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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열심히 살렵니다

—전수화

  • 2008-06-11 19:03:23
10여년전 우리 집은 몹시 가난했고 시집 역시 풍족하지 못한 편벽한 시골에 있었지만 손재간이 많고 듬직한 남편이 마음에 들어 주위의 비웃음도 마다하지 않고 결혼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둘이 두손을 맞들고 벌면 부러울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옛날 속담처럼 짚고 일어날 지팽이가 든든하지 못해서인지 세상살이가 생각처럼 잘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맥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그늘밑에서 한담할 때 우리 부부는 산속을 누비며 약재를 캤고 엄동설한 맵짠 추위속에서도 1전이라도 더 벌려고 콩을 기름과 콩깨묵으로 가공해 팔았습니다. 우리는 가진게 없지만 열심히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금방 모든게 되는가싶더니 딸애가 갑자기 중병에 걸려 12만원이라는 거금이 필요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젠 별수 없다며 포기하라고 했지만 우리는 돈때문에 자식을 포기하는 부모가 되기 싫었고 낳은바 하고는 끝까지 책임져야 하다는 의무감과 사명감으로 동네방네에서 12만원을 꿔 딸애를 치료했습니다. 빚은 가득 짊어졌지만 부모책임을 다했다는것으로 가슴만은 뿌듯했습니다.

결혼생활 10여년, 그동안 괴롭고 힘든 일이 많고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여보, 고맙소”라고 남편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모든 유감과 서러움을 깨끗이 털어버릴수 있었습니다. 딸애를 해산하던 날, 수술실로 실려가는 내 손을 꼭 잡고 "엄마, 힘내세요. 무서워 마세요. 내가 있잖아요" 라고 어른스레 말하던 아들애와 지금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며 "엄마, 엄마" 하며 달려오는 딸애가 있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엄마로 된 기분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앞만 보고 살고있답니다.

이번에 이 글을 써 보낼 때 나는 우리 가족이야기이니깐 우리 가족 성원들 이름에서 한글자씩 뽑아 전수화라고 락관을 써보냈는데 이렇게 큰 상을 받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보잘것없는 글인데도 우리 가족에게 이처럼 큰 영광을 준 연변일보사와 여러 평심원선생님들에게 진심으로 되는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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