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투사 두빈승

2020-03-27 09:01:48

杜斌丞:民主斗士

“할아버지는 평생 진보를 추구하고 진리를 추구하였으며 혁명을 견지하였다.우리는 새 중국을 위해 희생된 선렬들을 잊지 말고 그들의 혁명정신을 세세손손 전해가야 한다.” 두빈승 렬사의 손자인 두방빈은 할아버지의 유지를 더욱 잘 계승하기 위해 1995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의무적으로 우수한 빈곤가정 학생을 부축하는 두빈승 장학금 사업을 전개하고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두빈승은 1888년 섬서성 미지현에서 태여났다. 1913년 여름 북경국립고등사범학교 력사지리학부에 입학하여 학습하였고 1917년 졸업한 후 섬북에 돌아가 유림중학교에서 교무주임 겸 력사지리 교원을 겸임하였으며 1918년에 교장직을 맡았다. 학교를 운영하는 기간 그는 새 사상을 전파하고 과학과 민주를 제창였으며 교육제도를 개혁하면서 교내외 보수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리자주, 위야주 등 공산당원과 진보인사들을 초빙하여 교편을 잡게 하였고 학생들의 애국운동을 지지하여 류지단, 사자장 등 대량의 우수한 혁명인재를 양성하여 섬서교육사에서 한 시대의 새로운 기풍을 개척했으며 주은래는 그를 “혁명적 교육가”라고 불렀다.

1927년 두빈승은 북경,상해 등지에 가서 정치정세를 고찰하면서 중국혁명에 있어서 공산당의 중요성을 인식하였다. 그는 “중국혁명의 전도는 인민대중의 궐기에 달렸고 인민대중의 궐기는 또 전적으로 중국공산당의 조직과 령도에 달렸다.”고 말하였다.

1930년 두빈승은 서안에 돌아와 양호성의 고급참의와 성정부 참의를 맡았고 후에는 또 섬서성 청향국 국장을 맡았다. 그는 갖은 방법을 다해 류지단, 류란도,장덕생 등 공산당원들을 구출하였고 섬감유격대의 총탄,군복 등 물자를 후원하였다. 두빈승의 서안 거주지도 공산주의자들의 엄페부와 대피소로 되였다.

1933년, 두빈승은 양호성에게 공산당과 련합하여 장개석을 반대하고 항일할 것을 제안함과 아울러 여러 모로 노력하여 양호성의 17로군과 홍 제4방면군의 ‘서로 침범하지 않고 공동으로 장개석을 반대하는 협의’를 달성하였다. 중앙홍군이 장정을 마치고 섬북에 도착한 후 두빈승의 련락으로 양호성 부대와 중앙홍군은 련계를 건립하고 상호 불침범협의를 달성하였다.

서안사변 후 두빈승은 개편된 섬서성정부 비서장직을 인계받고 장학량과 양호성의 ‘8가지 주장’ 작성에 참여함과 동시에 홍군, 동북군, 서북군 3개측 련합판공청의 서북군 대표를 맡았으며 서안사변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다방면으로 뛰여다녔다.

1940년 두빈승은 “공산당과 내통”한다는 혐의로 수색조사를 받았고 그 후 국민당정부와 모든 관계를 단절하였으며 항일민주운동에 전심전력으로 투입하였다.

1942년 두빈승은 중국민주정단 동맹에 가입하였고 1944년에 민주동맹 서북총지부 설립준비 사업에 참여하고 주최하였으며 “쏘련과 친하고 공산당과 우호적이며 신민주의를 힘써 실현하자”는 정치강령을 제기하였다. 1945년 2월, 민주동맹 서북 총지부가 정식으로 설립되여 두빈승은 주임위원을 맡았다. 같은 해 10월 민주동맹중앙 상무위원으로 선출되였다.

1946년 2월, 두빈승은 민주동맹 중앙상무위원 명의로 글을 공개적으로 발표하여 국민당반동파들의 음모를 폭로하고 당국에서 장학량, 양호성을 석방할 것을 요구하였으며 자신은 중국에서 하루속히  민주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는 맹세를 선포하였다. 이 말들은 장개석과 국민당 당국의 원망과 증오를 불러일으켰다.

1947년 3월 20일, 호종남은 아편판매 등 근거없는 죄명으로 두빈승 등을 체포하였다. 두빈승은 옥중에서 갖은 고초를 다 겪으면서 죽음을 초개같이 여기고 두려워하지 않았다.그는 유서에서 “그들의 독재폭력은 비록 혁명자인 나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으나 인류력사가 광명을 향해 달려가는것을 막을 수는 없으며 결국에는 반드시 민주조류에 의해 소멸되고 말 것이다.”고 썼다. 10월 7일, 두빈승은 서안 옥상문 밖에서 총살당하였다. 모택동은 그에게 “인민을 위한 죽음이기에 그의 죽음은 영원히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있을 것이다.”라는 제사를 써주었다.

1948년 빈승도서관이 미지현에 건설되였다.1983년 두빈승의 혁명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당지 정부는 도서관건물을 재건하고 두빈승기념실을 수선하였다. 청명절 때마다 각지 간부 군중들은 두빈승의 명성을 흠모하여 서안시렬사릉원과 옥상문 12명 렬사가 장렬히 희생된 옛터를 찾아 두빈승 렬사를 추모하고 있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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