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애국주의자이고 민주혁명전사인 문일다

2020-01-16 08:41:36

문일다는 1899년에 태여났으며 호북 희수현 사람이고 중국민주동맹 동맹원이다. 1912년에 북경청화학교에 입학했고 청화신극사, 미술사의 발기자이며 일찍 《청화주간》 총편집 및 《청화학보》 편집을 맡았다.

1919년, 문일다는 5.4애국운동에 참가했다. 6월 그는 청화학교 학생대표로 상해에 가 전국학생련합회 설립대회에 참가했다. 1922년 미국으로 류학을 갔고 선후하여 시카고미술학원, 콜로라도대학에서 미술을 배웠으며 동시에 계속 대량의 정력을 투입해 백화시창작과 문학연구에 종사했다. 그동안 그는 저명한 <칠자지가> 등 나라를 사랑하고 고향을 그리는 작품 여러 편을 발표했다. 1923년 국내에서 시집 《홍촉》을 출판했다.

문일다 렬사

1925년, 문일다는 귀국하여 북경예술전문학교에서 교무장을 맡았고 또 북경대학에서 외국문학을 가르쳤다. 1927년 등연달의 초청에 응해 무한국민혁명군 총정치부에서 예술고사업을 주관했다. 얼마후 문일다는 부대를 떠나 남경제4중산대학교에서 외국어학부 주임을 맡았다. 1928년 3월 그는 《신월》 잡지 편집사업을 했고 그해 가을에 무한대학에 가 문학원 원장 겸 중문학부 주임을 맡았다. 1930년, 청도대학 문학원 원장을 맡았고 1932년 북경에 돌아와 청화대학 중문학부에서 교수로 있으면서 중국고전문학 연구에 종사했다.

1937년 7월, 전국 항일전쟁이 폭발했다. 그는 학교를 따라 곤명으로 가 북대, 청화, 남개 등 3개 대학을 합병한 서남련합대학에서 교수직를 맡았다. 엄혹한 현실 앞에서 그는 단연히 항일구국과 민주를 쟁취하고 독재를 반대하는 투쟁에 뛰여들었다. 1943년, 그는 중공 곤명지하당과 민주동맹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고 당은 부동한 경로를 통해 그에게 모택동의 《신민주주의론》 등 저작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중국을 구하려면 반드시 근본적으로 제국주의와 봉건군벌의 통치를 뒤집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1944년 그는 중국민주동맹에 가입했고 후에 민주동맹 중앙집행위원, 민주동맹 운남지부 선전위원 겸 《민주주간》사 사장을 맡고 적극적인 민주투사가 되였다.

항일전쟁이 승리한 후 장개석은 독재, 내전 정책을 견지했다. 1945년 12월 1일, 곤명에서 국민당 당국이 학생애국운동을 진압한 ‘12.1’참안이 발생했고 문일다는 직접 조난렬사들을 위해 조문을 썼으며 《12.1운동 전말기》를 집필하여 참안의 진상을 폭로하였다. 1946년 6월 29일, 민주동맹 운남지부는 사회 각계 초대회를 거행했으며 회의에서 그는 중국공산당의 호소에 호응하여 ‘민주단결, 평화건국’ 립장을 견지하겠다는 민주동맹의 결심을 밝히면서 ‘각계의 벗들은 친밀하게 손잡고 공동으로 내전을 반대하고 민주를 쟁취하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을’ 호소했다.

7월 11일, 민주동맹의 책임자이며 저명한 사회교육가이며 당년의 구국회 7군자의 한 사람인 리공박이 곤명에서 국민당 특무들에게 암살당했다. 문일다는 즉시 전국에 공개전보를 보내서 반동파들의 죄행을 성토했다. 7월 15일, 운남대학에서 리공박추도대회가 거행되였다. 그날 오후, 그는 《민주주간》 기자초대회를 열고 리공박암살사건의 진상을 더한층 폭로했다. 초대회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문일다는 갑자기 국민당 특무들의 매복습격을 당하여 몸에 10여발의 총탄을 맞고 새 중국을 창건하기 위해 마지막 한방울의 피까지 흘렸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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