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ㅡ항일련군의 녀전사로 성장 (4)
우리 민족의 무명영웅들-105

2020-10-19 08:5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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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 등 녀전사들은 한동안 부대를 떠난 허전함에 빠져들었다. 다행히 밀영에는 전에 감추어둔 조이와 보리, 감자, 무우 등이 마련되여있기에 하루 한끼만은 에때울 수 있었다. 그것도 한동안. 하루종일 무료한 시간을 보내자니 배는 고팠지만 밖에 나가서 마음대로 활동할 수도 없었다. 그런 어느 날 밀영에서는 남패자회의방침을 둘러싸고 정치학습 토론을 벌리였다.

엄광호는 토론에서 로씨야혁명의 경험과 항일련군의 열하원정 실패, 장백현 지하혁명조직이 파괴된 ‘혜산사건’ 등을 실례로 들면서 어떤 혁명이나를 막론하고 고조기와 저조기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혁명의 저조기에는 ‘일보전진, 이보퇴각’의 교훈을 명심하고 적극적인 공세와 정면대결을 떠나 유리한 기회가 이루어질 때까지 퇴각하여야 한다고 력설하였다.

제2방면군 사령부의 목소리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김정숙, 김혜순, 김선 등 녀전사들은 선뜻 나서서 퇴각하는 것 만이 상책이라는 엄광호의 패배주의를 반박하여나섰다. 김정숙은 철저한 혁명가라면 정세가 불리할수록 두려움 없이 나서서 화를 복으로 만들기 위해 분발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김선은 김정숙의 견해를 지지하면서 제2방면군 사령부와 다른 곡조를 불러서는 안된다고 서슴없이 지적하였다. 엄광호는 녀전사들의 정당한 주장을 받아들일 대신 앙심을 품고 보복기회를 노리였다.

이럴 때 밀영에는 뜻하지 않던 일이 나타났다. 어느 날 전사 둘이 밖에 나가 보초임무를 수행하다가 너무도 추워 남몰래 불을 피웠는데 그만 조심하지 않아 불길이 주변에 미치면서 자그마한 산 하나를 태워버렸다. 두 전사는 엄광호와 김준에 의해 즉시 흰 광목으로 두른 천막에 갇히였다.

공교롭게도 이 무렵에 또 장백현에서 입대한 두 나어린 전사가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동원되여 사처로 헤매다가 산 아래에서 겨우 찾아냈는데 그들 둘은 너무도 배가 고파서 땅에 파묻은 감자를 꺼내서 구워먹고 있었다. 두 나어린 전사도 례외없이 천막에 갇혀야 했다.

엄광호는 꼬투리를 잡았다고 득의양양해하면서 두 나어린 전사에게 ‘도주병’이란 어마어마한 죄명을 씌워놓고 승인하라고 조겨댔다. 너무도 배가 고파 어망결에 내려갔다고 해도 곧이듣지 않았다. 청가 없이 내려가니 도주고 도주는 반혁명이라는 데야 어찌할 수 없었다. 그들의 몸을 수색해도 쓰다 남은 치분쪼각이 나질 뿐이였다. 나중에 엄광호는 두 나어린 전사를 땅바닥에 눕게 하고 그들의 배 우에다가 나무가지를 쌓아놓고 불까지 달아놓았다. 부주의로 자그마한 산 하나를 태운 두 전사도 같은 액운을 당했다.

어언 1939년 음력설(2월 19일)이 다가왔다. 2방면군 사령부에서는 밀영의 동지들이 감자 따위로 어떻게 음력설을 쇠겠는가며 해당 인원을 파견하여 전투에서 로획한 소 한마리와 색다른 식료품들을 골라 보내왔다.


1986년 7월, 항일련군 녀전사이고 주보중 장군의 부인인 왕일지와 김선 연길시에서. (김선 가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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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짐한 음력설 선물이였다. 밀영은 환희로 끓어넘치였다. 음력설날 마침내 소를 잡았다. 오래동안 식사 한번 변변히 못한 점을 고려하여 소고기를 가마에 앉히고 푹 삶았다. 소고기에 소고기국물―실로 즐거운 설명절이였다.

헌데 몇몇 전사들이 배가 아프다며 변소로 드나들었다. 좀 지나니 그들을 골려주던 전사들도 괴춤을 쥐고 부지런히 변소로 뛰였다. 알고보면 오래간만에 기름진 소고기를 많이 먹으니 허약한 위가 소화해 낼수가 없어 속앓이를 만나 설사를 한 건데 음험한 엄광호에게는 둘도 없는 기회였다.

엄광호는 김준과 간단한 말을 주고 받고는 즉각 작식대 세 녀전사를 불러들이였다. 소고기에 독약을 넣었으니 로실하게 교대하라고 했다. 녀전사들은 억이 막히여 일순 아무 말도 못했다. 그러자 엄광호는 삽시에 태도가 돌변하면서 펄쩍 뛰였다. 억울하니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이번에는 지난번 두 나어린 전사를 끌어내더니 그때 수색해낸 치분이 독약이라며 두 눈을 딱 부릅떴다. 소고기가마에 독약을 넣었다는 소식은 밀영의 동지들을 분노케 하였다. 영문도 모르는 동지들은 혁명동지를 해치는 무치한 인간들이라며 치를 떨었다.

