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절이 간단해졌다.
하루에 술상을 몇번씩 차리던 현상도 사라졌다. 마작을 놀다 지치고 이 친구 저 친구 만나면서 술잔을 기울이는 일만 없다면 아마도 ‘명절증후군’이란 말은 사라질 것만 같다. 2019년 설날, 전화와 위챗으로 설문을 펼쳤다.
“래년도부터는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청도농업대학 부근에 사는 김순복(룡정, 71세)은 해마다 가장 반갑지 않은 명절이 바로 설명절이다. 술을 즐기고 사람을 반겨하는 남편은 손님만 들어오면 술상을 차리라고 야단이다. 누구든 찾아오면 당연히 술상을 준비해야 했고 그는 설 뒤끝이면 꼭 앓아 누워야 했다.
한살 어렸을 때에는 그런대로 오는 손님들이 반가웠으나 인젠 자기 한몸도 건사하기 힘든 마당에 세배 한답시고 찾아드는 손님들이 부담스럽다.
올해에도 설날에 조카들이 설쇠러 온다고 하기에 설준비를 했다고 했다.
“사실 올해 설은 령감, 손녀와 함께 조용히 쇠려고 했는데 오늘 또 조카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조카들과 정식으로 약속했습니다. 명년부터는 찾아오지 말고 전화나 위챗으로 문안하는 것으로 세배를 대신하자고 말입니다.”
김순복은 명절을 쇠고 앓는 게 인젠 진절머리가 난다고 하면서 “명절증후군은 우리가 마지막 세대가 되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린 술상을 차리지 않아요.”
허정화(화룡, 58세)는 10년 만에 청도에 있는 아들집에 와서 설을 같이 쇴다.
대가족인 최씨 집안의 둘째 며느리로 시집온 그에게 있어서 명절은 ‘로동절’이였다. 명절 2,3일 전부터 언제 한번 편히 누워 쉬여본 적이 없다. 점심 한끼를 차리려고 해도 다섯상을 차려야 했고 하루종일 가마목에서 맴돌아쳐야 했다.
“오늘도 아들 친구들이 놀러 왔지만 마작은 우리 집에서 놀고 식사는 음식점에 가서 하네요.” 우르르 몰려들었던 아들 친구들을 어떻게 접대할가 고민했는데 모두들 음식점에 가서 먹는 게 편하다면서 나가는 바람에 ‘해방 받은 느낌’이라면서 허정화는 시대의 변화를 실감한다고 했다. 허정화는 시집와서 30여년간 올해에 가장 편한 명절을 쇠는 것 같다고 했다.
“주방에는 주인이 따로 없다.”
한순분(훈춘, 33세)은 결혼 7년 차를 맞는 가정주부이다. 그는 명절이래서 특별히 바쁜 걸 느끼지 못한다.
“저희 집에서는 누가 재간있으면 누가 손을 대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도 우리는 남편과 제가 각각 세가지씩 료리를 만들어 올렸습니다. 시부모님들도 넘 기뻐하시네요.”
시부모님들과 시삼촌들이 왔지만 꼭 격식을 갖춰 음식을 차리고 접대한 것이 아니라 가장 편한 모습으로 접대한다면서 “음식상도 따로 차린 것이 아니라 객실에 비닐박막을 펴놓고 빙-둘러앉아 로소동락했다.”고 했다. 식사가 끝나자 남편이 비닐박막을 둘둘말아 버리니 거두매도 끝났다고 했다.
…
우리의 녀성들을 지지리도 괴롭혔던 ‘명절증후군’, 사전을 보면 명절을 준비하면서 생긴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가리켜 명절증후군이라고 했다. 어찌보면 ‘명절증후군’은 실리보다 형식에 목매고 달려왔던 우리 례절문화의 파생물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정말 ‘명절증후군’의 마지막 세대일가? 허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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