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전쟁서 나라 위해 목숨 바친 사천군벌부대 장령 허국장

2019-11-05 08:49:46

2019년 봄, 산동 제남의 한 일반주민 가정에서 55살에 나는 허건은 풍속 대로 선인들을 위해 분향하고 종이를 태우며 할아버지인 허국장을 추모하면서 경의를 드렸다.

1898년에 태여난 사천군벌부대 장령인 허국장은 자는 헌정이고 사천 성도사람이다. 일찍 사천군벌부대에 가입한 그는 항일전쟁이 전면적으로 폭발하자 제3사 9려 25퇀 퇀장을 맡았다. 후에 제29집단군을 따라 사천성을 벗어나 항일하였고 제67군 486려 려장을 맡았다.

지도를 펼치면 사천으로부터 시작하여 황매, 악동, 경산, 종산, 대홍산…을 한선에 그을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허국장이 전투한 로선이다.

1938년 6월, 중국침략 일본군은 양자강을 거슬러올라가며 25만여명의 병력으로 여러가지 함정 120여척, 비행기 300여대를 동원하여 장강 남북으로부터 병력을 나누어  무한으로 접근했다. 중국 군대는 무한 및 린근지역을 중심으로 일본침략군과 한차례 대규모 회전을 전개하였다. 무한회전은 항전 이후 전장이 가장 길고 규모가 가장 크며 지속시간이 가장 긴 중요한 의의가 있는 한차례 회전이였다. 중국 군대는 거대한 희생을 내면서 많은 공장, 민중들이 서쪽으로 전이하는 데 시간을 벌어주었다. 그리고 일본군으로 하여금 전선이 길어지고 국력이 제한되여 전략적 진공으로부터 전략적 대치로 전변하도록 압박하여 속전속결의 헛된 꿈을 철저히 파멸시켰다.

허국장은 부대를 거느리고 황(매)광(제)전역에 참가하여 명령을 받고 황매 이남에서 일본군을 저격하면서 진지를 한개월 동안 고수하였다. 10월, 허국장은 부대를 거느리고 전쟁지역 주력부대의 이전을 엄호하고 호북 동부의 상파하전역에서 일본군에게 호된 타격을 가했다. 그해 가을에 허국장은 또 부대를 거느리고 경산, 종산, 대홍산 등지에 진주하여 일본군과 여러차례 작전했다. 1941년에 제67군 150사 부사장으로 승진하고 이듬해에 사장으로 승진했다.

1943년 11월, 중국침략 일본군은 우리 나라 운남 곤명 서부에서의 대규모적인 반격을 견제하기 위해 10만여명의 병력과  130여대의 비행기를 출동시켜 상덕 수비군을 맹렬히 폭격하면서 독가스탄, 연소탄을 발사하고 수차례 육박전을 벌렸다. 제57사는 적들과 16일 동안 밤과 낮을 고전하여 한개 사의 전체 장병 9000여명중 생환자가 100명도 되지 않았다!

허국장은 150사를 거느리고 한차례 매복습격전을 벌려 군용가방 하나를 로획하였는데 가방 안에는  5만분의 1의 군용지도 한장이 들어있었다. 지도에는 일본군이 한차례 새로운 공세를 발동할 것이라고 명시되여있었으며 그 주요공격의 화살표가 직접 상덕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는 전쟁준비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11월 중순까지 일본군은 이미 서북과 동북 두갈래로 상덕과 도원으로 접근했다. 서북일로 적군을 저격하는 임무는 29집단군에 맡겨졌다. 허국장의 150사는 명령을 받고 상덕 북면의 태양산을 점령하였다. 태양산과 린근의 태부산을 점령한다면 일본군은 상덕에서 발을 붙일 수 없게 될 상황이였다.

이에 앞서 150사는 남현과 안향 일선에서 적들을 지체시키면서 20여일간 작전하여 벌써부터 사상자가 많았다. 례수연안에 도착하였을 때 오른쪽 전방 진시 정면의 적들이 이미 례수를 건너 150사를 향해 공격해왔다! 허국장은 즉시 결단을 내려 병력을 나누어 재빨리 전진하게 하고 자신은 사단본부와 두개 련의 병사들을 거느리고  뒤따랐다. 뜻밖에 일본군은 앞에 150사 본부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신속히 사단 주력과 사단본부 사이에 끼여들어 뒤에서 쫓아오던 적들과 량측으로 협공하였다. 허국장은 부대를 거느리고 전투하는 한편 퇴각하여 상덕서면 10여킬로메터 떨어진 추시진까지 퇴각하였다. 적들은 바짝 추격해오며 해질 무렵에는 삼면으로 추시진을 에워쌌다

추시진은 강을 끼고 건설되였는데 세 면이 적들과 마주하였고 한 면은 강과 마주하였다.

최후의 고비에 허국장은 무선통신기와 비밀번호를 소각할 것을 명령하고 전체 사단본부 인원들은 총을 들고 출전하게 하였다. 포탄 한발이 그의 뒤에서 폭발하여 허국장은 땅에 쓰러졌다… 장병들은 사장이 이미 숨진 줄로 오해하고 2명의 어민에게 배를 저어 사장의 ‘유체’를 남안으로 운송하도록 하였다.

다음날 동틀 무렵에 허사장은 점차 의식이 회복되여 옆의 사람과 물어서야 추시가 이미 적들에게 점령되였음을 알고 자신은 부상하여 남안으로 들려왔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마지막 남은 숨을 고르던 허국장은 갑자기 띠염띠염 큰소리로 “나는… 나는 군인이다. 군인은 응당… 전장에서 죽어야 한다! 당신들이 내가 강을 건느게 한 것은 나를 해친 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날이 크게 밝기 전에 허국장은 경호원의 권총으로 자진 순국하였다. 그  후 허국장은 국민정부에 의해 륙군중장계급으로 진급 추서되였다.

허국장이 순국한 후 유체는 고향인 성도시로 송환되였다. 조각가인 류개거가 허국장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조각상은 류상, 리가옥, 왕명장의 조각상과 함께 성도시 소성공원에 우뚝 솟아있어 4명의 장군상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나는 사천에서 나와 항전하며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치련다.” 이는 허국장이 사천을 떠나 항전하기 전에 집식구들에게 한 말이다. 사천을 떠날 당시 아들은 겨우 7살밖에 안되였는데 그 후로는 더는 아버지 얼굴을 한번도 보지 못하였다.

허건은 “나는 할아버지가 전투시 어떤 모양이였을가를 늘 생각하군 한다.”고 말하였다. 2015년 1월 민정부는 허건에게 허국장 항일렬사 증서를 발급하였다. 허건은 상덕에 가 할아버지가 전투하던 지방에서 항전전사들에게 헌화할 계획이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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