잇달아 악형이 시작되였다. 두 나어린 전사의 배 우에 또 관솔불을 피워놓았다. 그들은 다시 까무러치고 말았다. 작식대에 독약을 넘겨주었다고 세 녀전사도 륙속 체포되고 몸서리치는 고문이 행해졌다. 때리다 기진맥진하니 팔과 다리에 철사를 비끄러매고 비틀어댔다. 김선의 다리는 뼈까지 다 드러나고 발가락 뼈까지 끊어졌다. 얼마 후 속탈을 만난 동지들은 차츰 원기를 회복했지만 천막 속에 갇힌 녀전사들은 풀릴 줄 몰랐다. 보복이라도 엉터리없는 알짜 보복이였다.

김선 등 녀전사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시간은 더디게만 흘렀다. 마침 제2방면군 사령부 통신원이 청봉밀영을 찾아왔다가 기막힌 이 사연을 알게 되였다. 그는 지체없이 사령부로 돌아가 사건의 전말을 회보하고 이른바 녀전사들의 간첩행위와 그 전말을 요약한 리동걸의 편지와 증거물이라고 하는 ‘독약’봉지를 내놓았다.

2방면군 총지휘는 깜짝 놀랐다. 너무도 큰 충격이였다. 동지들의 만류도 마다하고 치분가루에 혀끝을 대보아도 그것은 틀림없는 치분이였지 그 무슨 독약이 아니였다. 밀영의 녀전사들 모두가 ‘혁명 하나밖에 모르는 녀성’들이란 것을 너무도 익히 알고 있는 총지휘였다. 김정숙이 그러하고 김혜순이 그러하고 김선이 그러하지 않던가. 김정숙은 연길현 사방대와 신선동을 거치며 처창즈근거지로, 김혜순과 김선은 어랑촌근거지를 거쳐 처창즈근거지로 모여들며 그토록 절정에 달한 식량난도 이겨내며 오로지 혁명이라는 두 글자를 마음에 새긴 녀전사들이였다.


1995년 가을, 항일련군 로전사 박락권(朴洛权) 렬사의 미망인 리옥수(李玉洙, 우2)가 

조선에서 연길시북산렬사릉원을 찾아 남편 박락권 묘소에 제사 지낼 때의 사진. 

연변의 항일련군 로전사들인 채광춘(좌1), 김선(좌2), 려영준(우1) 동행. (김선 가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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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방면군 사령부는 지체할세라 즉각  7퇀 전선정위 김평을 불러 긴급과업을 주었다. 청봉밀영에 이른 김평은 동지들 속에 심입하여 이른바 ‘간첩사건’의 시말을 상세히 조사한 후 밀영전체회의를 불렀다. 그는 회의에서 우리 혁명대렬 내부에 엄광호와 같은 비루한 인간이 있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는 제2방면군 사령부의 명령을 받고 엄광호를 사형에 언도합니다! 7퇀 후방정위 김준은 당적을 취소하고 그의 일체 직무를 철소합니다!”

땅굴로 된 밀영의 부대실에서는 박수소리가 련달아 터져올랐다. 그간 ‘간첩사건’에 휘말려들어 사경에서 헤매던 네 전사와 김선 등 세 녀전사는 격동된 나머지 감격의 눈물을 흘리였다. 동지들도 엄광호의 속임수에 들어 그들을 억울하게 대했다며 진심으로 사과하였다. 드디여 몸이 완쾌된 동지들은 김평 정위를 따라 싸우는 6사 부대로 떠나갔다. 무서운 고문 끝에 시달릴 대로 시달린 작식대원 김정숙, 김혜순, 김선 세 녀전사는 걸을 수가 없어서 잠시 청봉밀영에 남아있어야 했다.

1939년 4월 30일, 항일련군 제1로군 제2방면군은 110여일에 걸친 류례없는 고난의 행군 끝에 드디여 장백현 이도강(현성에서 서북쪽으로 26킬로메터 떨어진 곳) 부근의 소덕수 등판에 이르렀다. 몸이 회복되고 기력이 회복된 김선 등 녀전사들도 소속부대를 따라섰다. 사령부에서는 이곳 밀림 속에서 뜻깊은 5.1절을 쇠기로 하고 부대에 숙영령을 내리였다.

오래만에 시름 놓고 쉬여보는 시간이다. 이에 못지 않게 제2방면군으로 말할 때 소덕수일대는 마냥 마음을 부풀게 하는 잊지 못할 고장이기도 하였다. 1936년 가을 무송현과 장백현의 변계를 이룬 되골령을 넘어 장백지대로 진출한 후 처음 들어선 마을도 이 고장이고 장백의 첫 총소리를 울리여 항일련군의 위력을 만방에 과시한 곳도 이 고장이 아니였던가. 그 대오 속의 김선도 감회가 깊었다. 대덕수, 소덕수 전투에 참가했던 일이 어제런듯 삼삼히 떠올랐다.

