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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실불수 아버지공경에 지극한 정성

  • 2009-02-03 13:14:06
어머니 가출후 16세 나이에 가장으로 반신불수 아버지 모시고 13년
10평방메터 세집...좀 더 편안한 세집에서 아버지를 모시는것이 꿈이다.
그 “효자”는 지금 연길시 “백중가공부”에서 일하고있는 정호(29세)이다.
1995년 1월 5일, 당시 개체운수업을 하던 그의 아버지 정춘용(55세)은 친구 도우러 나섰다가 눈길에 차가 구으는 큰 사고로 하지가 마비되는 불행을 당했다. 전 재산을 모아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면서 수차 척추수술을 받았지만 기적은 고사하고 남은것은 산더미 같은 빚뿐이였다.
그러던 1997년 어느날, 어머니마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불구로 된 육체적아픔에 배신감과 괴로움으로 더 버틸 힘이 없었던 아버지는 죽음을 결심하고 련 사흘동안 밥 한끼, 물 한모금 마시지 않았다. 식음을 전페하고 사신에서 헤매는 아버지의 몸에 엎드려 정호 오누이는 하염없이 울었다.
(아버지께서 얼마나 힘드셨으면 이런 생각을 다 하셨을가. 이제 아버지를 보살펴드릴 사람은 나밖에 없다.)
이렇게 마음먹은 16살나는 정호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가정의 모든 중임을 가냘픈 어깨에 짊어지고 세식구의 소년가장으로 되였다. 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빨래하고 안마해드리고 운동시키며 병간호를 해야 할뿐더러 녀동생까지 보살펴야 하다보니 실로 힘에 부치기는 하였지만 그는 언제 한번 얼굴 붉히며 불평 한마디 부리지 않았다.
한번은 고마운분의 도움으로 아버지가 연변대학복지병원에 입원치료를 받게 되였다. 정호는 “치료를 잘하면 기적이 일어날수도 있다”는 의사선생님
의 말에 큰 희망을 가졌다. 어떤 힘든 일이든 다 해내리라 마음먹었다.
당시 복지병원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그는 두달동안 매일 3층 병동에서 1층까지 아버지를 업고 오르내리면서 물리치료를 열심히 받도록 도와드리였다. 또 어깨너머로 의사들이 하는 훈련방법을 눈에 익혔다가는 병동에 돌아와서 그대로 열심히 해드리군 했다. 한창 부모사랑을 받으면서 마음껏 학교생활을 즐겨야 할 16살밖에 안되는 어린애가 매일 땀벌창이 되여 지극정성으로 아버지를 돌보는 모습에 뭇사람들은 “보기 드문 효자”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입원 당시 병원밥을 사먹을 형편이 못되다보니 매일 고모가 하루에 한번씩 밥을 지어 날랐다. 그는 그 밥을 아침, 점심, 저녁 세끼로 나누어 먹었다.
한창 나이에 한끼밥을 세끼니로 나눠먹다보니 항상 배가 고팠지만 그는 아버지의 밥그릇에 고기반찬 한점, 밥 한술이라도 더 떠올리군 하였다. 때론 허기진 배를 물로 달래는 아들을 바라보면서 가슴아파 눈물짓는 아버지를 위로해드리는 정호의 행동에 보는이들마다 눈굽을 찍군 하였다.
정호는 항상 먹고 살 걱정이 태산같아 막막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알면 힘들가 걱정되여 늘 고마운분들이 도와주는 저그마한 돈을 갖고 단돈 1원도 쪼개써가면서 가정살림을 알뜰히 조직하였다. 도문에 있을 때 밤늦게 시장에 나가면 남새를 눅게 살수 있다는것을 알고는 몇년을 하루 같이 밤시장을 나가다보니 시장바닥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에 달했다.
18살 나던 해 어느날, 아버지가 갑자기 견디기 어려운 통증으로 괴로움을 호소하며 자리에서 딩굴었다. 병원으로 모셔가야 했지만 그럴 돈이 없었다. 여기저기 돈 꾸러 다녔지만 결국 얻지 못하였다. 그는 밖에 나가 혼자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때 그는 아버지를 위해서 어떤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서슴지 않고 하루빨리 돈을 벌어야겠다고 다졌다.
이렇게 식당에 취직해 주방일을 해오기를 몇년, 가공부에서 몇년, 외지로 나갈 기회도 많았지만 아버지를 돌볼 사람이 없다보니 생각을 아예 접고 열심히 일하면서 아버지를 모셔왔다.
효자아들의 노력으로 아버지병세도 많은 호전을 가져왔다. 정호는 돈을 보면 쓴다고 매달 1000원밖에 안되는 로임봉투를 아버지한테 맡겼다. 아버지도 운신하기 힘든 몸으로 밥하고 빨래하는 가무를 맡아하며 아들을 도와나섰다. 딸 정화는 생활이 어려워 고중을 졸업하지 못하고 청도에 가 한국기업에서 일하고있는데 아버지병치료때문에 얼마 안되는 로임을 아껴쓰며 종종 돈도 보내오군 한다.
일부 사람들이 정호에게 아버지때문에 많은것을 잃었다고 이야기하면 정호는 오히려 아직도 10평방메터 세집(2002년에 연길로 왔음. 현재 서시장근처 세집에 있음)에서 불편함을 겪고 계시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아버지한테 편히 살수 있는 세집이나마 마련해드리고저 정호는 열심히 일하고있다.
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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