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계획대로인가, 나는 꿈에 얼마나 근접해있는가

2018-10-16 16:01:34

꿈, 직장, 적성은 별개의 문제인거 같다. 나도 이 세가지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해왔다.

알리바바그룹 마운 회장에 관한 에피소드이다. 한 사람이 마운 회장의 성공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마운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고 어떤 역경을 헤쳐왔으며 어떤 의력으로 견지했는지 알기때문에 더더욱 탄복이 가는 바이다. 나라면 언녕 미쳐버렸을 것이다.”

그러자 마운이 대답했다.

“내가 견지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고난이든 종당에는 다 지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어떤 힘든 일이든 지나가기만 하면 앞날은 더욱 좋아지리라고 믿었기때문이다. 모든 것은 나의 꿈에 근접하기 위한 과정이다. 나는 당신이 더욱 탄복된다. 앞날이 어떠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고정불변의 일상을 보낸다는 것이. 나라면 진작 미쳐버렸을 것이다.”

대학을 갓 졸업한 학생은 굳이 비유하자면 마치 커다란 캔버스에 화려한 꿈이 밑그림으로 그려진 상태와 같다고 하겠다.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완벽한 작품이 나올지, 겪어본 사람들은 안다.

2030세대, 지금쯤 자신의 꿈에 어느 정도 근접했을가, 그들의 삶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을가?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꿈을 위해서 직장을 버릴 수 있다

김명희(36, 연길)

졸업하고 대도시에서 살고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보따리를 싸들고 북경을 찾았다. 회사에서 근무하기를 1년, 갑자기 고향에 어머님이 건강이 나빠져서 아무래도 고향에서 어머니를 지켜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향에서도 내가 할수 있는 일이 많겟다 싶어서 높은 월급을 포기하고 연길에 돌아왔다.

연길에서 직장인으로 살기를 12년째, 하루라도 젊었을 때 뭔가를 하고싶은 마음이 꿈틀거려서 한쪽으로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다.

내 꿈은 양로원과 고아원을 함께 운영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건축분야를 전공했고 지금껏 건축분야에서 뛰여왔다. 산 좋고 물 맑은 곳에 한옥마을을 건설하고 거기에 고아원, 양로원을 만들어 운영하고 싶다. 대학때 한번의 고아원 방문으로 이런 꿈을 가지게 되였고 그 꿈이 지금 내 맘속에서 꿈틀대서 잠자코 있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필요하다면 직장을 그만둘 생각이다. 직장을 그만두는데 대한 부담감은 없다. 평온한 생활보다는 내 꿈이 중요하니까.

아직은 아무것도 해놓은 것이 없지만 이 꿈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사회봉사활동을 하면서 알아보고 있다. 생활이 어려운 학생을 돕는 조학회에 십년째 몸을 담고 있고 고아원 양로원에 봉사활동을 열심히 다니면서 마음을 전하고 있다.

아직도 희미하고 멀어보이기는 한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꼭 이뤄낼 것이다.

김명희는 여가시간을 리용해 고아원이나 경로원을 방문하며 자신의 꿈에 한발작씩 다가가고 있다


꿈, 직장, 적성은 별개의 문제이다

리선화(가명, 39, 연태)

고고학자가 꿈이였다. 그래서 대학교 전공도 력사를 선택했고 졸업 후에는 연구생공부를 계속 하려 했으나 조건이 여의치 않아서 포기하고 취직했다.

남자친구와 같은 도시를 선택해야 했기때문에 같은 직장에 면접을 봤고 행운스럽게 둘 다 취직이 됐다.

다행히 내가 좋아하는 문학창작과 어느 정도 련관이 있는 직업이였기때문에 9년동안 쭉 견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남자친구는 남편이 됐다.

2011년에 남편이 민족교육에 종사하고싶다고 해서 나도 남편의 꿈을 받들어 함께 사직하고 유치원교육사업을 시작했다.

유치원교육자들은 아이들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가르치고 살뜰하게 보살펴야 하는데 나는 마음뿐이였지 그것을 잘 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예쁘고 사랑스러웠지만 그들을 가르치는 일에는 그닥 소질이 없었나보다.

그러면서 6년이 흘렀다 힘든 6년이였다. 하지만 나름 성공은 거둬서 이제는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어찌보면 이 단계는 나의 꿈을 위한 분투가 아니라 그냥 생계를 위한 수단이였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꿈과 직업, 그리고 적성에 맞는 일이 서로 별개인 것 같다. 나도 이 세가지 사이에서 갈등을 많이 해왔다.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다른 사람들은 아주 쉽게 돈을 버는듯 보였다. 정작 맨몸으로 부딛쳐보니 그래도 직장인이였을때가 행복했구나 하는 생각이 수없이 들었다. 직장인이였을때의 생각과 경영인으로서의 생각, 자세, 립장은 천지차이였다.

그나마 나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와 촬영을 짬짬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직업과 적성에 맞는 일은 어느정도 맞물린 셈이다.

