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난 항일녀성혁명가 김순경
김순경의 아버지 김순경은 중국의 이주정착지를 북평 통주로 잡았었다. 1921년 그해 김순경은 겨우 9살내기였고 오빠 김문철은 11살 어린 아이였다.

2020-03-15 15:57:24

주문빈을 뜻하는, 문빈로 안내글 보이는 북경시 로하중학교 건물일각. (사진자료)

1

중국혁명 속 조선족혁명사를 펼치면 지난 세기 30년대 북경과 상해 공청단북평시위, 공청단중앙과 공청단강소성위, 할빈 공청단만주성위에서 활동한 저명한 항일녀성혁명가 김순경(金顺卿, 1913ㅡ1936)이 떠오른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중국조선족사회에서는 이렇듯 저명한 항일녀성혁명가를 거의 모르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이에 <우리 민족의 무명영웅들> 련재 77회로 지금까지 알려지는 김순경 녀사를 처음 소개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풀어보고저 한다.

항일녀성혁명가 김순경은 30년대 중반 한때 중공할빈시위 서기를 지내다가 후일 연안에서 강생한테 피살된 저명한 혁명가 김문철의 녀동생으로서 오빠 김문철, 본명 김찬(金灿)이 1911년 생일 때 김순경은 1913년 생으로 두살 터울이다.

이들 오누이의 고향은 평안북도 진남포(镇南浦). 아버지 김병순(金炳恂)은 진남포 갑부, 재력가이자 항일독립운동가로서 슬하에 줄줄이 5남매를 두었으니 큰아들 환(煥•1890년생), 둘째아들 우경(又卿•1896년생), 큰딸 일경(日卿)이려니 막내아들이 김문철로 알려지는 찬(燦)이요 막내딸이 오늘의 주인공 순경(順卿)이다. 이들의 출생지는 진남포부(镇南浦府) 억량기리(億两机里)로 알려진다.

김문철의 아버지 김병순은 조선의 고향ㅡ평양 진남포에서 전 민족적인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고 갑부답게 항일독립운동 자금을 이어가던 열렬한 항일독립운동가이고 어머니는 그런 남편을 한마음으로 받들던 조선녀성이였다. 이런 항일독립운동가 출신 부모님들에게 받들려 오빠 김문철과 녀동생 김순경은 학교갈 나이가 되자 선후로 진남포 사립득신학교(得信学校)에 다니게 되였다.

1929년 1월 5일자 《동아일보》 제5면에 실린 진남포 사립득신학교 건물사진을 보면 2층 건물에 기와집으로 된 득신학교가 웅장한 모습으로 안겨온다. 그러나 김순경과 그의 오빠 김문철은 이 웅장한 건물로 드나들지 못하였다. 원인은 이제 바로 뒤에서 드러나지만 김순경의 가족이 1921년에 중국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득신학교 력사를 헤아려보면 득신학교는 장로교 선교사가 세운 진남포 룡정리교회 소속 사립학교로서 1908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다. 1921년에 13개년을 경과했다는 것으로 보아 1908년으로 짐작된다. 원래의 교사는 위치도 그닥잖고 늘어가는 학생수에 비해 교실이 따르지 못한 원인으로 새 교사를 짓게 되였다. 1928년 10월 24일자 《동아일보》 제5면 관련 기사에 따르면 새 교사는 바로 “얼마 전에 신축”되였으니 김순경과 오빠 김문철은 새 교사를 드나드는 행운을 지니지 못하였다.

김순경의 아버지 김병순은 평안남도 진남포의 이름있는 재력가라지만  항일독립운동에 자금을 대면서 1919년 3.1운동에 나선 것 때문에 일제의 감시인물로 떠올랐다. 사태가 이쯤되자 김병순은 중국으로의 이주를 결심하였다. 고향을 떠나 압록강을 건넌 때가 1921년이고 이주지는 북평에서 동으로 약 20킬로메터 되는 통주(현재 통현)로 되니 중국적 가입이 현실로 펼쳐졌다.

김순경이 어린 시절 다니던 조선 진남포 사립득신학교. 1929년 1월 5일자 5면에 실린 2층 득신학교 건물.

2

그때 북평 통주에는 저명한 혁명가 김성호, 즉 주문빈의 아버지이고  김병순의 동지인 항일독립운동가 김기창이 이미 1914년 봄에 일가식솔을 휘동하여 이주생활을 하고 있었고, 김병순의 둘째아들 김우경이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통주에 정착해 이미 나름의 자기 사업에 나서고 있었다. 이에 김순경의 아버지 김병순은 중국의 이주정착지를 북평 통주로 잡았었다. 1921년 그해 김순경은 겨우 9살내기였고 오빠 김문철은 11살 어린아이였다. 그들 오누이는 선후로 오늘의 통현(通县) 로하소학교(潞河小学)와 로하중학교를 다니게 되였다. 로하학교는 미국 공리회 전교사(传教士) 강대덕 부부(江戴德夫妇)가 1867년 12월에 전교 활동을 하는한편 세운 로하남숙(潞河男塾)의 후신으로 된다. 최초의 로하남숙은 학생이 불과 10여명이였지만 점차 규모가 상당한 미국교회학교ㅡ로하소학교와 중학교로 발전하면서 그 시절 구중국에서 특수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사립로하학교의 개략적인 한단락 서술이다. 김순경 오누이로 놓고 말할 때 획기적인 사변은 그들 오누이는 이곳 로하소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면서 혁명의 걸음마를 뗀 사연이다. 그들을 혁명에로 손잡아준 이는 아버지 김병순의 동지인 김기창 어른의 아들들인 김성호(金成镐, 즉 周文彬)와 그의 형 김영호이다.

