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근식 항일녀전사 림심평

2019-09-16 08:39:22

영웅은 떠나갔으나 정신은 영원하다. 해마다 청명절 등 중요한 명절이 오면 절강 평양 각지 학교의 사생들은 수두진 수두제1소학교에 위치한 ‘심평원’에 찾아가 당시 23세의 젊은 나이에 희생된 항일 녀전사 림심평을 기린다.

심평원에 가면 계화나무 아래 세워진 림심평 렬사의 동상이 보인다. 높이가 2.3메터이고 황동으로 만들어진 반신상의 받침대 아래 계단의 앞뒤 너비는 1919밀리메터이고 좌우의 길이는 1941밀리메터인데 림심평의 출생년도와 희생년도를 나타내며 높이 2.3메터는 렬사가 23세의 꽃다운 나이에 항일전쟁터에서 몸을 바쳤음을 뜻한다.

림심평 렬사

림심평의 원명은 량옥이다. 1919년 2월, 절강 평양에서 태여났으며 1936년 11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1936년 8월, 혁명에 참가하고 상해에서 지하교통사업에 종사하였다. 항일전쟁이 전면적으로 폭발한 후 상해주재 팔로군판사처 기밀비서를 담임했다. 1937년 11월 연안에 가 항일군정대학에서 학습했으며 졸업 후 선후하여 중공중앙 장강국, 중공절강성금화특별위원회에서 통전사업에 종사했다. 1939년 가을, 신사군 제1지대 문공단 부퇀장을 담임했다. 림심평은 야간학교를 꾸리는 형식으로 선전하고 군중을 발동하여 빈농소조, 항일부련회, 항일청년단을 조직하고 당원을 발전시키고 당지부를 세웠다.

1941년 3월부터 림심평은 금단, 률양, 의흥, 무진, 단양 5개 현 항일련합정부 문교과 과장을 맡았다. 그해 여름, 국민당 보안 제9려는 일본군에 투항한 후 장(탕호), 격(호) 지역에 진입하여 항일부대를 습격하였다. 항일무장을 확대하고 적들의 병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당조직에서는 림심평을 의흥현 관촌구 구장을 겸임하도록 결정하였다. 몇개월간의 사업을 통해 장하항 대하항일유격구가 항호 남안의 신교일대까지 확장되였다.

1942년 6월, 림심평은 불행하게 체포되여 혹형을 당했으나 굴하지 않았으며 그해 7월 강소성 금단현 관림소학교에서 일본군에게 살해되였다. 그녀의 유체는 적들에게 훼손되여 사라졌기에 유골을 찾을 수 없었다.

수두1소학교 교장 황상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림심평 렬사는 추근식 녀성영웅이고 그녀의 일생은 짧은 일생이였지만 빛나는 일생이였다. 그녀는 수두의 자랑이고 평양의 자랑이며 중국인의 자랑이기도 하다. 그녀의 혁명정신은 초심을 잊지 말고 분진전진하도록 우리를 영원히 격려할 것이다.”

신화통신

  •  
  • 많이 본 기사
  • 종합
  • 스포츠
  • 경제
  • 사회

주소:중국 길림성 연길시 신화가 2호 (中国 吉林省 延吉市 新华街 2号)

신고 및 련락 전화번호: 0433-2513100  |   Email: webmaster@iybrb.com

吉ICP备09000490号 | 吉新出网备字005号 | Copyright © 2007-2017

吉公网安备 22240102000014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