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보도전선의 걸출한 조직자와 활동가 리죽여

2019-09-24 15:07:47

산동성 동영시 리진현총공회의 울안에는 북쪽을 향해 세워진 동상이 있다. 붉은색 화강암대좌에 씌여진 서향전의 친필제사 ‘리죽여렬사’가 각별히 눈에 뜨였다.

리죽여는 1905년 1월 산동성 리진현 장과촌에서 태여났다. 1922년후부터 혜민 제4중학교, 남경 동남대학부속중학교, 제남 정의중학교에서 공부했고 1927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1931년 ‘9.18’사변이후 남경중앙대학 중국공산당 지하당지부서기를 맡았고 중앙대학 사생 및 남경 여러 학교 사생들의 항일구국운동에 참여하고 령도하였다.

국민당반동당국의 추적체포때문에 리죽여는 핍박에 의해 산동으로 돌아갔고 선후하여 제남, 평원향에서 글을 가르쳤으며 비밀리에 당원을 발전시키고 많은 혁명적 청년들을 양성해냈고 제남에서 ‘신아일보’를 창간해 항일구국을 선전했다. 1936년 리죽여는 상해에 가서 ‘문화보’ 창간에 참여했으며 경상적으로 많은 지면을 통해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음모를 폭로하였다. 심균유 등 구국회 ‘7군자’가 체포된 후 그는 국민당 당국의 위협공갈에도 불구하고 ‘문화보’에 계렬보도를 실어 ‘7군자’를 성원하였다.

리죽여 렬사

1937년 전국항일전쟁이 폭발한 후 리죽여는 한패의 혁명지식분자들을 거느리고 연안으로 가던 도중에 산서에 남아 ‘중국인신문’를 창간하였고 후에는 하북 ‘신화일보' 부총편집을 맡았다. 1939년 5월 서향전, 주서가 거느린 팔로군 제1종대를 따라 산동 적후에 들어가 선후하여 제1종대 민중운동부 부장, 중공 산동분국 민중운동부 부장, 선전부장, 정부사업부 부장, 산동성참의회 비서장, 산동성전시사업추진위원회(성정부) 비서장을 력임했고 산동 ‘대중일보’ 사장, 신화사 산동분사 사장, 중국청년기자학회 산동분회 리사장, 산동성문화협회 회장 등 직을 겸임했다. 1939년부터 1942년까지 기간 ‘대중일보’는 리죽여의 서명 문장을 대량 실었으며 적지 않은 중요한 사설, 평론도 그가 집필한 것이였다. 리죽여는 신문사 편집, 기자들의 사상, 정책 수준 제고에 제일 큰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경상적으로 그들에게 학습보도해주었다. 그의 령도하에 ‘대중일보’사는 많은 우수한 신문사업일군들을 양성해냈다. 산동항일근거지에서 리죽여는 여러가지 직무를 겸임하였고 근거지의 민주정권건설을 위해 많은 기여를 했다.

1942년 겨울, 일본군은 산동근거지에 대해 제2차의 대규모 ‘소탕’을 진행했다. 11월 2일, 8000여명의 적들이 산동군구와 정부기관을 대고산에 가두었으며 포위를 돌파하는 과정에 리죽여는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그때 그의 나이는 37살이였다.

서향전은 직접 제사를 써서 ‘리죽여동지는 우리 당 선전보도전선의 걸출한 조직자이고 활동가였다”고 높이 평가했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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