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민주사업을 추구한 리공박

2020-01-15 08:38:48

강소성 상주시 무진국가고신개발구 북구 공박로 동촌 129호에 위치한 리공박의 생가는 현재 리공박 사적전시청으로 재건되였는데 전시청 중앙에는 리공박 반신 조각상이 있고 량옆에 오색기가 세워져있으며 사면 벽에는 사적게시판이 걸려있다. 하나 또 하나의 사진들을 보노라면 마치 정세가 불안정했던 그 시대로 돌아간듯하며 천하의 태평을 위해 개인의 안위도 돌보지 않고 끝까지 분투한 그 시대 지식분자들의 만강의 열정이 느껴진다.

리공박 렬사

리공박은 본적지가 강소 무진이며 위대한 애국주의자이고 확고한 민주전사이며 중국민주동맹 초기의 지도자이자 걸출한 사회교육가로서 ‘애국 7군자’중의 한 사람이다.

리공박은 어린시절 가정형편이 어려웠지만 중학교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했고 정의감이 많았다. 5.30운동기간 상해학생들의 동맹휴학 시위행진에 적극적으로 참가했으며 또 고향 호당진으로 돌아가 공상학 각계의 애국인사들과 련합하여 ‘5.30운동 후원회’를 설립했다. 1926년, 국민혁명군이 북벌을 시작하자 리공박은 붓을 내던지고 종군하였다. 4.12반혁명정변 때문에 그의 환상은 깨졌고 그는 분연히 군대를 떠났다. 1928년, 리공박은 미국에 류학을 갔고 그동안 추도분의 요청으로 《생활》잡지 통신원을 겸임했으며 미국 국정을 고찰하고 해외통신 30여편을 썼으며 1930년 귀국했다.

전국적인 항일전쟁이 폭발한 후 리공박은 항일민주운동에 적극 뛰여들었다. 1938년초, 염석산의 요청에 응해 산서 림분에 가 민족혁명대학을 세웠다. 그해 7월, 《전민주간》과 추도분이 주관한 《항전》은 ‘전민항전’으로 합병되였다. 1937년 8월부터 1940년 11월까지 그는 극히 간고한  항일전쟁의 환경 속에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여러번 화북항일전선에 가 전선교육에 종사했으며 단합하여 항일하도록 호소했다.

항일전쟁 승리 후 리공박은 평화와 민주를 적극 쟁취하였다. 그와 도행지는 사회대학을 공동으로 창설하고 민주교육의 리론과 실천을 서로 결부시켜 《민주교육》을 책임지고 편집하면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1946년 2월 10일, 국민당 특무들은 중경 ‘교장구 류혈사건’을 일으켰고 리공박, 곽말약, 마인초 등 60여명이 부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1946년 7월 11일 저녁, 리공박은 운남 곤명에서 국민당 특무들에게 암살당했다. 그는 한평생 추구하던 민주사업을 위해 생명을 바쳤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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