 정권을 공고히 하고 경제를 복구하는 긴급한 임무에 직면했으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청구에 의해 중공중앙은 여러차례 회의를 소집하고 반복적인 평가를 거쳐 10월 상순에 항미원조 보가위국의 력사적인 결책을 내렸다.

1950년 10월, 중국인민지원군은 명령을 받들고 조선전장으로 출동하여 조선인민과 어깨 겯고 작전하면서 1951년 6월까지 7개월 남짓한 동안에 선후하여 미국을 우두머리로 하는 ‘유엔군’과 5차의 큰 전역을 진행하여 총 23만여명을 섬멸하고 전선을 3.8선 린근지역으로 안정시켰다. 이 전쟁에서 중국인민지원군 가운데 라성교, 황계광, 양근사, 구소운 등 수많은 영웅인물들이 용솟음쳐나왔으며 조선인민을 위하여, 국제주의 의무를 리행하기 위하여 모택동 주석의 장남 모안영을 비롯한 수많은 영웅들이 조선땅에서 고이 잠들었다.

중국인민지원군의 입조작전과 동시에 국내에서는 기세 드높은 항미원조운동이 일어났다. 전국 각 계층인민들은 앞다투어 참군, 참전하고 비행기와 대포를 헌납했으며 지원군을 위문하고 애국공약을 제정했으며 생산량 증가와 절약운동을 전개하여 전방의 작전을 힘있게 지원했다.

1951년 7월, 조선전쟁은 ‘전쟁을 하면서 한편으로 담판하는’ 단계에 진입했다. 2년 동안 서로간의 대치를 거쳐 교전 량측은 1953년 7월에 휴전협정을 체결하여 항미원조전쟁은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다.

중국인민지원군의 출국작전은 평화를 보위하고 침략에 반항하는 정의로운 행동이였다. 이번 전쟁의 승리는 미제국주의를 전승할 수 없다는 신화를 깨뜨렸고 약소한측이 강한 적수를 이기는 범례를 창조했으며 전국 인민의 마음속에서 중국공산당의 위신을 크게 제고했고 중국인민의 민족자신감과 민족자부심을 크게 제고했으며 중국의 국제지위를 전례없이 제고함으로써 우리 나라 경제건설과 사회발전을 위해 하나의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평화환경을 쟁취했다. 

신화통신


  •  
  • 많이 본 기사
  • 종합
  • 스포츠
  • 경제
  • 사회

주소:중국 길림성 연길시 신화가 2호 (中国 吉林省 延吉市 新华街 2号)

신고 및 련락 전화번호: 0433-2513100  |   Email: webmaster@iybrb.com

吉ICP备09000490号 | 吉新出网备字005号 | Copyright © 2007-2017

吉公网安备 22240102000014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