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을 들고 불바다에뛰여든 전투영웅 오선화

2020-08-08 08:58:52

사천성 수녕시렬사릉원에 두줄로 늘어선 측백나무 옆에는 폭탄을 들고 앞으로 돌진하는 중국인민지원군 동상이 있는데 바로 항미원조 전투영웅 오선화의 조각상이다. 해마다 9월 30일 렬사기념일이 되면 당지 간부군중들은 여기에서  입당선서를 되새기고 수백명 중소학생들은 <우리는 공산주의 후계자>를 제창하며 애국주의교양을 받고 있다.

1927년, 사천성 수녕시 안거구 동선진에서 태여난 오선화는 어려서부터 가정이 가난했다. 2년간 서당에서 공부한 후 그는 15살 되는 해에 국민당군에 입대하였으나 군대에서 온갖 수모를 당했다. 1949년 12월, 그는 중국인민해방군에 참가했고 다음해 8월 신민주주의청년단에 가입했다. 1951년 3월, 오선화는 ‘항미원조, 보가위국’의 호소에 응하여 중국인민지원군에 참가했고 항미원조 전선에 나갔다.

오선화 렬사.

1951년 4월부터 6월까지 진행된 항미원조 제5차 전역에서 오선화는 적들의 미친 듯한 사격과 폭격을 무릅쓰고 부상 입은 반장을 업어 후방에 전이시킨 후 적들의 3차례 반격을 물리치고 3등공을 세웠다. 같은 해 8월 그는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그 후 오선화의 소속부대는 북으로 전이했고 그는 련부에 전근해서 얼마 안되여 2련 1패 3반 반장으로 승진했다. 부대에서  방호공사를 구축하고 교통진지를 팔 때 오선화는 밑바닥을 먼저 뚫은 다음 웃층을 무너뜨리는 방법으로 작업능률을 두배로 높였다.

오선화는 또 전우들을 따뜻하게 대했다. 정비일을 하거나 장작을 패는 도끼가 부족할 때에는 전우들을 휴식하게 하고 혼자서 눈보라를 무릅쓰고 밤새 일했다. 저녁에 모두가 잠들면 오선화는 또 전사들의 신발에 굳어진 얼음을 긁어내고 젖은 신발을 말리워주었다. 전사들의 발이 얼자 그는 자기 양말을 전사들에게 양보하였고 자신은 오히려 헌 헝겊으로 발을 감쌌다. 오선화는 전사들을 거느리고 진지구축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해 영예롭게 3등공을 세웠다.

한번은 오선화가 소재한 반이 한 조선사람 가정집에 묵게 되였다. 이 집에는 늙은 량주와 두 손자만 있었는데 생활이 어려웠다. 오선화와 전사들은 로인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산에 올라가 훈련할 때 사람마다 땔나무 한묶음씩 메고 왔고 가는 걸음에 거름을 등에 지고 산에 올라갔으며 옥수수를 거둬주고 가축들을 돌봐주기도 했다. 너무나 감동된 두 로인은  지원군을 혈육처럼 여겼다.

1952년 9월 29일 오후 5시, 관대리 반격전이 개시됐다. 오선화는 반의 당원전사들을 거느리고 “당에서 필요로 할 때 목숨을 바치겠다!”며 선서했다. 오선화는 반을 두개 폭파조로 나누고 목표물을 향해 돌진하도록 지휘했다. 적군의 또치까 몇개를 련속 폭파하였지만 적들의 기관총 사격은 멈추지 않았으며 폭파조도 많은 인명피해를 입었다. 위급한 관두에 오선화는 10킬로그람 되는 폭탄을 들고 적들의 진지를 향해 돌격했다. 비발치는 총탄과 폭탄을 무릅쓰고 오선화는 적들의 화력지점에 기여올랐고 갱도에 뛰여들면서 도화선을 당겨 40여명 적들과 함께 장렬히 희생되였는데 당시 25살밖에 안되였다.

1952년 11월 2일, 지원군 정치부는 오선화에게 ‘특득공’을 기입하고 ‘1급폭파영웅’ 칭호를 추서했다. 그해 12월, 지원군 정치부는 오선화에게 ‘모범당원’ 칭호를 추서했고 생전 소속반인 12군 100퇀 1영 2련 3반을 ‘오선화반’으로 명명했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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