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색대륙’이 키워낸 영웅호걸 륙승훈

2019-09-28 13:16:38

2018년 9월 23일, 산동성 유방시 창읍시 복장진은 ‘제2회 복장진 대륙촌 배와 대추 축제’를 개최하고 첫번째 중국농민풍수절을 경축하였다. 배와 대추의 고향으로 이름난 복장진 대륙촌은 ‘홍색대륙’이라고도 불리우는데 항일영웅호걸 륙승훈은 바로 이곳에서 태여났다.

륙승훈 렬사

륙승훈은 1907년 10월, 산동성 창읍현 복장진 대륙촌에서 태여났다. 1924년 청주 산동성립제4사범학원에 입학하였으며 졸업 후 본 촌에 돌아와 교편을 잡았다. 대혁명 고조 속에서 그는 본 촌 군중들 가운데서 선전활동을 대폭 전개하여 농민협회를 설립하고 북벌혁명군을 옹호하였다. 대혁명이 실패한 후 본 촌에서 농민야간학교를 창설하였다. 1928년 5월 3일, 제남참안이 발생한 후 그는 농민야간학교 학원들을 거느리고 자유시장에서 전단지를 뿌리면서 일본제국주의의 하늘에 사무치는 죄행에 항의하였다. 그 후 중공지하당원의 소개로 추평향촌건설연구원에 가 학습했다. 1936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전국 항일전쟁이 폭발한 후 륙승훈은 당조직의 파견을 받고 창읍에 돌아와 항일무장을 조직하기 위한 준비사업을 하였다. 1936년말 그가 조직한 백여명 항일무장을 거느리고 중공로동사업위원회가 령도하고 발동한 유북항일무장봉기에 참가하여 팔로군 로동항일유격 제7지대를 설립하고 제7지대 특무대대 대대장을 맡았다.

1938년 12월, 팔로군 산동종대가 설립되여 륙승훈이 종대 특무퇀 퇀장직을 맡았다. 1939년 9월, 산동종대 제1지대 후방사령원직을 맡았다. 1940년 9월, 산동종대 제1지대 후방사령부가 산동종대 기몽지대로 개편되면서 륙승훈은 지대 부사령원직을 맡았다. 얼마 후 로중 제2군분구 사령원직을 맡았다. 1941년 10월, 륙승훈은 산동분국 고급당학교에 선발 파견되여 학습했다. 1942년 5월 학습기한이 만기된 뒤 기몽특별서 전원공서 전원직을 맡고 기몽산구 인민대중을 거느리고 견벽청야하면서 반‘잠식’, 반‘소탕’ 투쟁을 전개했다. 같은 해 12월 교동군구 부사령원으로 전근되여 백여명을 거느리고 신태에서 출발해 교제철도를 지나 박흥에 도착한 뒤 계속 동쪽으로 전진하여 초남에 이르렀다. 12월 8일 래양현 손가천에 진입하였다가 일본군과 괴뢰군에게 포위되여 륙승훈은 간부와 호송대를 지휘하여 적들과 격전을 벌리면서 포위를 뚫는 과정에 불행하게도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35세였다.

륙승훈의 손자 륙송군은 할아버지에 대해 언급할 때 “할아버지는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싸우기 위해, 새 중국을 창건하기 위해 귀중한 생명을 바쳤기에 보람이 있다. 그이는 내가 따라배워야 할 본보기이다! 나는 줄곧 자녀들에게 조국을 사랑하고 열심히 사업하여 나라를 위해 많이 기여해야 한다고 늘 가르치고 있다. 렬사의 후예로서 나에게는 홍색유전자와 우량한 가풍을 잘 전승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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