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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택한 삶을 엮어가는 맹인안마사

  • 2007-05-23 10:35:22
한치앞도 보지 못하는 맹인 강준우씨(58살)는 신근한 로동으로 자신의 생활을 윤택하게 가꾸어가고있을뿐만아니라 맹인들에게 무상으로 안마기술을 전수해 그들이 자립할수 있도로 도와나서 주위사람들의 찬사를 받고있다.

1969년 강준우씨는 화룡시 서성진에 지식청년으로 내려갔다.그러던 어느 하루 일하다 왼쪽눈을 다치게 되였는데 이상증상이 계속되다 2년후에는 완전히 실명하게 되였다. 오른쪽눈을 살리기 위해 왼쪽눈을 제거해버렸지만 시신경위축으로 오른쪽눈도 잇달아 실명하게 되였다. 그후 그는 연길시복리공장에 림시공으로 취직하게 되였다. 1986년 방송을 통해 흑룡강성의 모 학교에서 맹인안마를 배워준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흑룡강성으로 향했다. 맹인안마를 배운다는것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였다. 온하루 혈을 누르고나면 사지가 나른해 밥먹을 맥조차 없었다. 때론 포기하고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이를 악물고 견지한 결과 4년후에 끝내 중의안마사자격증을 획득하였다.

고향에 돌아온 강준우씨는 연길시에서 제일 처음으로 맹인안마원을 꾸렸다. 수중에 돈이 없어 10여평방메터되는 집에 침대 하나밖에 놓지 못한데다 위치까지 나빠 찾아오는 환자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는 맥을 버리지 않고 짬만 나면 주위사람들에게 안마는 경추병, 견주염, 요추간판탈출, 좌골신경통 등 병을 치료할수 있다고 선전했다.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점차 환자가 하나 둘 찾아들기 시작했고 소문을 듣고 왕진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게 되였다. 당시만 해도 한번 안마를 하는데 2원밖에 받지 못했지만 하루에 17명좌우씩 안마를 해준 덕에 달마다 500~600원이라는 수입을 올릴수가 있었다.

이때로부터 그의 생활은 서서히 펴이기 시작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강준우씨는 300평방메터가 되는 집을 자체로 마련하고 덕의루부근에 중의맹인안마원을 차려놓고 환자를 맞고있다. 명성이 알려지자 안마를 배우려는 사람들도 그를 찾아오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40여명에 달하는 안마사를 양성했다. 그중 맹인이 절반을 차지하고있다. 강준우씨는 생활이 어려운 맹인들에게서는 학비를 받지 않거나 절반씩 받고 안마를 배워줬으며 5명의 맹인을 자기가 경영하는 안마원에 취직시키기도 했다.

김광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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