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ㅡ항일련군의 녀전사로 성장 (1)
우리 민족의 무명영웅들-102

2020-09-21 09:23:26

1932년 여름부터 그해 겨울까지 소녀시절 김선이 활동했던 당년의 화룡현 약수동에 지금은 화룡현 약수동쏘베트정부 유적지가 건설됐다. (2017년 8월 3일 현지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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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음력 10월 22일 아침.

화룡현 평강구 약수동 상촌의 팔간집에서 현당위 서기 최상동과 조직부장 김일환 등 현위의 간부들이 모여 당면 일제놈들의 토벌에 대처할 문제를 가지고 긴급회의를 열고 있었다. 갑자기 약수동 하촌 동쪽의 조개산 보초선에서 수십명의 일본군 수비대와 경찰놈들이 약수동을 바라고 달려든다는 급보가 하촌의 보초선에 전해졌다. 급보는 중촌을 거쳐 다시 상촌 본부에 알려졌다.

마침 상촌의 팔간집 문밖에서 뜨락을 쓸며 망을 보던 현위 조직부장 김일환의 어머니 오옥경이 상촌에 전해진 급보를 집안에 알리였다. 그러면서 한가족을 이룬 시형의 손녀 보고 소리 질렀다.

“얘, 저 방안의 등사판, 등사판!”

“예? 아아!”

13살 소녀는 셋째 할머니 오옥경의 뜻을 알아차리고 방안의 등사판과 강판을 제꺽 부엌에 무져놓은 보리짚 속에 감추었다. 그사이 방안에서 회의에 여념이 없던 동지들은 다급히 뒤문으로 빠져 조밭 속으로 숨어들었다. 조밭을 헤치고 나가면 서쪽골로 피신할 수 있었다.

오옥경이 뒤문으로 다시 정주칸에 들어서니 시형의 손녀애는 아무 일도 없는 듯 부엌 쪽걸상에 앉아 보리짚으로 불을 때고 있었다. 오옥경은 머리를 끄떡이며 가마목으로 올라가 보리쌀을 이는 척하였다. 잇달아 10여명의 일본 순사놈들이 통역을 앞세우고 상촌의 팔간집으로 우루루 쓸어들었다.

“이 집에 공산당이 없느냐?”

거들먹거리는 놈들의 돼지 멱따는 소리.

“공산당이라는 게 뭐유?”

시골 아낙네인 척하는 오옥경의 모르쇠였다.

“공산당도 몰라? 네년이 공산당이지?”

일본 순사놈은 오옥경의 멱살을 틀어쥐며 독을 썼다. 집안의 독이며 이불이며 되는 대로 뒤적였다. 방안과 뒤방, 정주방을 발칵 뒤지여도 아무것도 나지지 않는다. 그러자 이번에는 나어린 소녀에게 시선을 박는다.

“네가 말해. 공산당이 어디로 갔니?”

“공산당? 난 몰라요.”

“정말 몰라?”

일본 순사놈은 “바가야로~칙쇼” 하면서 소녀를 때리려고 날쳤다. 소녀는 몸을 움츠리면서 검댕이가 잔뜩 묻은 손으로 코며 얼굴을 문지르면서 “이 사람들이 나를 때리려 합니다.” 하며 머저리행세를 해댔다. 순사놈은 손으로 얼굴을 때리려다가 검댕이가 묻은 소녀의 얼굴을 보더니 발로 차려고 했다. 이때라고 오옥경은 “갸는 머저리여서 아무것도 모른다.”면서 사정했다.

놈들은 아낙네와 소녀한테서 뭘 얻을 것이 없다고 보았던지 뒤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한참 후에 다시 뒤문으로 쓸어들더니 공산당을 내놓으라고 재차 야단질이였다. 오옥경이 아들 둘이 전염병으로 죽고 지금 저 손녀와 둘이서 이렇게 산다고 하니 놈들은 못올 데를 온 것처럼 뒤걸음치더니 정주문을 열고 와르르 나가버렸다. 일대 재난을 무사히 피해갔다. 오옥경은 손녀애를 와락 안으며 용타고 어깨를 다독였다.