이들 형제는 1927년에 벌써 북평 통현에서의 첫 중국공산당 지부를 로하중학교에 세우고 혁명활동을 벌린 혁명가들로서 김순경 오누이에게 주는 영향이 자못 깊었다. 로하중학교 시절 김문철은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김순경은 공청단에 가입하면서 혁명의 장도에 올랐다. 그때 로하중학교에는 오빠 김문철과 학급동창인 중국인 학생 장문렬이 있었으니 이제 뒤에서 자세히 펼쳐지지만 장문렬은 후에 김순경의 남편으로, 직업혁명가로 생을 같이하게 된다.

김순경이 언제 로하소학교에 입학하고 언제 로하중학교에 입학하였는지는 똑똑치가 않다. 오빠 김문철로 보면 1928년에 로하중학교에 입학한 것으로 나타나니 오빠보다 두살 어린 김순경의 중학교 입학은 얼마든지 추산할 수가 있다.

1928년 가을 이후 로하중학교 당지부 서기인 김성호가 북평 지하당기관과 연경대학과 보인대학에서 활동할 때 그해 18살인 김문철은 잠시 서울 경신중학교 고등과에 다니다가 다시 북평 통현의 로하중학교 고등과를 다니였고 1929년에 학업을 마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 시절 김순경은 이미 로하중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알고 보면 김순경과 김문철 오누이의 항일혁명가의 삶은 북평 통현의 로하중학교 시절부터 시작된다. 1929년에 로하중학교를 마친 김문철은 그해 2월, 독일류학을 간다면서 북평을 떠나 상해행에 오른다. 그러나 독일류학의 실질은 김문철이 북평 지하당조직, 적절히 말하면 선배인 김성호, 즉 주문빈의 파견을 받고 상해로 가는 길이였다.

김순경의 고향 ㅡ 옛 진남포 일각. (사진자료)

3

상해 포석루 128번지(蒲石楼128号), 오늘의 황포구 장락로(长乐路) 128번지에는 중국공산당 상해조선인지부ㅡ중국공산당 강소성위원회 법남구(法南区)지부가 자리잡고 있었다. 김문철은 조선인지부 실무자인 김형선(金炯善, 1904ㅡ1950)을 만나 중대한 사명을 지니게 되였다. 때는 1929년 2월이니 김문철은 상해에서 혁명활동을 개시하는 한편 수차 서울과 평양으로 파견되였다.

그 시기는 1929년부터 1931년 사이이다. 김문철이 조선 국내로 다시 파견된 것은 1931년 1월, 그 시절 김문철이 서울과 평양 진남포 등지에서의 활동모습은 그 시절의 1933년 6월 3일자 《동아일보》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1932년 5월 이후 김문철은 중국으로 돌아와 상해와 북평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그해 9월 11일에 다시 조선 국내로 잠입하였다.

그중 1931년의 김문철을 보면, 이해 9월초까지 평양 진남포에서 활동하던 그는 김형선의 전갈을 받고 서울로 올라갔다. 그들이 만난 곳은 서울 홍파동 언덕에 위치한 한 양옥집. 이 양옥집은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카  신향란의 집으로서 집문패는 홍파동 2번지 홍어길(洪鱼吉)로 되여있었다. 홍어길은 신향란의 남편으로서 신채호는 홍어길의 결혼을 극구 반대했지만 허사였다.

그만큼 홍어길은 신채호가 그토록 반대하던 수구파 후손인 데다 이들 집이 김형선과 김문철을 비롯한 사회주의자 계렬 혁명가들의 접선장소로 자주 리용될 줄 누가 알았으랴. 그로 하여 집주인 홍어길은 경찰에 련행되기도 하다가 이 집이 후일 음악가 홍란파의 집으로 되여 현재 ‘홍란파기념관’으로 탈바꿈하였으니 세상사 기기묘묘도 하다.

공교로은 것은 1931년 그 시절 북경 통현 로하중학교시절 김순경도 서울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서울 홍어길의 집에 나타났다고 하니 보다 기기묘묘하지 않은가. 이때를 보여주는 1931년 9월 13일자 《동아일보》 2면 기사ㅡ<홍파동수색(红把洞搜索) 양명(两名)을 검거>를  보기로 하자.