나는 아직도 내 자리를 못찾았다. 내 꿈은 고향에 돌아가서 평범한 일상을 사는 것이다. 시골로 돌아가서 집을 짓고 뜨락에 남새를 가꾸면서 거기서만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하고 싶다. 자연과 가까이 살면서 글도 쓰고 사진도 찍으면서 사는 것이 내 꿈이다. 종당에는 원점으로 돌아가는듯 하지만 그 한바퀴 원이 그려지면 내 꿈이 실현될 것이다. 내 꿈은 90%에 다달았다.


작은 꿈을 이루다보면 큰 꿈 이룰 수 있다

김경란(34, 료녕 단동)

의학을 전공했다.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한국기업, 개인기업 등 여러곳을 전전하다가 내 전공에 알맞는, 좀 더 큰 꿈을 꾸게 됐다. 그래서 전공에 맞는 의료분야 사업단위시험에 합격해 6년을 근무했다.

하지만 리론과 현실의 차이, 그리고 틀에 박힌 제도속에서 한계를 느끼게 되고 심사숙고 끝에 사업단위를 사직하고 프리랜서의 삶을 선택했다.

내 꿈은 의료시설을 갖춘, 삶의 질을 높일수 있는 료양원을 만들어서 운영하는 것이다.

현재 하는 일은 해외 우수상품을 수입해서 국내에 류통시키고 연변의 우수상품을 국내 국외에 내보내는 일이다. 향후 전망을 보면서 조선무역도 꿈꾸고 있다.

꿈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여러가지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와중에 사람들한테 내 꿈을 공유하면서 같이 꿈을 이룰 사람을 찾고 있다. 이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큰 꿈과의 거리는 30%정도 가까워진것 같다. 멀게만 느껴졌던 꿈이 이제는 보다 구체적으로 변했기때문이다. 작은 꿈들을 하나하나 이뤄가다보면 언젠간 큰 꿈도 이뤄질 것이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은 다르다

박해화(가명, 29, 룡정)

내 꿈은 무지개같다. 무지개를 향해 힘차게 달리고 있는데 멈춰서 보면 무지개는 여전히 아득히 먼 곳에서 아름답다. 내 꿈이 바로 그렇다.

내 인생은 지금까지 계획대로 실행돼왔다. 원하는 전공에 합격했고 순조롭게 석사학위까지 따냈다. 지도교수의 소개하에 전공에 들어맞는 직장도 찾았다. 어렸을 적 꿈과 완벽히 맞물리는 삶이였다. 하고자 하는 일이 분명했기때문에 선택의 과정에 큰 어려움이 없었고 세상은 늘 만만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 와중에 내가 놓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꿈과 현실의 괴리였다. 꿈은 늘 아름답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나름 만족스러운 삶이였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이 끝까지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길은 평탄햇지만 그 길을 걷는데는 수많은 변화, 기회, 도전이 웅그리고 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나에게는 반쪼가리떡밖에 차례지지 않았다.

이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뭔가 좀 더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좋아하는 일이라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둘은 분명 차이가 있었다. 우선 자신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중요하다.

꿈을 좇는 일은 늘 어렵지만 그래도 꿈은 한결같이 빛을 내며 나를 유혹한다. 그래서 아직도 다른데 한눈을 팔 수가 없다. 지금의 나는 이제 좀더 현실을 정시하면서 내 꿈과 현실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가고 있는 중이다. 여전히 눈부신 꿈을 위해서.

내 꿈은 50%에 다달았다.


구체적인 꿈이 없었던 것 같다

김성휘(32, 상해)

대학을 졸업하고 여러 대도시를 거쳐 현재 상해에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근무하고 있다. 30대에 들어선지도 이슥하지만 사랑, 결혼, 직장, 꿈 그 어느 하나 뜻대로 이뤄진 것이 없다.

궂이 꿈이랄 것도 없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구체적인 계획과 꿈이 없었던 것 같다. 그냥 눈앞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려고 노력했을뿐...

대학은 내 성적을 가늠해서 비슷한데를 고르다나니 적성과는 먼 전공이였고 취직은 적성까지 고려한다는 것은 사치한 일이였다. 요즘같은 취업난에 받아주는데가 있으면 고마울 따름.

월급은 만원을 넘긴지 오래됐지만, 그래서 가끔씩 고향의 친구들한테는 부럽다는 소리도 듣지만 딱 거기까지이다. 아무것도 이뤄놓은 것이 없다. 5년 계획, 10년 계획에 대해 말하려 하니 내가 정말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꿈도 없이 살아온 것 같아서 후회가 든다.

일찍 고향인 연길에 돌아가서 사업단위에 취직하려 시도한 적이 있다. 정작 면접에 합격하고 발붙일 자리는 찾았는데 겁이 더럭 났다. 상해에서 받던 것의 3분의 1도 안되는 월급으로 살아갈 수 있을가, 이래가지고 언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가,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속에 들어찼다.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하는 나에게 있어서 그래도 기회가 많은 대도시가 적합할 것이라 생각하고 다 포기하고 상해로 되돌아갔다.

내 꿈은 무엇일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는 것이라고 해도 될가?

리련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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