소녀시절 김선이 한때 활동했던 화룡현 어랑촌 항일유격근거지. (2019년 1월 9일 현지촬영)

2

약수동 상촌의 이 팔간집 소녀는 김선이라고 부른다. 원명은 김순옥이고 1920년 11월 11일에 화룡현 덕신 사화전자마을의 한 가난한 농가에서 태여났다. 오늘의 룡정시 동성용진 구룡촌이다. 김순옥의 아버지 김정식과 할아버지는 강원도 양양군 중도문 출신들이다. 할아버지가 반일무장단체에 참가하여 활동하다가 세상을 뜨자 작은할아버지가 김씨네 일가식솔들을 데리고 두만강 이북의 달라자 화전자마을에 들어섰었다.

김씨네가 화전자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부침땅이 없어서 남의 소작살이를 하다 보니 뼈빠지게 한해 농사를 지어도 남는 것은 별반 없고 빚만이 해마다 늘어만 갔다. 별수 없이 아버지 김정식은 여덟살 딸애 순옥이를 학교 대신 부자집 김재천네 집에 머슴으로 들여보내야만 하였다.

어린 소녀라고 명색은 부자집 애보기였지만 물긷기, 불때기, 심부름 등도 소녀의 몫이였다. 하루종일 뱅그르로 돌아치며 쉴 짬도 없었지만 먹거리라고 주는 것은 먹다 남은 누룽지물, 그나마 배불리 먹지도 못하니 밤이면 배가 꼬록꼬록 잠도 오지 않았다. 덮는 것도 누데기이불 뿐이니 한겨울 추운 밤이면 누데기이불을 뒤집어쓰고 오돌오돌 떨기가 일쑤였다.

그렇게 두세해 흘렀던가. 근근득식으로 달라자현립1교를 마치고 고학으로 룡정 사립동흥중학교를 다니던 5촌 삼촌 김일환이 달라자 절당촌학교와 태성촌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북만의 밀산일대에서 피신하여 교원 신분을 명의로 혁명하다가 달라자에 돌아왔다. 김일환 삼촌은 사촌동생의 딸애가 부자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는 것이 가슴 아파 두말없이 부농 김재천을 찾아 도리를 따지고는 5촌조카 김순옥을 자기 집으로 데려왔다.

순옥이는 이렇게 작은할머니 오옥경의 집에서 자라며 혁명의식을 키우게 되였다. 그 시절의 작은할머니 오옥경도, 그 아들이자 5촌 삼촌인 김일환도 모두 중공당원들이였다. 일환 삼촌은 또 화룡현 산하 중공달라자구위 제2임 서기이기도 하였다.

김순옥은 어느덧 13살 소녀로 자라났다. 누데기이불을 쓰고 긴긴 겨울밤을 지내야 하던 어제날의 머슴군 어린 소녀는 퐁퐁 뛰여다니는 명랑한 아동단원으로 자라났다. 이해 1932년 여름, 일환 삼촌이 중공달라자구위 제2임 서기로부터 중공화룡현위 조직부장으로 부임하자 그들 가족은 반산구에 위치한 화룡현 약수동근거지로 활동지대를 옮겨야 했다. 때는 작은할아버지가 사망한 뒤여서 가족식구로는 오옥경 작은할머니와 할머니 맏아들 김일환, 둘째 김동산, 5촌조카 김순옥 등 넷이였다.

김씨가족 일행은 도중에 광지바위를 지나며 룡정을 거치며 도보로 여러날 만에 평강벌 서북쪽 약수동근거지에 들어섰다. 이런저런 차림의 정탐들이 들락거렸기에 그들은 안도에서 이사오는 가족으로 꾸미였다. 로씨야 연해주 출신의 현당위 최상동 서기가 친히 그들 일가를 뜨거이 만나주었다. 오옥경 작은할머니는 현당위의 작식과 통신처 사업을 책임지고 작은삼촌 김동산은 약수동적위대 부대장으로 나섰다. 김순옥은 현당위 비서처의 작식과 보초 근무를 맡아보게 되였다.

