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녀투강’의 또 한명의 렬사 리봉선(2)
우리 민족의 무명영웅들-100

2020-09-07 09:19:01

목단강시 목단강반의 강빈공원(江滨公园)에 세워진 ‘8녀투강’기념군상.(1988년 8월 1일 락성, 2017년 7월 31일 현지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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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녀퇀의 대부분이 5군 제1사와 5사의 여러 부대들에 소속됐기 때문에 1936년 여름 5군 직속부대로 군부를 따라 목릉, 림구 등지로 전이할 때 부녀퇀 녀전사는 10여명에 지나지 않았다. (서운경. 《항일련군의 영웅적 자매들》. 제19페지> 이들 부녀퇀 10여명중  부녀퇀 퇀장 왕옥환(王玉环)외 최순선(崔顺善), 주신옥(朱信玉) 등 전부가 연변 출신의 조선족녀전사들이였다.

1936년 2월부터 항일련군 5군 군부와 제1사, 2사 그리고 군부 직속 부녀퇀이 림구현 조령근거지를 중심으로 림구현 각지와 림구일대에서 활동하면서 조선족이 얼마 되지 않는 오늘의 림구현 룡조촌에서 생활하던 리봉선이 5군 부대, 더우기 군부 직속 부녀퇀 조선족녀전사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5군 부녀퇀에 정식으로 가입하게 되였다. 그 가입시간은 늦어도 1936년 9월 전으로 헤아려볼 수 있다. 남부의 녕안현에서 조직된 항일련군 5군 부대와 군부 직속 부녀퇀의 림구현 경내에서의 활동은 세상과 두절되다싶이 한 심산밀림 속 룡조촌의 리봉선을 5군 부녀퇀으로 손잡아주었다.

5군 부녀퇀의 주요과업은 전투가 아닌 재봉작업이 중심으로 드러난다. 1936년 여름과 가을 그 시절을 두고 5군 부녀퇀 출신인 서운경(徐云卿)은 자기의 항일련군회고록 《영웅적 자매들》(중문판. 길림인민출판사. 1960년 4월 제1판, 1978년 11월 제2차 인쇄, 제5페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그들은 긴 총을 어깨에 둘러메고 머리 우에 손재봉틀을 이고 다녔다. 낮이면 산속에 들어가 전사들을 위해 군복을 지었고 밤이면 백성들 집에 숙박하면서 정치도 배우고 문화도 배웠다.

5군 부녀퇀이 5군 재봉대이기도 하다는 부녀퇀 녀전사 서운경의 회고이다. 서운경의 회고에 따르면 5군 부녀퇀(리봉선이 참가하기 전)은 1936년 7월에 군부를 따라 녕안에서 림구현 삼도통일대로 전이하는 도중에 목릉현 무우가마골(萝卜窑沟)에서 한달 남짓이 주둔하다가 한패의 신전사를 받아들이고 지방조직을 건립, 그뒤 8월경에 오늘의 림구현 조령(林口县刁翎)에 이르러 정치, 군사 활동을 활발히 벌리였다. 조령에 머무르는 그 나날, 5군 군부에서는 조령과 그 일대에서 항상 군중대회를 소집하면서 항일구국의 도리를 선전하여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5군 부대에 참가하였다.

군중대회가 끝나면 5군은 부녀퇀을 선두로 번마다 무대를 꾸미고 연극도 하고 성수 나게 노래를 불렀다. 그 항일분위기는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리봉선의 5군 부녀퇀 가입은 이 시기의 일이다. 조선족녀전사들을 선두로 하는 5군 부녀퇀의 끓어번지는 항일열정은 리봉선의 마음을 강하게 끄당기였다.

