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계광식’ 전투영웅 리가발

2020-08-15 09:38:24

해마다 청명절이면 안휘성 남릉현가발중학교의 학생들은 리가발렬사기념비를 찾아 성묘하고 렬사를 추모한다.

리가발은 1934년에 태여났으며 안휘성 남릉현사람이다. 1951년 6월에 중국인민지원군에 참가해 조선전장으로 나갔다. 1952년 10월 중국신민주주의청년단에 가입했다.

조선전장에 나간 리가발은 중국인민지원군 제67군 199사 595퇀 1영 1련 2패 6반에 편입되였다. 한차례 적군 폭격기의 공습에서 그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조선군중을 도와 옷과 량식을 구해냈다. 그가 전선의 군사훈련과 공사보수에서 표현이 특출해 두번 3등공의 영예를 받았다.

리가발 렬사.

1952년 겨울, 리가발은 2패 통신련락원으로 임명받았다. 그의 주요 임무는 전투명령을 전달하는 것이였다. 그는 늘 적들의 폭격 속을 뚫고 지나며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부대가 소재하고 있는 경파현의 산중턱에서부터 옥녀봉의 최전방까지 가려면 200여메터 되는 개활지대를 지나야 했는데 이곳을 미군 비행기가 매일 맹폭격하기에 아주 위험하였다. 하지만 용감하고 슬기로운 그는 번마다 제때에 임무를 완수하여 ‘무쇠다리 통신원’으로 불리웠다.

1953년 7월 13일, 금성전역 반격전 교암산전투에서 리가발소속 2패는 116고지를 점령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되였다. 적들이 또치카를 리용해 맹공격하는 바람에 부대가 한걸음도 전진할 수 없었다. 리가발은 자발적으로 나서서 적들의 또치카를 폭파하는 임무를 맡고 기민하게 표적 또치카 외곽의 3개 화점을 폭파해버렸다. 그 과정에 중상을 입었지만 여전히 심한 통증을 참으며 앞으로 기여가 마지막 수류탄으로 적들의 또치카를 폭파한 뒤 체력이 모자라 지탱하지 못하고 그자리에 까무러쳤다.

반격부대는 신속히 총돌격을 개시했다. 하지만 적들의 또 다른 은페호에서 총소리가 울렸다. 화력은 또다시 부대 전진의 길을 가로막았다. 돌격패의 새 폭파조가 몇번이고 시도했지만 적들의 화력이 너무 맹렬하여 은페호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 날이 밝기까지 이제 4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날이 밝기 전에 교암산을 탈환하지 못하면 부대는 철수해야만 했다.

긴급한 고비에 갑자기 적들의 은페호의 기관총소리가 조용해졌다. 사실은 혼미상태에 있던 리가발이 어느 때 정신을 차리고 깨여나 놀라운 의력으로 적들의 은페호까지 기여가 자기의 가슴으로 은페호의 기관총구멍을 막았던 것이다. 부대의 돌격을 엄호하기 위해 그리고 전투의 승리를 거두기 위해 리가발은 19살의 어린 생명을 바쳤다.

리가발이 희생된 후 그의 소속부대 당위는 그가 생전에 제기한 신청서에 따라 그를 중국공산당 당원으로 추인하였다. 1953년 9월, 중국인민지원군 령도기관은 그에게 특등공을 추서해주었고 그에게 일급 전투영웅의 영광스러운 칭호를 추서했다. 같은 해 12월 1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그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칭호를 추서한 동시에 그에게 ‘금성메달’, ‘일급국기훈장’을 추서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교암산지역 인민들은 리가발이 희생된 곳 부근의 한 거리이름을 ‘가발거리’라고 명명했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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