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행진곡> 창작자 맥신

2020-02-25 14:18:46

麦新:《大刀进行曲》创作者

“대도로 왜놈들의 머리를 내리쳐라. 전국의 무장한 형제들이여, 항전의 그날이 다가왔다!” 82년 전 격앙되고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대도행진곡>이 항일의 봉화 속에서 탄생하였는데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한 사람이 바로 맥신이다.

맥신의 원명은 손배원이고 일찍 손묵심, 철극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1914년 12월, 상해에서 태여났고 1929년 시험을 보고 상해의 미국상인이 경영하는 ‘미아보험회사’에 견습생으로 들어갔으며 후에 직원으로 되였다. 1931년, 9.18사변 후 항일구국운동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맥신은 음악을 좋아했으며 상해항일구국단체 ‘민중합창회’의 공연활동과 진보적인 음악조직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섭이의 <개로선봉>, <의용군행진곡>과 선성해의 <구국군가>, <고향을 수복하자> 등 항일구국 가곡을 대중들에게 가르쳐주었다. 1936년 8월 하순, 맥신이 창작한 처녀작 <9.18 기념가>가 선성해의 작곡을 거쳐 상해에 신속히 전파되였다. 이후 그는 또 ‘희생은 최후의 관두에 이르러’, ‘마드리드를 보호’ 등 유명한 작품들을 창작했다.

1937년 7월 7일, 일본제국주의는 로구교사변을 일으키고 전면적인 중국침략전쟁을 발동했다. 로구교사변 이튿날, 중국공산당은 전국에 보내는 전보를 통해 전국 인민, 군대와 정부는 단합하여 민족통일전선이란 탄탄한 만리장성을 쌓아 일본의 침략에 맞서고 일본침략자를 중국에서 몰아낼 것을 호소했다. 이때 로구교에 주둔하고 있던 국민당 제29군 대도팀이 적을 용감히 무찌르고 있다는 첩보가 부단히 전해왔다. 맥신은 뜨거운 피가 끓어올라 잠을 이룰 수 없었으며 8월 8일 <대도행진곡>이란 불후의 가곡을 창작했다. 이 노래는 탄생하자마자 질풍노도와도 같이 장강남북, 도시와 농촌, 전선과 후방에 신속히 널리 전해졌고 민족정신을 불러일으키고 민족해방을 쟁취하는 나팔소리로 되였다.

1937년 9월, 맥신은 중공 상해지하당에서 조직한 ‘전선봉사팀’에 가입하여 전선에 달려가 항일투쟁에 참가했다. 1938년 1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맥신은 1940년 10월 주은래의 비준을 거쳐 연안에 가 ‘로신예술학원’ 음악학부당지부 서기를 담임하고 유명한 대생산운동, 정풍운동 및 연안문예좌담회에 참가했다.

1945년 8월, 항일전쟁이 승리한 후 맥신은 간부들과 함께 동북으로 달려갔다. 1946년 2월, 내몽골 커얼친초원 저리무맹 개로현에 전근되여 사업했으며 선후하여 선전부장, 조직부장을 담임하고 당지의 토지개혁운동과 무장투쟁에 참가하고 령도했다. 이 기간 그는 또 시대요구를 반영하는 일련의 혁명가곡을 창작했다. 1947년 6월 6일, 맥신은 임무를 집행하던중 강도들의 습격을 받아 장렬하게 희생되였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33세였다.  

오늘의 상해 격치중학교 교정에는 옛 학우였던 맥신이 창작한 <대도행진곡>이 높이 울려퍼지면서 항일구국의 웅대한 포부와 새시대 젊은이들의 생기발랄함이 시공간을 뛰여넘어 함께 여울치고 있다. 격치중학교 격치문화연구실 주임 가서봉은 학교에서는 ‘맥신’컵 예술류상을 설치하여 학생들이 맥신의 뜨거운 애국감정과 강인한 풍격을 계승해가도록 격려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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