림구현 경내 8녀투강유적기념관에 전시된 리봉선 전시 부분. (2017년 8월 1일 현지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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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련군 5군 부녀퇀의 력사를 헤아리면 리봉선은 림구현 녀성으로 5군부녀퇀에 가입했지만 림구현 녀성으로 5군 부녀퇀에 가입한 녀전사는 리봉선 뿐이 아니였다. 후일 ‘8녀투강’의 8명 녀전사중 부녀퇀 대대지도원 랭운과 4군 재봉대 대장 안순복을 제외한 리봉선 등 6명이 모두 림구현 출신 녀전사로 알려진다.

이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림구현은 오늘의 흑룡강성 목단강시 산하 현으로서 장광재령(张广才岭,즉 老爷岭)과 완달산(完达山) 산맥 사이에 위치해있어 1936년초이후 항일련군 제5군을 비롯한 항일련군 부대들 주요 활동지와 싸움터로 되였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동북 항일무장투쟁시기 동북항일련군 부대들은 림구현 경내에서만 적들과 대소 1000여차의 전투를 벌린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 글의 주인공 리봉선을 망라한 ‘8녀투강’의 비장한 영웅사실도 림구현 경내에서 생겨난 일이였다.

이로부터 보면, 림구현의 특정된 지리위치와 항일련군 부대들의 활동, 더우기 1936년 7월 이후 항일련군 5군 부대의 림구현에서의 활동은 리봉선 등 림구현 출신 녀성들이 5군 부녀퇀에 가입할 력사적기회를 마련하여 주었다. 5군 부녀퇀이 시초의 10여명으로부터 녀전사들이 많이 늘어난 주요원인중 하나라 하겠다.

그때 5군부대는 조령에 주둔하고 신입녀전사 리봉선 소속 부녀퇀은 군부를 따라 산우의 하마골(蛤蟆沟)부근에 자리잡고 있었다. 부녀퇀은 아침식사와 저녁식사를 조령에 내려가 하고 점심은 무우에 사탕가루를 찍어 먹었다. 그럴 때면 리봉선이랑 부녀퇀 녀전사들과 함께 항일련군의 노래를 목청껏 부르며 항일련군의 녀전사가 된 기쁨을 그대로 나타내였다.


달님도 구름 속에 숨은 어두운 밤

항련전사 산을 내려 원쑤를 치네

교묘한 수단으로 꾀여냈더니

왜놈들 덮치다 함정에 빠졌네

산 놈은 두 손 들고 죽은 놈은 황천객

한놈도 남김없이 몽땅 잡았네


리봉선 소속 5군 부녀퇀은 조령(刁翎)과 그 일대에서의 군중조직화가 뜻대로 되여가자 이번에는 활동무대를 110여리 밖의 소강연 류수하자촌(小江沿柳树河子村)으로 옮기였다. 새 활동지에서 5군 군부가 지방조직과 련계를 맺으며 주변 지형을 살필 때 부녀퇀에서는 군민대회를 조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들은 직접적인 항일선전외에도 다시 무대를 꾸미고 노래를 부르고 연극을 공연하며 성세를 일으켰다. 인물이 절색인 리봉선 등 조선족녀전사들이 춤을 어찌나 잘 추는지 마을사람들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모여 구경하면서 박수갈채를 보내였다. 8녀투강중의 한 사람인 양귀진(杨贵珍)의 부녀퇀 참가는 이때의 일이다.

류수하자에서 하루길을 걸으면 조령의 서부로 되는 목단강반의 삼도통(三道通)에 이르게 된다. 목단강을 사이둔 강 동쪽은 위만군의 주둔지였다. 이자들이 때때로 건너와 아군을 교란하는 데서 리봉선 등 부녀퇀의 전사들은 드센 함화공작을 들이대였다. 함화공작의 내용은 항일가요 부르기와 정치선전 결합이였다. 부녀퇀에서는 함화공작과 더불어 우리 부대 장병들의 옷과 양말을 씻고 깁느라고 한가할 사이가 없었다. 저녁이면 군부의 지시로 부녀퇀과 청년의용군이 함께 군민련환회를 조직하고 좌담회를 열군 하였다.