소덕수 등판에 천막들이 우후죽순 일어섰다. 매 전사들에게 새 군복과 붉은 오각별 달린 새 군모를 내주니 온 부대가 생기가 넘치였다. 모두들 분공에 따라 밀림 속에다 공연무대와 경축대회장을 만들기도 하고 모든 이들에게 달아줄 꽃송이, 명절 음식 장만에 분주하니 어딜 보나 명절분위기로 흘러넘치였다. 귀맛 좋게 들리는 노래소리에 김정숙, 김선 등 녀전사들이 산뜻한 새 주름치마 하나씩 더 타 입으니 명절분위기가 한결 진하게 안겨졌다. 저녁에는 밀영과 지방의 혁명조직에서 보내온 술로 제법 축하연까지 벌어졌다.

5.1절 새날이 밝아왔다. 아침해를 맞으며 아침밥을 먹으니 모두가 성수가 났다. 모두가 일매지게 새 군복을 갈아입고 가슴마다에 꽃송이를 다니 정녕 꿈만 같았다.

2방면군 수백명 전사들은 전신무장한 채 중대별로 대렬을 지어 름름하게 대회장에 들어섰다. 주석대 앞에서 나붓기는 붉은기와 ‘만국의 로동자들은 단결하라!’는 표어가 자못 인상적이였다.


1983년 11월초, 화룡현 항일전사좌담회에 참가한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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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2방면군 총지휘와 방면군의 지휘원들이 함께 주석대에 올랐다. 오중흡 7퇀 퇀장의 “차렷!” 구령소리와 함께 전체가 경례를 드리자 주석대에서 손들어 답례하였다.

경축대회는 <메데가>의 합창으로부터 시작되였다.


들어라 만국의 로동자

천지를 진감하는 메-데를…


합창에 이어 2방면군 총지휘 김일성 장군이 연설하였다. 장군은 연설에서 이미 얻은 기꺼운 승리를 축하하고 나서 ‘5.1’ 메-데의 유래를 설명하였으며 항일전에서 어깨겯고 싸워가는 중조 두 나라 인민들간의 두터운 전투적 친선을 깊이있게 진술하면서 당면한 정세와 과업을 일목료연하게 분석하고 지적하였다. 연설은 끊임없는 박수소리에 의해 자주 중단되였다.

지방혁명조직의 대표와 전사대표들도 발언하였다. 그들은 발언에서 일본침략자들을 물리치기 위해 끝까지 싸워가겠다고 결심을 다지였다. 뒤미처 7퇀 4련에서 우렁찬 대합창으로 연예공연의 서막을 열어놓았다. 김선 등 녀전사들이 무대에 올라 노래가락에 맞추어 춤추며 돌아갔다.


망치를 든 로동자들 따라

호미 든 농민도 일어났다

붓대 든 선비도 나오라

나라 잃은 동포들 모두 나오라


온 대회장은 노래소리, 박수소리로 차고 넘치였다. 김선은 남자전사들에 못지 않게 “좋지ㅡ좋다”를 련발하며 맘껏 춤추며 무대 우를 돌아갔다.

독창과 재담에 이어 전체 전사들의 군무가 연예공연의 마지막 장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지휘원들도 춤판에 뛰여들어 연예공연은 고조를 이루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소덕수 마등창수림 속에 다시 어둠이 깃을 내리였다. 여기저기서 우등불이 타올랐다. 온 부대는 내내 경축대회와 연예공연의 즐거움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청봉밀영에서 뜻하지 않은 재난으로 바로 숨도 쉬지 못했던 김선 등 녀전사들은 혁명전사의 보람을 마음껏 느끼였다.

1939년 5월 18일, 장백의 5호 물동으로 압록강을 건너 또다시 조선땅에 들어선 김선 소속 항일련군 제1로군 제2방면군은 총지휘의 지휘하에 조선 무산지역에서의 일련의 진공작전을 성과적으로 벌리였다. 5월 23일에는 두만강 상류의 화룡현 광평 부근에서 감쪽같이 두만강을 건넌 뒤 동경평전투, 회풍동전투, 올기강전투, 청두촌전투, 청산리 부근 목재소습격전투 등 많은 전투들을 련속 벌리였다.

화룡현 경내 두만강연안의 10여개 집단부락들 우리 2방면군 부대에 의해 련이어 습격당하였다. 항일련군 부대의 느닷없는 출현은 적들을 쩔쩔매게 하였다. 지방의 경찰놈들과 위만군 놈들은 언제 어디에서 얻어맞을지 몰라 마음대로 쏘다니지도 못하였다. 항일련군이란 말만 들어도 뒤걸음치는 나부랭이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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