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충봉 축구공 드리블로 훈춘서 북경까지
전반 로정 도합 1500여킬로메터 인생 꿈 실현 새 중국 창건 70돐 헌례

2019-08-13 08:51:59

4월19일. 훈춘에서 떠나는 모습.

3개월 16일, 1500여킬로메터, 13년의 꿈.

302, 202, 102국도를 지난 4월 19일부터 8월 4일까지 훈춘시의  박충봉, 김정숙 부부의 특별한 경험은 이러한 수자로 총화할 수 있다. 박충봉은 축구공 드리블을 하면서 훈춘에서 출발하여 302, 202, 102국도를 따라 3개월 16일 만에 북경에 도착했다. 이로써 박충봉은 오래동안 꿈꿔왔던 목표를 실현하고 새 중국 창건 70돐에 그만의 축하선물을 전하게 되였다.

“살아왔습니다. 허허”

12일, 3개월 16일 동안 북경행 도전을 마치고 집에서 한창 휴식을 취하고 있는 박충봉, 김정숙 부부와 전화인터뷰에서의 박충봉의 첫마디였다.

박충봉은 과거 신체상황이 좋지 않았다. 줄곧 축구를 좋아하던 그는 신체단련 종목으로 드리블을 선택하게 되였다. 드리블의 매력에 푹 빠진 그는 점차 드리블하면서 길을 갈 수 있게 되였다. 2006년 체력이 좋을 때 한번에 1시간 넘어 할 수 있고 드리블을 1만여개 할 수 있었다. 걸으면서 하면 축구공을 떨구지 않고 한번에 2킬로메터는 갈 수 있었다.

8월 4일. 북경 천안문에 도착한 모습.

2006년 북경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그는 축구공 드리블을 하면서 훈춘에서 북경까지 걸어갈 계획을 했다. 당시 박충봉은 맹훈련에 빠졌고 대량의 준비사업을 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원인으로 북경에 가지 못하게 되였으며 범프로 북경에 가는 것은 박충봉의 마음속 커다란 유감으로 남았다. 그러다 새 중국 창건 70돐을 맞아 올해 박충봉은 다시 도전하기로 마음 먹었다. 정년퇴직을 2년 앞두고 그는 병퇴직수속을 밟았다. 조금이라도 체력이 좋을 때 떠나기 위해서였다.

남편이 북경에 가기 위해 훈련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정말로 이 정도 결심인 줄 몰랐던 안해 김정숙은 한달을 앞두고 남편의 실력을 검증해보기로 했다. 보름가량의 엄격한 ‘검사’과정을 거쳐 남편의 실력을 검증한 김정숙은 출발을 보름 정도 앞두고 북경행을 동의하게 되였고 소형 차량을 구입하여 북경행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게 되였다.

올해 4월 19일, 훈춘시민들의 응원 속에서 훈춘을 떠나 도전을 시작했다. 신심 가득 도전 길에 올랐지만 현실은 상상보다 훨씬 가혹했다. 아직 쌀쌀한 날씨에 난방도 없는 방에서 자게 된 박충봉은 떠난 지 이틀 만에 열이 나게 되였고 3일간 주사를 맞았고 박충봉이 좀 낫자 10일 만에 김정숙이 기침이 나고 목이 아파났다. 역시 3일 동안 점적주사를 맞고 약을 먹으면서 좀 낫는가 싶더니 약물과민으로 긴급치료를 받게 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차를 운전하면 2시간이면 집에 돌아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박충봉 부부는 ‘이미 떠난 길은 돌아갈 수 없다.반드시 북경에 가야만 한다.’는 신념으로 북경을 향한 방향을 되돌리지 않았다.