신의주의 고등게형사대는 수일전부터 경성에 추장하야와서사방으로 활동중이든바 서대문서의 응원을어더 작十一에 시내홍파동(红把洞 二번지 홍어길(洪鱼吉)씨의 집에서 중국북평에 류학중이다가 다니려와잇든 김순경(金淳卿)양과주인홍씨까지 검거하야 서대문서에서 잠시취조를마치고 신의주로압송하얏다한다

철자와 토, 띄여쓰기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도 고치지 않은 기사 그대로이다. 오빠 김문철이 다녀간 바로 그즈음에 김순경이 서울 홍어길의 집에 나타났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여 서울 서대문서에서 취조를 받고 신의주로 압송되였었다. 김순경 체포사건은 준확히는 몰라도 1931년 9월 13일자 《동아일보》 2면 여러 기사로 보아 ‘전조선 학생층 적색문화운동’과 관련되는 것 같다. 오빠 김문철이 그 적색문화운동의 진두에 서있는데 김순경도 이 운동에 관련되여있었다.


4

김순경이 누구의 파견으로 어떻게 서울에 나타났는지는 알지 못한다. 오빠 김문철과 동행했는지 아니면 따로 나섰는지도 알 수가 없다. 동아일보의 기사를 보면 김순경이 서울 홍어길의 집에 나타난 시간은 김문철과 거의 같은 시간이고, 북경 통현의 로하중학교 재학생 시절이였다. 십중팔구는 김문철처럼 그들 선배 김성호와 관련되고 상해의 김형선과 이어지는 조선인 중국공산당 계렬 항일혁명가들과 관련되는 행동이였다.

다행히 김순경 관련 적색문화운동은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고등보통학교를 비롯한 학생운동으로 머물러 이른바 중대사건으로는 비화되지 않았다. 일제놈들은 대대적인 학생검거를 벌리면서 오산고등보통학교 교무주임 함석봉 등도 체포했다가 석방하고만다. 그런 연유로 김순경도 서울 서대문서롤 거쳐  신의주경찰서로 련행됐다가 풀리게 되였다.

신의주 일제경찰서에서 풀린 김순경은 압록강을 다시 건너 안동(오늘의 단동)을 거쳐 북평으로 돌아갔다. 북평 통현의 로하중학교를 어느 때 어떻게 졸업하였는지 알려지는 자료가 보이지 않는다. 긍정적인 것은 1931년 9월 이후부터 본격적인 직업혁명가의 길을 걷는 김순경의 모습을 보게 되는 기꺼움이라 할가.

본문에서 스치고 지났지만 1931년 그 시절 김순경 오누이를 혁명에로 손잡아준 대선배ㅡ김성호(주문빈)씨가 북평의 지하당기관에서 활동하면서 연경대학과 보인대학의 학생운동, 중공당조직을 지도하고 있었다. 김순경은 조직선을 밟으며 다시 김성호를 찾았고 김성호의 주선으로 로하중학교시절 오빠 김문철의 같은 반 동창이자 공산당원인 장문렬과 더불어 북평의 지하당조직과 공청단북평시위 지하혁명가로 활동했음을 보여준다. 그 시절 김순경은 중국공산당 당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 시절의 북평에는 김순경에게 있어 또 한분의 미더운 혁명가가 있었으니 그 혁명가의 이름은 도개손(陶凯孙, 1912ㅡ1939), 무석사람, 일본 도꾜출생의 도씨네 아홉째이다. 1925년에 다섯째 언니 도우경(陶虞卿)을 따라 북평의 공덕학교(孔学校德)를 다니다가 이듬해 1927년 16살 때 공덕학교 같은 반 동창인 전삼강(钱三强,소흥사람이고 후날 중국의 저명한 과학가), 탁려(卓励) 셋이서 북경대학 예과에 시험쳐 합격되였으니 도개손은 북경대학 지질학부 녀대생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였다.

  그러던 도개손은 로하중학교 출신선배인 김성호를 따라 북평에서 지하당 공작에 나선 김순경의 오빠 김문철을 알게 되고 김문철과 사랑을 속삭이는 련인 사이로 되였다. 이는 1930년경으로 알려진다. 워낙 중국어에 막힘이 없어 중국인을 방불케 하던 김손경은 중국인 언니를 모시게 되여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1931년 11월, 북경대학의 근 200명 대학생들이 남경으로의 남하시위에 나섰을 때 언니 도개손이 그 조직자의 하나로 나서자 김순경은 물심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32년 7월, 도개손이 공청단북평시위 선전부장으로 직업혁명가의 생애를 시작하면서 김순경은 같이 어울리는 소중한 기회를 가지였다.

  •  
  • 많이 본 기사
  • 종합
  • 스포츠
  • 경제
  • 사회

주소:중국 길림성 연길시 신화가 2호 (中国 吉林省 延吉市 新华街 2号)

신고 및 련락 전화번호: 0433-2513100  |   Email: webmaster@iybrb.com

互联网新闻信息服务许可证编号:22120180019

吉ICP备09000490号 | 吉新出网备字005号 | Copyright © 2007-2017

吉公网安备 22240102000014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