1983년 11월초, 그 시절 화룡현에서 항일전사좌담회를 조직, 김선 항일로간부도 참가했다. (우1)

3

김순옥은 약수동근거지에서 일환삼촌에 의해 김선(金善)으로 불리였다. 일환 삼촌의 일가 모두가 한다하는 혁명가들이여서 김선의 얼굴에서는 종일 가도 웃음이 가실 줄 몰랐다. 그 속에서 여러달 시간이 흐르니 1932년 겨울이고, 음력 10월 22일 첫 토벌에 맞다들게 되였다. 이때의 김선은 비록 나이 13살의 애어린 소녀라지만 적들 앞에서는 침착하게 지혜로 대처하는 아동단원이였다. 모두가 삼촌들과 할머니에게서 배우며 성장하는 과정이였다.

1932년 음력 10월 22일 토벌이 있은 후 한달도 되지 않는 사이에 일제놈들은 약수동에 대해 련속 제2차, 제3차의 토벌을 단행하였다. 첫번째 토벌에서 약수동적위대 대장 황룡정이 서쪽의 대황구 령마루에서 토벌대 놈들과 맞띄워 희생되더니 음력 11월 4일의 2차토벌에서 또 김순희, 정태준 등 8명 혁명자가 피살되였다. 음력 11월 초순의 3차토벌에서는 녀성혁명가 김순희의 남편이고 적위대 후임 대장인 손태익과 삼촌인 적위대 부대장 김동산 등이 희생되였다. 적지 않은 집들이 불에 타버렸다. 약수동근거지의 현위 기관과 평강구 구위 기관들은 모두 깊은 골안의 장인강을 거쳐 새로 개척한 어랑촌근거지로 전이하였다. 김선도 작은 할머니 오옥경과 함께 어랑촌근거지로 들어갔다.

어랑촌은 그제날 화룡현성에서 곧바로 가면 30여리 떨어진 산간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약수동으로 말하면 서남쪽 20여리 되는 깊은 산구이다. 이 고장의 군중들은 조선의 어랑과 무산 등지에서 살길을 찾아 모여든 이주민들이기에 계급구성이 좋았다. 자연환경과 지리적 조건도 근거지를 세우기에 알맞춤하였다. 평강구유격대의 뒤를 이어 현 안의 달라자구, 개산툰구, 삼도구의 유격대 장총대들도 륙속 모여들었다.

드디여 1932년 12월에 어랑촌근거지에서 화룡현유격대가 정식으로 조직되였다. 현유격대 전사들은 일제히 새 군복을 떨쳐입었다. 유격대아저씨들은 근거지에서 바깥보초를 서다가 렬을 지어 어랑촌으로 들어올 때면 성수 나게 나팔을 불었다. 그러는 유격대아저씨들은 미덥고 름름하기만 했다. 어랑촌은 중공화룡현위와 중공평강구위의 소재지로, 항일유격근거지로, 현유격대의 활무대로 되여 적통치구의 변두리에 거연히 일떠섰다.

어랑촌과 그 일대는 어딜 보나 우리 세상으로, 약동하는 기상으로 차넘치였다. 김선 소녀는 새로 배운 <어린이 노래>, <소년행진곡>을 부르며 신나게 돌아갔다.

귀하고도 장하도다 우리 소년들

새 사회의 주인공 될 우리들이다


우리들은 뜨거운 피 식히지 말고

어서 바삐 현사회와 싸워봅시다


썩어가는 제국주의 다 무엇이냐

현시대의 모든 권리 지배하누나


바위라도 한번 치면 부서지리라

왜놈들을 남김없이 때려 부수자


<소년행진곡>의 가사이다. 근거지의 아동단원들과 김선이 가장 즐겨 부르는 노래였다.