“의력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 목숨을 걸고 했습니다.”라면서 박충봉은 위험한 일도 많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고마운 사람들에게서 매번 힘을 얻었다고 했다. 차에서도 자고 려관에서도 자고 길을 가다가 맞닥뜨린 마을의 주민집에서도 자고 촌민위원회사무실에서도 잠을 자봤다는 이들 부부는 무릇 잠을 잘 수 있는 곳이라면 환경이 아무리 차해도 박충봉 부부는 늘 고마웠다고 했다. 또 단오에 쭝즈와 오리알을 가득 삶아 건네준 주민, 새벽 5시에 나와 배웅해준 주민, 무상으로 차량을 수리해준 차수리부 업주, 장졸임을 한가득 얼음주머니에 포장해 가져온 주민…

“길에서 좋은 사람을 정말 많이 만났습니다. 이제 돈을 많이 벌어 걸었던 길을 차로 다시 한번 걸으면서 고마운 분들께 다시한번 감사를 드리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이들 부부는 길에서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응원해준 모든 사람들이 너무 고마웠다고 했다.

8월 4일 아침 드디여 최종 목적지인 천안문광장에 도착한 그는 감격에 목이 메여 말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흘릴 수 없었고 벅차오르는 감정을 꾹꾹 참으면서 그는 모주석초상 앞에서 몇마디 소감을 발표하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박충봉은 북경 천안문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 속에서 박충봉은 북경 천안문 앞에서 손으로 승리 표시를 하면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안해와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찍기도 하면서 무척 상기된 표정이였다.

“저는 워낙 모택동을 열애하고 이번 북경행에도 모택동마크를 가슴에 달고 다녔습니다. 천안문광장에서 성공을 선포했는데 주변의 관광객들이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드리블을 하면서 만리장성에 올랐고 모주석기념관도 가보고 국기게양식도 구경했습니다.” 라면서 박충봉은 잊지 못할 그날을 돌이켰다.

이들은 하루 남짓 북경을 구경하고 훈춘에 돌아왔다. 10여년 동안 오직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달려온 박충봉은 긴장이 풀린 탓인지 집에 오니 여기저기 아프고 피로하여 휴대폰을 끄고 며칠 동안 충분히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박충봉의 범프 북경행의 성공은 안해 김정숙의 지지와 도움을 떠날 수 없다. 운전수, 촬영사, 매니저, 보건사… 등등 모든 뒤일을 모두 김정숙의 몫이다. 박충봉이 드리블을 시작하면 김정숙은 거치대에 카메라를 고정시켜논 뒤 천천히 박충봉의 뒤를 따른다. 드리블을 하면서 걷다보니 속도가 늦어 뒤를 따르는 김정숙은 차량변속기를 1에 놓고 브레이크를 살살 계속 밟아야만 박충봉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갈 수 있다.

2008년 출근과 가게일을 병행하면서 고달픈 몸에도 남편에게 등을 떠밀려 새벽에 나가 운전을 학습했다. “남편은 이번 북경행을 위해 10년 전에 나더러 일부러 운전을 배우라고 했습니다.”

새벽 4시 혹은 4시 30분부터 다섯시간가량의 범프가 끝나면 김정숙은 운전수에서 보건사로 변신한다. “하루이틀 걷는 것도 아니고 장기적으로 걸어야 하기에 절대 무리하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매번 박충봉이 휴식을 취할 때면 김정숙은 숙박지 주변 사람들에게서 더운 물을 빌려와 박충봉이 발을 담그도록 하고 식초를 섞은 물에 수건을 적셔 무릎을 열찜질해주면서 박충봉이 피로를 풀 수 있도록 했다.

“길림성 교하시 경령구간에서 경사가 심해 당지 주민들이 경사구간에서 허리를 다칠수 있으니 드리블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기어이 올리막과 내리막에서 모두 드리블을 했습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길에서 여러번 다투었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정숙은 “이번에 잘 다녀온 것 같습니다. 한평생 같이 살 사람인데 남편이 꿈을 시도하지 못하고 평생을 후회하기보다 이렇게 힘을 합쳐 목적을 이룬 것이 참 잘되였습니다.”라면서 남편의 꿈을 지지한다고 표했다.

박충봉은 “조국의 아름다운 산천을 감상했습니다. 며칠 더 휴식하고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 할 일을 해야지요. 천천히 책을 한권 쓰려고 합니다. 이번에 북경에 다녀오면서 감수가 너무 많습니다. 감동적인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한옥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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