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하게 살고영광스럽게 희생된 류호란

2020-02-09 11:03:47

산서성 문수현의 류호란기념관 광장에 있는 기념비에는 “위대하게 살고 영광스럽게 희생되였다.”라는 글귀가 새겨져있으며 묘소 앞에는 8메터 높이의 한백옥 조각상이 우뚝 서있다.  

류호란은 1932 년 산서성 문수현 운주서촌의 한 가난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났다. 전국적인 항일전쟁이 폭발한 후 중국공산당은 산서인민을 령도하여 구국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문수현에도 항일민주정부가 설립되였다. 이때로부터 류호란은 점차 혁명의 리치에 접근하기 시작하였고 한사람의 삶이 어떻게 하면 가치가 있고 의의가 있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류호란은 촌의 항일아동단에 적극 참가하여 친구들과 함께 팔로군을 위해 보초를 서고 편지를 날랐다. 한번은 팔로군이 적군 1개 퇀을 포위하게 되였는데 현 녀성부장은 명령을 받고 민병 담가대를 조직하여 전선을 지원하기로 하였다. 류호란과 몇명의 녀성들도 전선을 지원하려고 나섰지만 부대 지휘관은 그들에게 전투가 진행중이여서 매우 위험하다고 말렸다. 류호란은 두렵지 않다고 과감하게 대답하고는 전투에 뛰여들어 부상자들을 위해 상처를 치료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사들을 도와 탄약을 운반하기도 하였다. 이때 류호란은 겨우 13살밖에 안되였다.

항일전쟁이 승리한 후 국민당 염석산 부대가 문수현성을 점령하자 해방구의 군민들은 무기를 들고 승리의 열매를 보위하였다. 1945년 11월, 류호란은 현당조직에서 주최한 부녀훈련반에 참가하였다. 40여일간의 학습을 통해 그녀는 많은 혁명적 도리를 알게 되였고 계급적 각오가 한층 제고되였다. 마을로 돌아온 후 그녀는 운주서촌 부녀구조회 비서를 맡고 당원들과 함께 군중을 발동하여 지주를 투쟁하고 공량을 바치며 군화를 만들고 청년들을 동원하여 참군 신청을 하였다. 류호란은 투쟁에서 가일층 단련되고 성장하였으며 1946년 6월에 중국공산당 후보당원으로 비준되였는데 그해 그녀는 겨우 14살밖에 안되였다.

1947년 1월 12일, 류호란은 국민당 군대와 지주 무장력에 체포되였다. 적들의 온갖 위협 앞에서 류호란은 지조를 굽히지 않았으며 “죽기를 무서워했다면 공산당원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악에 받친 적들은 그녀를 체포된 6명의 혁명군중과 함께 작두로 처참히 살해했다. 그녀는 짧디짧은 청춘으로 불후의 정신과 생명의 선언을 써냈다.

1947년 3 월 하순, 모택동이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관을 이끌고 섬북을 전전할 시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처 서기이며 중앙종대 사령원인 임필시가 류호란의 사적을 회보하자 모택동은 깊은 감동을 받고 붓을 들어 “위대하게 살고 영광스럽게 희생되였다.”는 제사를 써주었다. 류호란기념관은 1957년 설립된 이래 국내 참관자 1300여만명과 110여개 나라와 지역의 우호인사 4000여명이 다녀갔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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