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대화룡현위 책임자 박파 (2)

2021-10-18 08:3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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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명 군중들은 즉각 동지탈환투쟁을 벌렸다. 가렬한 격투 끝에 체포당한 동지들은 대부분 탈환했으나 10여명은 끝내 두만강 건너편으로 끌려갔다. 나중에 그 추수투쟁에 나선 군중들은 끝내 마패섬에 내려가 반항하는 김운산 지주의 기염을 꺾어버리고 추수투쟁의 승리를 거두었다.

추수투쟁 후 박파는 당조직의 지시대로 온 정력을 무기탈취투쟁에 몰부었다. 그는 먼저 개구소선대조직을 도와 다음과 같은 ‘호소문’을 작성하였다.

“무산청년들아! 살해된 동지들의 원쑤를 갚기 위하여 놈들의 손에서 무기를 탈환하라! 그리고 호미, 식칼, 낫, 곡괭이 지어 성축까지도 팔아 무기를 장만하라! 무장은 우리의 생명이다!”

박파는 광범한 청소년들을 무기탈취투쟁에로 궐기시켰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직접 나섰다.

1932년 7월, 박파는 개구유격대의 김락영, 최수만 등 여럿과 함께 대허문리 석마동의 악패지주 최창익을 처단하고 권총 두자루와 보총 세자루를 로획하였다. 9월에는 또 최수만, 태양욱과 함께 회경가에서 상점을 경영하는 친일주구의 집을 습격하여 권총 한자루와 보총 여러자루를 빼앗았다.

이해 가을 박파는 안창래 등 6명과 짜고들어 허무니어구 지주집 무장을 빼앗으러 갔다. 박파가 녀자차림을 했기에 권총을 찰 수 없어서 안창래가 그의 권총까지 휴대하였다. 그런데 지주집 문어구에서 만나기로 한 안창래가 늦게 당도한 탓에 지주집에서 눈치를 챘다. 지주놈이 총을 가지고 먼저 행동했기에 박파 등은 도망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던 1932년 10월의 어느 날 깊은 밤중에 박파가 동지 5명과 함께 동불사 대교동에 자리한  아버지의 외진 살림집에 나타났다. 집의 개 세마리가 마구 짖어댔다. 리시은이 바깥으로 나가보니 두루마기를 입은 낯선 사람들이였다. 리시은이 어정쩡해있을 때 두루마기를 입은 한 사람이 앞에 척 나서며 두루마기를 벗었다. 아들 리최길ㅡ박파였다.

“최길이구나.”

반겨맞는 아버지에게 웃음으로 답례하는 박파, 그러는 아들은 괴춤에 단포 둘을 차고 있었다.

“총까지 차고 다니네. 총을 차면 오래 살지 못한다. 버젓이 총을 차고 집으로 오지 말아야지.”

아버지로서의 충고에 박파는 별다른 대꾸도 없이 집으로 들어갔다. 저녁상이 마련되자 그들 6명은 게눈 감추듯 식사하더니 4명은 어디로인가 떠나고 박파와 동지 한명만 남아 꿈나락에 빠지였다. 그러다가 푸름해서 집을 나서니 박파 아버지가 사립문 바깥까지 배웅하였다. 박파의 아버지인들 어찌 알았으랴, 그번 리별이 그들 부자간의 인생 마지막 만남과 헤여짐일 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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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파가 집을 나선 지 얼마 안되여 동불사 대교동 집에 전화가 걸려왔다. 셋째 동생 인길이 전화를 받았다.

“나 최길이다. 지금 몸이 불편해서 집으로 가지 못해. 아버지 말고 어머니가 와야겠는데, 어머니더러 룡정 아래 기차역에서 내리고 기차에서 내릴 때와 역을 나설 때 제일 마지막으로 내리고 나서라고 해라…”

심상치 않은 전화다. 인길이가 전화내용을 부모님께 그대로 전하자 어머니는 다그쳐 닭을 잡고 떡 등을 마련해서 급기야 집을 나섰다.

‘아들애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가.’

어머니 로장봉은 근심 어린 모습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사연은 이러했다.

때는 1932년 10월 27일, 그날 박파는 소선대화룡현위 책임자 김파(항일렬사)와 함께 현 안의 개구 추수투쟁을 지도하기 위해 개산툰 삼동포로 갔다. 이날 오후 4시경에 그들이 한창 회의를 하는데 팔도하자경찰서 놈들이 갑자기 쳐들어왔다. 박파는 날랜 동작으로 잽싸게 놈들을 뿌리치고 동지 둘과 더불어 삼동포 뒤산으로 올리달렸다.

