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진지를 지킨 류유한

2020-07-13 10:42:32

호남성 도원현성의 서남교외의 천제산에 가면 초목이 무성한 렬사릉원이 있다. 릉원의 한쪽 기념벽에 혁명선렬들의 이름이 새겨져있는데 그중에 도원사람들이 익숙히 알고 있는 이름 류유한이 있다. 해마다 청명절을 앞두고 많은 백성들이 이곳을 찾아와 렬사들을 추모한다.

류유한은 1925년 호남성 도원현 령암향 송자파촌(오늘의 리공항진 관음아촌)의 한 가난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났다. 1943년 국민당에 잡혀가 국민혁명군 제20집단군 53군 116사에서 3년간 병사로 있었다. 류유한은 운남-미얀마싸움에서 일본군과 용감하게 맞서 싸웠고 항일전쟁승리 이후 부대를 따라 베트남에 가서 일본군의 투항을 접수했으며 1946년 6월 부대를 따라 동북으로 와서 내전에 참가했다.

1947년 8월, 류유한은 료녕 위원보해방 이후 동북민주련군에 참가해 동북민주련군 제3종대에 편입되였고 전사로부터 부련장으로 되였다. 1948년 9월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해방전쟁에서 선후하여 료심전역, 도강전역, 광서 비적소멸전, 해남도해방 등 전역에 참가했으며 2등공을 세웠다.

1950년 6월, 조선전쟁이 폭발하였다. 10월 류유한은 중국인민지원군 제40군 제120사 358퇀 1영 3련에 편입되여 항미원조 전선으로 나갔다.

1951년 4월초, 류유한의 3련은 명령을 받고 조선 홍천강 북안의 응봉산(현재는 한국경내)에 주둔해있으면서 적들의 침범을 막았다. 4월 5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그는 한개 전투소조를 거느리고 거의 백배나 되는 적들과 7시간 용감무쌍하게 싸워 적들의 6차례의 진공을 물리치고 100여명의 적을 소멸했다. 마지막에 진지에는 류유한과 요수청 두 사람만 남았다. 류유한은 “우리는 공산당원으로서 아무리 큰 곤난에 직면해도 상급의 지시가 없는한 절대 진지를 떠나서는 안된다.”고 확고하게 말하였다. 전우가 희생된 후에도 류유한은 계속 진지를 굳게 지키였다.

해질무렵 적들이 포위해 올라오자 류유한은 수류탄을 터뜨려 적들을 소멸하고 자신도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그때 그의 나이는 26살밖에 안되였다.

1951년 4월 29일, 제120사당위는 류유한을 ‘모범공산당원’으로 추인하고 류유한의 전투소조에 집단 1등공을, 류유한에게 2등공을 추서하기로 결정했다. 같은 해 중국인민지원군 정치부는 류유한에게 ‘1급 전투영웅’의 영예칭호를 수여하고 특등공을 기입, 혁명렬사로 추인하였다.  

신화통신


  •  
  • 많이 본 기사
  • 종합
  • 스포츠
  • 경제
  • 사회

주소:중국 길림성 연길시 신화가 2호 (中国 吉林省 延吉市 新华街 2号)

신고 및 련락 전화번호: 0433-2513100  |   Email: webmaster@iybrb.com

互联网新闻信息服务许可证编号:22120180019

吉ICP备09000490号 | 吉新出网备字005号 | Copyright © 2007-2017

吉公网安备 22240102000014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