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공장을 세우고항일전선을 지원한 오사맹

2019-09-18 08:36:24

오사맹은 본명이 오초생이며 1899년 호남성 악양시 평강현 룡문향 고련촌의 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났다.

1927년, 오사맹은 황구구농회 회장이며 공산당원인 오흠민이 조직한 농민자위대에 참가했고 그해에 오흠민의 소개로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평강봉기 이후 오사맹은 홍5군 제1종대에 편입되여 패장을 맡았다. 1930년, 홍5군은 상악감변구로 돌아가 평강혁명무장 재건을 협조했고 상악감독립사에 편입되였다. 얼마 후 독립사는 홍16군으로 개편되였고 오사맹이 홍16군 회계과 과장을 맡았으며 후에 또 군경리처 처장으로 승급했다. 임무가 번잡하고 무거웠지만 그는 달마다 재무사업을 아주 훌륭하게 수행했으며 물자를 제때에 예정대로 배치하여 여러번 군 사령관의 칭찬을 받았다.

1938년 1월, 신사군 군부가 남창에서 건립되였고 상악감인민항일유격대를 국민혁명군 륙군 신편 제4군 제1지대 제1퇀으로 개편하기로 결정했다. 오사맹은 제1퇀 군수 주임을 맡고 군수훈련반을 조직했으며 도합 6차에 걸쳐 많은 군수인재를 양성했다. 1939년 봄, 오사맹은 신사군 제1지대 군수 주임을 맡았다. 당시 물자, 경비가 아주 부족한 상황에서 그는 세밀하게 타산하여 수입원천을 확충하고 지출을 절감하면서 부대의 물자와 경비의 정상적인 공급을 보장했다.

1941년 1월 4일, 신사군 환남부대의 9000여명이 경현까지 행군했을 때 국민당 군대에 포위되였다. 련며칠 긴장하게 싸워 부대의 식량이 다 떨어져 전사들은 이삼일 동안 쌀알을 구경하지 못했다. 오사맹은 주동적으로 청원하여 전사 몇명을 거느리고 적들의 겹겹한 봉쇄를 뚫고나가 사람마다 소고기를 한가방씩 가득 둘러메고 돌아와 전사들의 체력을 보충해주었다. 피어린 전투 끝에 오사맹과 극소수의 전사들은 적들의 겹겹한 포위를 벗어나 강북항일근거지에 도착했다.

환남사변이 발생한 지 얼마 안되여 신사군 제2사는 군수산업부를 건립하였고 오사맹을 군수산업부 부장으로 임명하였다. 9월, 오사맹은 군수모범 오운탁 등을 데리고 회남에 도착하여 고우현 금구구 평안향(지금의 강소성 금호현에 속함)에서 맨손으로 무기공장을 세우는 일에 착수하였는데 오운탁이 공장장을 맡았다. 그들은 원자재가 없으면 농촌에 내려가 목탄, 쇠붙이 등을 수집하고 작업장이 없으면 백성의 집을 리용하면서 150여명 로동자가 일하는 무기공장을 세우고 탄알, 수류탄, 박격포탄 등을 만들었다. 공장에서는 달마다 탄알 2500발, 수류탄 600매, 박격포탄 66발을 생산해 부대의 총기, 탄약을 제때에 보충해줌으로써 일본침략자들을 유력하게 타격하였다. 이로 하여 오사맹, 오운탁은 중앙군위와 군수산업부의 표창을 받았다.

여러해 동안 동분서주한 탓으로 오사맹은 피로가 쌓여 엄중한 페결핵에 걸렸고 1942년 8월 강소 회음지구 우이현에서 불행하게 병으로 사망했다. 그때 나이는 43살이였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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