잠간사이 그들 셋은 뒤산 어느 우묵한 곳에 이르렀다. 어느 결에 말을 탄 놈 다섯이 가까이 다가왔다. 네놈이 말에서 뛰여내리고 일장 격투가 벌어졌다. 박파 등 셋의 결사적 격투, 그 격투 속에 일본놈 모두가 죽어 번드러졌다. 우리 동지 두명도 불행히 희생되였다. 말을 탄 놈 한명과 박파 둘이 남았다. 말을 탄 놈은 주먹치기는 물론 원근에 악명이 자자한, 도투바우로 불리우는 팔도하자경찰서 서장 오사까하라, 그런 오사까하라가 말에 앉은 자세로 권총을 빼들었다.

총 앞에서 뛸 수도 없고 숨을 곳도 없다. 순간 박파는 두 손을 머리 우에 쳐들고 놈의 말 곁으로 다가섰다. 오사까하라는 박파의 손에 아무 무기도 없는 것을 보고 시름을 놓았던지 권총을 총집에 넣었다. 이때다 하고 박파는 번개같이 말고삐를 잡아채면서 느슨해진 말고삐 끈으로 오사까하라의 목을 걸어당겼다.

놈이 말에서 굴러 떨어지자 박파는 유도선수의 억센 주먹으로 놈의 면상을 들이갈기였다. 주먹치기에 능한 오사까하라도 만만치가 않았다. 치렬한 박투가 벌어졌다. 둘은 치고 박고 하며 한식경이나 싸웠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박파는 빈구석을 노렸다가 놈의 가슴패기에 드센 강타를 안겼다. 놈은 가슴을 붙안고 돌아가다가 훌렁 나가 넘어졌다. 박파도 머리와 배에 심한 타격을 받고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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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후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몇발자국 떨어진 곳에 피투성이 된 오사까하라가 인사불성으로 쓰러져있었다. 산 아래에서 총소리가 들려오자 박파는 기여서 수림 속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으로 그는 동성용 베틀골로 가서 한 조선족 민간의사한테서 약 한달간의 치료를 받았다.

그사이 박파는 동불사 대교동 아버지 살림집에 전화를 하게 되였다. 박파의 어머니 로장봉이 먹거리 짐들을 이고 지고 룡정 아래 기차역에 이르렀다. 기차에서 내린 후 아들의 말을 명심하고 치마를 추스려 입는 척하면서 시간을 지체하였다. 그렇게 마지막 사람으로 기차역을 나서니 약속대로 9살과 11살 정도의 두 소년이 맞아주었다.

주변에는 중국 순사놈들이 어슬렁대고 있었기에 로장봉은 손자애들인 척 알은 체를 하고 두 소년을 따라나섰다. 어린 두 소년은 내처 앞에서 걷기만 했다. 짐을 이고 지고 뒤따라가는 로장봉은 쓰러질 듯 힘겹기만 했다. 그런대로 이를 악물고 한시간 푼히 걸으니 어느 삼림 속에 이르렀다.

삼림 속을 헤치고 걸으니 산중턱이 나타났다. 산중턱 저만치 앞에서 일본군복에 칼을 찬 사람이 마주 내려왔다. 속이 덜컹했지만 가까이 다가온 것을 보니 아들 박파가 아닌가, 그제야 어머니는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박파는 어머니를 반기면서 일전에 팔도하자경찰서 서장 오사까하라 놈과 생사박투를 벌리다가 놈의 총에 맞아 밸까지 나왔다며, 지금은 산중에서 치료중이니 괜찮다고 말씀 올렸다.

로장봉이 아들네를 따라 산속 고느적한 막으로 가니 아들 박파의 동지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어디선가 소대가리 둘을 가져왔지만 낮에는 불을 때고 끓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로장봉으로 말하면 그번 걸음이 아들애와의 마지막 만남이였으니 아마도 그때부터인가 로장봉은 성이 나면 다리가 쫄아드는 것 같고 하신으로는 피가 흘러내렸다.

아들 최길ㅡ박파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간 로장봉은 그때부터 이놈의 세상, 이놈의 세상 하면서 붉은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붉은 술 한컵을 마시면 부글부글하던 속도 시원해난다는 그였다. 그런 어머니를 박파도 다시 뵐 기회를 가지지 못하였다.

건강을 회복한 후 박파는 산구에 위치한 화룡현 어랑촌항일유격근거지로 들어갔고 소선대화룡현위 책임을 맡아나섰다. 1933년 1월에는 순시차로 지방에 나갔다가 룡정 부근 룡강동에 있는 동지 정근수의 집을 찾아갔다. 그들은 지난 시기 적들의 수차의 체포와 소탕에 파괴된 룡정구 당단조직과 기타 군중단체를 재조직할 문제를 가지고 진지하게 토의하였다. 그 후에도 박파는 수차 룡정에 숨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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