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민주를 위해 싸운 왕임

2020-01-13 08:44:26

왕임은 본명이 왕석립이고 1901년에 출생했으며 하남성 동백현 평씨진 사람이다. 1929년 가을에 왕임은 북평 조양대학 법률학부를 졸업했고 구사회의 암흑과 불공평을 통감하고 이름을 왕임이라고 고쳤다. 1931년 ‘9.18’사변 이후 왕임은 애국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1933년 대학을 졸업한 왕임은 고향에 돌아와 교편을 잡았으며 경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 소송을 해주었다. 1934년, 서안에 돌아와 섬서성제1농업직업학교에서 글을 가르치며 변호사를 겸임했으며 얼마 후 교원직을 버리고 전직 변호사로 활동했다.

왕임 렬사

항일전쟁 승리를 전후하여 왕임은 서안에서 중국민주동맹중앙상무위원, 서북총지부 책임자를 맡았던 두빈승을 알게 되였다. 두빈승의 영향하에 왕임은 국민당통치의 암담한 부패와 반동본질을 똑똑히 보아냈으며 중국을 구출하는 희망을 중국공산당에 기탁해야 한다는 것을 확신했다. 1945년, 왕임은 중국민주동맹에 가입했으며 그해 10월 법제학회를 발기, 조직했다. 1946년 2월 10일, 중경 ‘교장구사건’이 발생한 후 국민당당국은 각지에서 새로운 반민주, 반공산 역류를 불러일으켰으며 이는 중국공산당과 민주동맹의 강력한 반대를 받았다.

발행부수가 3만여부에 달하는 민주동맹 서북총지부 기관보 《진풍일보-공상일보 련합판》(《진풍보》로 략칭)은 국민당의 내전 음모를 폭로하는 문장을 발표해 국민당 당국으로부터 탄알을 편지 속에 넣어보내고 신문 파는 아이를 구타하며 우편국에서 신문을 검사, 억류하는 등 위협을 받았다. 폭행 앞에서 왕임은 용감하게 《진풍보》에 인신안전을 위협하고 언론자유를 해치는 특무들의 행위를 질책하는 문장을 발표했다. 3월 1일, 특무들이 《진풍보》 영업부에 대량 진입해 사무용품을 파괴하고 신문사 간판을 망가뜨렸다. 이에 분개한 왕임은 《진풍보》 법률고문을 담당하고 신문사 영업부 파괴사건과 관련해 법정에 기소했으며 여론을 짓밟고 민주를 타격하며 인권을 침범한 반동파들의 죄행을 날카롭게 고소했다.

국민당 당국은 왕임부터 처리해 서안의 평화, 민주 운동을 일층 진압하기로 음모를 꾸몄다. 1946년 4월 9일, 국민당 특무는 마약을 검사한다는 명목으로 왕임의 집을 불법 압수, 수색했다. 특무들은 약담배를 가져다 놓고 왕임이 마약을 피우고 판매했다고 죄를 뒤집어씌우고 무함하였으며 그를 체포하여 감옥에 넣었고 그의 변호사사무소를 차압하고 봉인하였다. 왕임은 감옥에서 의지가 강했고 굴할 줄 몰랐으며 적들과 끝까지 론쟁을 벌렸다. 사회 각계로부터 왕임을 석방하라는 목소리가 갈수록 드높아지자 국민당 당국은 왕임을 신속히 처형하기로 결정했다. 4월 23일, 서안시경비사령부는 왕임을 ‘아편 범죄자’란 죄명으로 서안 옥상문 밖에서 총살했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45살이였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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