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영웅 왕선신

2019-12-14 11:02:14

“선신 동지는 조현 대점촌전투에서 쓰러졌으며 이 위대한 1945년 7월 1일을 우리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 중국인민을 위해 위대한 기여를 했다…” 강서성 길안현 혁명렬사기념관에는 항일영웅 왕선신의 평생 영웅사적을 이야기한 추모의 편지 한통이 놓여있다.

왕선신은 본명이 순성이며 1915년 11월 강서성 길안현 영양진 강남리피촌에서 태여났다. 1931년에 중국로농홍군에 참가해 나팔수가 되였다. 1932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1934년에 홍6집단군을 따라 장정의 길에 올랐고 18사 53퇀 공청단총지부 서기직을 맡았다. 1936년에 섬북에 도착하여 홍군대학에서 공부했다.

1937년 전면항일전쟁이 폭발한 후 왕선신은 팔로군 제120사 영교도원직을 맡았고 부대를 따라 산서항일전선으로 나아갔다. 1938년, 제120사가 특무퇀을 편성하여 기중으로 진군할 때 왕선신은 퇀정위직을 맡았다. 후에 소속부대와 기중 군민이 민중항일자위군으로 통합개편되여 1종대 정위직을 맡았다. 같은 해 7월, 1종대를 거느리고 무강현에서 일본군과 괴뢰군 200여명을 포위하여 절반 이상을 섬멸했다. 10월, 3개 현의 일본군과 괴뢰군의 두번째 포위공격을 물리쳤다. 같은 해 년말에 1종대가 기중경비려 1퇀으로 개편되였고 왕선신이 퇀정위직을 맡았다.

1940년 8월, 이름난 백퇀대전에서 왕선신은 부대를 거느리고 덕(주)석(가장)철도를 기습파괴하는 전투에 참가했다. 전투에 앞서 왕선신은 부대를 약간의 전투소조로 편성하고 철도레루, 레루못을 해체하는 등 기술훈련을 반복적으로 진행하였고 대량의 스파나, 수류탄, 사제폭발약 등 무기를 준비했다. 싸움에서 그는 앞장에 서서 돌진했고 직접 폭파소조, 레루파괴소조의 행동을 조직했으며 기관총수를 지휘해 도로와 교량을 파괴하고 배수로를 폭파하는 동지들을 엄호하여 적들의 철도 도합 40여킬로메터를 파괴했다. 적들 ‘모범구’ 조현의 두부마을에서 적 300여명을 섬멸하고 총 200여자루를 로획하여 팔로군 총사령 주덕과 부총사령 팽덕회의 표창을 받았다.

1942년 9월, 왕선신은 기중군구 6분구 사령원을 맡았다. 그는 적들의 ‘대소탕’ 후의 잔혹한 형세에 근거하여 부대를 분산시켜 평원유격전을 견지했다. 1943년 초여름, 왕선신은 직접 31구분대를 거느리고 진현의 민부를 압송하던 일본군과 괴뢰군을 매복습격했다. 반시간 동안의 치렬한 싸움을 거쳐 일본군과 괴뢰군 30여명을 죽이고 40여명을 포로했다. 그해 겨울의 어느날, 100여명 일본군과 괴뢰군이 갑자기 조현 소려촌의 한개 구소대를 돌연적으로 포위하였다. 당시 그 부근에 있던 왕선신은 인차 3개 대대, 두개 패를 지휘하여 두갈래로 나뉘여 갑자기 공격하여 적들을 역포위하였다. 그들은 구역 소대와 함께 안팎으로 협공하여 적들을 오리무중에 빠뜨렸으며 적 20여명을 사살하고 10여명을 생포했다. 이어 왕선신은 6분구 군민들을 이끌고 첩첩난관을 극복하면서 전투를 견지해 평원에서 항일투쟁을 견지하는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았다.

1945년 7월 1일, 왕선신은 부대를 거느리고 조현 전대장에 있는 적들의 거점을 공격했다. 싸움에 앞서 적정을 정찰하다가 왕선신은 가슴에 적들의 총탄을 맞고 불행하게 희생되였으며 그때 그의 나이는 30살이였다. 왕선신이 희생된 후 기중 6분구 당정군민들은 그를 위해 성대한 추도회를 거행했다.

현재 해마다 청명절, 렬사기념일이면 길안현은 중소학생들을 조직해 혁명렬사기념관을 찾아 왕선신의 영웅사적을 학습하면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혁명선렬을 추모하고 있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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