8녀투강유적기념관 기념비 아래 모셔진 리봉선 반신상. (2017년 8월 1일 현지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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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군 부녀퇀은 삼도통에서 10여일간 머무르며 활동하다가 조령, 련화(莲花), 소강연 일대에 가 활동을 벌리였다. 삼도통에 다시 돌아온 후에는 5군 군부에서 조직한 아침, 저녁 두개 반 식자학습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리봉선은 식자반에서 훈춘 출신의 최순선, 주신옥 등에게서 우리 글을 보다 익히기도 하고 중국인전사들에게 한문을 배우기도 하면서 자기의 부대생활을 충실히 하였다.

1937년 새해를 앞두고 5군 부녀퇀은 명령을 받고 청년의용군과 함께 대반도(大盘道)저격전에 참가할 기회를 가지였다. 리봉선이 부녀퇀에 참가한 후의 첫번째 전투였다. 적들도 말짱 300여명의 왜놈들에다 200여대의 말파리에 입쌀, 밀가루, 고기와 탄약 등을 운반하는 부대여서 싸울 만도 하였다. 그러나 부녀퇀은 5군 군부의 안전을 보위하고 싸움터를 수습하는 것 뿐이여서 적들과 통쾌히 싸울  수는 없었다. 대반도저격전 후에도 수차의 전투가 있어도 의연히 최전방 전투가 아니였다.

대반도저격전 후, 적절히 말하면 1937년 2월초 리봉선 소속 부녀퇀은 군부의 지시로 청년의용군과 함께 밤낮 하루 동안에 눈덮인 180리 산길을 걸으며 깊은 산속의 후방밀영으로 떠났다. 목단강 동쪽과 의란현 동부에 위치한 이곳 후방밀영에는 일부 부상병들과 부녀퇀의 몇몇 전사들이 먼저 머무르고 있었다. 한동안의 긴장한 로동 속에서 100명 정도의 부상병을 받아들일 수 있는 후방병원이 새로 일떠섰다. 다가오는 봄을 대비해 5군 전체가 갈아입을 새 군복도 지어야 하였다.

새로 확건된 후방밀영에서 부녀퇀은 5군의 재봉대 역할을 놀았다. 3명의 녀전사가 재봉기 한대를 맡아 밤낮 륜번으로 다루며 새 군복을 지어냈다. 후방밀영에 또 한패의 부상병들이 들이닥치여 리봉선 등 10여명 녀전사들은 밀영의 이불과 요, 의복을 말끔히 빨고 기우며 병원 안팎을 질서정연하게 꾸며놓았다. 밤에는 후방병원 문 앞에 우등불을 피우고 부상병들과 부녀퇀이 함께 련환모임을 가지였다. 리봉선, 최순선, 주신옥 등 조선족녀전사들은 한족녀전사들과 함께 <적기가>, <부녀해방가> 등 노래를 마음껏 부르다가 우등불을 둘러싸고 조선춤을 추었다.

5군 부녀퇀은 평소에는 선전활동과 재봉, 옷 씻기와 깁기, 부상병 돌보기, 정찰과업 등으로 보내지만 필요시에는 전투원으로 직접 싸움마당에 나섰다. 1937년 5월 4일의 의란현 경내 희샤즈요저격전이 그 대표적인 례이다.