4

그 후 어랑촌근거지는 1933년 음력 1월 18일(양력 2월 12일) 뜻하지 않은 어랑촌근거지 보위전, 즉 이름난 13용사전투를 겪으면서 유격대 중대장 김세 등 9명 유격대원이 희생되고 현당위 서기 최상동 등 도합 10여명이 희생되는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현위 제1임 군사부장 방상범도 근거지 밖에서 희생되였다. 온 근거지는 물론 종일 웃음과 노래소리 가실 줄 모르던 김선 소녀의 얼굴은 굳어졌다. 김선 소녀는 비분의 눈물을 흘리며 새로 제5임 현위 서기로 부임된 김일환에게 새 희망을 기탁하였다.

그때 김선의 집은 어랑촌마을이 아닌 서쪽의 야지골어구 외딴집에 자리잡았다. 어랑촌근거지 보위전 이후 김일환은 지방에 남아 투쟁을 견지하던 달라자구와 개산툰구의 권총대를 근거지에 소환하여 현유격대의 손실부분을 신속히 보충하는 한편 신임 군사부장 김락영과 같이 근거지 주변에 주둔한 원 동북군 주려장부대의 손장상 구국군대대에 들어갔다. 김락영이 손대대장과 결의형제를 맺고 손대대장의 통신원이 근거지의 아동국장 김혜순과 약혼관계를 맺으니 근거지의 군사력량은 날로 더불어 커만 갔다.

그 시절 김선 소녀는 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 다니는 데 불편하다고 느낀 김선은 근거지 아동국장 김혜순과 머리를 자르겠다고 말하였다. 김혜순은 머리를 자르면 좋기는 하나 적통치구에 나서면 적들에게 즉각 발견된다고 충고하였다. 그래도 김선이 우기며 머리를 짧게 자르니 김혜순은 가지고 있던 다른 머리태를 넘겨주었다. 김선이 머리태를 흔들며 집으로 돌아가 할머니를 부르니 할머니 오옥경은 뜻밖의 손녀 모습에 놀라 벌렁 뒤로 넘어졌다.

“얘, 이거 뭐야? 긴 머리는?”

“잘라버렸어요.”

“왜서?”

“다니자니 거치장스러워 그러지요.”

“그래도 옛 전통을 따라야지.”

“할머니는 봉건이 아니면서 봉건이시네. 지금 근거지 녀인들은 긴 머리를 잘라버리는 것이 류행인데요. 짧은 머리를 맑스머리라고 한대요.”

“애두,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호호호, 나는 이런 사람인걸요.”

김선 소녀는 제딴에 으쓱하면서 둥둥 떠있었다. 김선 소녀는 생김새는 소녀답게 예쁘장한 얼굴을 가졌으나 성격은 소녀 아닌 남자애였다. 종일 뛰여다녀도 힘든 줄 모르고 근거지 보초와 통신에서 번마다 앞장에 섰다.

1933년 봄의 어느 날 구국군 손대대장이 한개 반의 병사들을 데리고 야지골어구 김선 소녀의 집을 찾았다. 손대대장은 김선을 보더니 양딸로 삼겠다고 하였다. 그것이 소녀에게는 마땅치 않았다.

“뭐, 양딸이라구, 자기가 뭔데?”

김선 소녀가 뽀로통해서 혼자말처럼 중얼거리자 할머니가 툭 쳤다.

“그렇게 말하면 못써.”

“못쓰면 말지요.”

“그런 일이 아니지. 저 사람은 구국군 장관인데 너의 삼촌이 지금 항일군으로 쟁취하는중이란다. 아무 말도 말고 가만 있기나 해.”

  알고 보니 리해가 가는 일이여서 김선 소녀는 혀를 홀랑 내밀었다. 순수 중국어로 말하는 삼촌이 미덥기만 하다. 강직한 성격의 삼촌이 한번 결심하는 일은 다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소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 뒤 김선 소녀는 현내의 우복동전투에서 아버지 김정식을 잃는 눈물을 흘려야 했지만 항일에로 흐르는 아동단원의 마음은 더욱 굳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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