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원유격전을 견지한 항일영웅 공경동

2019-09-18 15:16:57

공경동은 1912년에 태여났고 하남 광산사람이며 1928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1927년 봄, 광산현에 중공 지하당조직이 건립되였고 농민협회가 설립되였으며 15살밖에 안되는 공경동은 농민적위대에 참가했다. 얼마후 공산당이 령도한 이 농민무장은 중국로농홍군 제25군으로 개편되였고 공경동은 나팔수 임무를 맡았다.

공경동 렬사

1934년 11월, 홍25군은 중앙의 지시에 따라 악예환근거지에서 물러나 전략전이를 진행했다. 섬북에 도착했을 때 공경동은 이미 홍군 영장으로 성장했다. 1937년, 나젊은 지휘관 공경동은 연안을 떠나 천진 중공 중앙북방국에서 사업했다. 그는 하북 동부의 풍윤현 요대산 일대에서 당원농민자위회를 조직하고 하북 동부 첫 항일무장대오를 설립하였으며 기동항일련군 제1지대 지대장을 맡았다. 1938년, 제1지대가 기동항일련군 제4총대로 확대편성되고 공경동이 총대장을 맡았다. 그는 부대를 거느리고 풍윤, 준화 두개 현의 일본군, 괴뢰군에게 막대한 타격을 주었다.

1938년 7월 8일, 준화의 괴뢰군 보안대는 130여명을 출동해 철공장을 습격했다. 소식을 접한 공경동은 즉시 부대를 거느리고 앞장서 철공장 북쪽의 옥황묘로 가서 적들과 맞서 싸웠다. 약 두시간의 치렬한 싸움을 거쳐 괴뢰군을 물리치고 80여명을 포로했으며 총 80여자루, 군마 35마리를 로획하여 준화의 일본군과 괴뢰군에게 막대한 타격을 안겼다. 7월 9일, 공경동 등은 부대를 거느리고 공격전을 벌려 매우 순조롭게 흥성진을 탈취했다. 공경동 또 강대한 정치공세를 들이대며 괴뢰만주국 경찰소장 왕생존을 감화시켜 40여명을 거느리고 귀순하게 했다. 뒤이어 항일련군 4총대는 전투를 계속하여 풍윤현 왕관영일대 민병퇀의 반란을 평정하였고 항일영향력을 확대했다. 당지의 군중들은 분분히 항일대오에 가입했으며 왕관영에서만 500여명이 항일련군에 참가했다. 4총대는 짧디짧은 며칠내에 400여명으로부터 4000여명으로 발전했고 기동항일련군 제1제대로 개편되였으며 산하에 4개 총대가 있었고 공경동이 대장을 맡았다.

1939년, 공경동은 중공중앙 진찰기분국 당학교에 가서 공부했다. 1940년 당학교 학습을 마친 후 기중 제8군분구에 가서 부사령원을 맡고 보정일대에서 평원유격전을 견지했으며 후에 제8군분구 사령관을 맡았다.

1942년 가을, 기중 제8군분구 당위는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무장투쟁을 위주로 평원유격전쟁을 견지할 데 대한 팽덕회의 지시를 전달했다. 10월 20일, 공경동은 권총부대를 거느리고 하간현 좌장으로 가서 하간현에서의 항일투쟁을 전개할 데 대해 지시를 내렸다. 한간이 적들에게 내통하는 바람에 이튿날 새벽녘, 부대 주둔지가 몇배나 더되는 일본군과 괴뢰군에게 포위되였다. 전투 과정에서 공경동은 총탄에 맞아 희생되였는데 그때 나이는 30살밖에 안되였다.

2014년, 민정부가 최초로 300명 항일 영웅렬사와 영웅단체 명단을 공포하였는데 공경명도 그속에 있었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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