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영웅 왕극근

2020-03-24 08:30:10

안휘성 부양현 혁명렬사관에 가면 한쪽 벽에 2000여명의 부양 출신 렬사들의 이름이 새겨져있는데 전투영웅 왕극근의 이름도 그 속에 있다.

왕극근은 1920년에 태여났으며 안휘성 부양사람이다. 1939년 7월, 국민당 군대에 강제 징병되였다가 1945년 10월 한단전역에서 해방을 받아 중국인민해방군에 참가했으며 1946년 9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해방군에 참가한 후 왕극근은 당과 인민군대의 양성하에 정치각오가 높고 용감하며 전투를 잘하는 우수한 전사로 신속히 성장했다. 1946년 6월, 해방전쟁이 시작되여서부터 왕극근은 적 232명을 살상하고 14명을 포로했으며 보총 8자루를 로획하였고 9번 공을 세워 ‘1급 전투영웅’, ‘모범공산당원’의 영예를 받았다.

왕극근 렬사

1946년 9월, 왕극근은 반장으로 승급했다. 그는 인민군대의 영광스러운 전통을 계승, 발양하여 사상사업을 참답고 심층적이며 세밀하게 잘하였다. 반에 신입전사가 보충될 때마다 그는 늘 자신의 경험을 례로 들면서 교양하였고 그들의 무산계급 각오를 계발하였다. 그는 ‘집에서는 부모님에 의거하고 혁명에서는 서로 도와야 한다’는 격언으로 전사들을 단결을 잘해야 한다고 교육하였으며 2개 호조소조를 구성하고 사상, 기술, 생활 3대 호조활동을 전개하였는데 이는 반 집단의 결집력과 전투력을 높이는 데 아주 큰 역할을 일으켰다. 1946년 10월 6일, 산동 거야현 서장저격전에서 왕극근은 전사들을 이끌고 국민당군과 하루 동안 치렬하게 싸웠으며 적들의 진공을 수차례 물리치고 대량의 적을 소멸했으며 사상자 한명 없이 임무를 원만히 완수했다. 싸움이 끝난 후 그의 반은 집단 1등공을 세웠고 3명이 전투영웅으로 선정되였으며 왕극근은 패장으로 임명되였다. 그해 12월, 연안 《해방일보》는 사설을 발표해 왕극근을 《중국인민의 해방사업을 위해 새로운 영예를 창조한 인물》이라고 높이 평가했으며 ‘왕극근운동’을 보편적으로 전개할 것을 전 부대에 호소했다. 왕극근의 ‘3대 호조’ 훈련경험은 신속히 전군에 보급되였으며 인민군대를 건설하는데서 중대한 역할을 발휘하였다.

1947년 6월 30일, 진기로예 해방군 주력부대 12만명이 황하를 강행 도하하여 로서남전역에 참가했고 7월 10일 19시, 제6종대는 정도성을 공략하는 전투를 발동했다. 왕극근은 정도성 북문을 공략하는 돌격임무를 맡았으며 싸움에서 왕극근은 중상을 입었지만 여전히 이를 악물고 전투를 지휘했으며 끝내 전사들을 거느리고 정도성 성루에 올랐다. 11일 새벽, 왕극근은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으로 영용하게 희생되였는데 그때 그의 나이는 27살밖에 안되였다.

왕극근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생전 소속 패를 ‘왕극근패’로 명명하였으며 중공 정도 현위와 정부는 정도현 북문을 ‘극근문’으로 개칭하기로 결정했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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