이날 이른아침, 5군 군부는 군부 정찰대로부터 일본군 300여명이 10여대의 군용 트럭에 앉아 희샤즈요(黑瞎子窑) 방향으로 달린다는 보고를 받았다. 군부에서는 소속 2사에 명령하여 2사의 5퇀과 6퇀이 희샤즈요 이동에서 적들을 맞받아 치기로 결정하였다. 따라서 군부 직속 교도퇀과 포병련, 부녀퇀, 청년의용군을 희샤즈요 동북에 매복시키였다. 일부 부대는 적들이 지나칠 도로에 지뢰를 매설하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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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에 적들의 군용 트럭이 아군의 지뢰매설구에 들어섰다. 지뢰수들이 도로 량측에 매복하여있다가 전투신호와 함께 지뢰의 도화선을 잡아당기였다. 삽시에 적군의 트럭 6대가 박살이 나며 수라장이 되였다. 뒤따르던 트럭들은 길이 막히며 꼼짝달싹 못하였다. 이때라고 포병련의 포탄이 울부짖으며 나머지 적군 트럭을 들부셔놓았다. 평소 키가 훤칠하고 힘장사라는 평판에다가 으뜸가는 미인으로 이름난 리봉선은 왕옥환(王玉环)퇀장의 지휘하에 여러 녀전사들과 더불어 희샤즈요 동북에서 멸적의 총탄을 퍼부었다. 기관총수 주신옥은 백발백중으로 적들을 무리로 쓰러눕히였다.

4시간의 격전을 거쳐 희샤즈요저격전은 아군의 승리로 끝났다. 일본군 250여명이 황천객이 되고 중위와 상위 이하 28명이 아군의 포로로 되였다. 로획한 총과 탄약은 부지기수였다.

1936년과 1937년은 여러 항일련군 부대들과 더불어 5군 력사의 황금기로 알려진다. 관련 연구자료에 따르면 1937년에 이르러 5군 부녀퇀은 시초의 10여명 조선족녀전사들로부터 300여명의 대오를 가진 무장력량으로 탈바꿈하였다. 부녀퇀은 왕옥환 퇀장을 기치로 왕옥환, 주신옥, 편련화(片莲花)를 각기 대장으로 하는 3개 대로 발전하였으며 왕일지(王一知), 리지웅(李志雄), 랭운(冷云) 등이 선후하여 지도원으로 나섰다. 부녀퇀 산하에는 보병과 기병, 정찰병, 통신병, 기관총수들이 구전하고 밀영병원과 재봉대 등 후근일에도 수시로 나설 수 있었다.

부녀퇀은 5군 군부의 직속대로서 일반적으로 5군 군부의 지도를 받으며 군부를 따라 행동하기가 십상이다. 하지만 류동성도 커서 늘 5군의 여러 부대들에 파견되여 분산활동을 하면서 맡겨진 과업을 수행하여야 한다. 이름을 알 수 있는 부녀퇀의 조선족녀전사들로는 주신옥(朱信玉), 최순선(崔顺善), 리봉선(李凤善), 리영숙(李英淑), 김봉숙(金凤淑), 김씨, 최수선(崔秀仙), 류경희(柳庆熙) 등이다.

1937년 7월 12일, 대대장 리문빈(李文彬)이 지휘하는 삼도하자(三道河子)삼림경찰대대 150여명(부녀퇀 녀전사 서운경은 회고록에서 700여명이라고 했다.)이 일본교관 7~8명을 죽이고 의거하여 넘어왔다. 의거부대가 삼도통(三道通) 동안에서 서안으로 넘어올 때 리봉선 등 부녀퇀 전사들은 새 군복을 가쯘히 차려입고 먼길을 걸어 삼도통으로 가 5군 군장 주보중 등과 함께 뜨겁게 맞아주었다.

  그러나 삼도하자삼림경찰대대의 의거는 순풍에 돛 단 듯이 순조로운 것이 아니였다. 의거가족 50~60명(徐云卿의 회고)은 배에서 쉽게 내리려 하지 않았다. 리봉선 등 부녀퇀 녀전사들은 의거가족 설복으로 진땀을 뺐다. 의거가족들이 삼도통에 배치된 후에는 정서파동이 심하였다. 그녀들을 안정시키면서 간고한 항일련군 부대생활에 적응하도록 이끄는 것도 부녀퇀 녀전사들의 책임이였다. 부녀퇀의 열성에 넘친 도움으로 류영(刘英) 등 의거가족 10여명이 후방밀영에까지 찾아와 돌아가지 않고 함께 싸우겠다고 표하였다. 리봉선 등 부녀퇀 녀전사들의 얼굴엔 웃음이 피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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