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구령에 울려퍼지는 행복의 노래

2020-07-23 08:52:53

안도현 도시구역에서 서남방향으로 35킬로메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신합향 대황구촌은 황페하다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지만 현재는 예전의 모습에서 벗어나 촌민들이 안거락업하는 ‘무릉도원’으로 되였다.

대황구촌에서 걷노라면 눈앞에 펼쳐지는 깨끗한 농가뜨락, 촌민들의 행복에 넘치는 미소가 깊은 인상을 준다. 이 미소에는 새로운 생활에 대한 만족이 담겨있고 미래에 대한 동경이 깃들어있으며 더우기는 촌주재 제1서기 우연래에 대한 긍정이 담겨있다.

새집 구들에 앉아 웃음꽃을 피우고 있는 왕소운과 그의 안해.

◆정원경제로 빈곤호를 부축하여 일어서게 해

지난 세기 60년대, 산동에서 온 한패의 사람들은 산해관을 넘어 안도현에 이사를 왔고 인적이 없는 황구령에서 황무지를 개간하여 대황구촌을 일떠세웠다. 비록 그들이 고생을 견뎌내고 부지런히 로동을 했지만 해발이 높고 무상기가 짧은 등 자연조건은 동북의 흑토지에 대한 그들의 환상을 무정하게 깨부셨다.

“서리가 일찍 내려 농작물이 미처 자라지 못합니다. 농사만 지어서는 손해만 봅니다.” 대황구촌의 장애빈곤호 왕증전이 닭장 안에 모이를 뿌리며 말했다. “그러다가 수확한 량식으로 닭을 키울 생각을 했습니다. 직접 량식을 파는 것보다 수입이 더 많거든요.” 왕증전은 이 ‘량식으로 닭을 키우는 생각’도 우연래의 덕분이라고 말했다.

2016년말, 연변라지오텔레비죤방송국의 간부 우연래는 마을에 주재한 첫해에 촌민들이 한해 동안 힘들게 농사를 해도 킬로그람당 1원씩밖에 받지 못하는 것을 보고 발전사로를 바꿔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여 그는 촌민들이 뜨락에서 닭을 기르고 재배한 옥수수, 콩 등 작물을 사료로 사용할 것을 격려했다. “닭사양은 투입이 적고 기술함량이 낮으며 부녀, 로인이 모두 할 수 있습니다. 년말이면 토닭 한마리를 100여원에 팔수 있습니다. 판로근심은 제쳐두고 저한테 맡기십시오.” 우연래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약속을 했다. 2017년말, 연변라지오텔레비죤방송국의 방조하에 대황구촌에서 닭사양에 참여한 촌민들은 도합 8만여원의 수익을 보았다.

많은 촌민들이 닭사양을 통해 풍족한 명절을 보냈고 이를 본 왕증전의 마음도 움직였다. “할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판로가 없어 돈을 밑질가 걱정이였습니다.” 왕증전은 당시 우연래가 그렇게 많은 닭을 팔수 있을 거라 믿지 않았다고 한다. 촌의 토닭이 전부 팔린 후에 우연래는 판매장부를 들고 왕증전의 집을 다시 찾았다. 이번에 그는 당장에서 닭사양에 뛰여들기로 결정했다. 그 후 량측 고골두괴사를 앓고 있는 왕증전은 자신의 뜨락에서 닭사양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전 현에서 자주적으로 빈곤에서 벗어난 모범으로 되였다.


◆새 세대에 대한 관심과 사랑 촌민들에게 희망을 주어

대황구촌 촌민 석정분과 남편 양화신은 2016년의 여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때 그들의 아들 양대림은 우수한 성적으로 장춘중의약대학에 붙었는데 경축해야 할 이 희사가 오히려 온 집 식구의 근심을 자아내게 되였다. 양화신이 다리가 불편해 무거운 일을 하지 못하다 보니 집안 살림은 모두 석정분 한사람이 푼돈을 벌어들여 유지하는 정황이였다. “버는 족족 쓸 데가 많아 여유라고는 없었어요.” 석정분은 근심걱정으로 밥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가정방문을 하면서 석정분 일가의 정황을 료해하게 된 우연래는 즉각 연변라지오텔레비죤방송국과 련계를 달고 관련 프로를 통해 양대림에게 3000원의 조학금을 마련해주었다. “아들애가 일찍 셈이 들어서 절약해 쓰면 한 학기는 될 거예요.” 석정분이 하는 말이였다. 우연래의 관심과 사회 각계의 방조는 양대림에게 크나큰 고무격려로 되였다. 그는 학업에 열중하고 품행이 훌륭해 학급장으로 발탁되고 학생회 주석까지 했다. 지금 매일 안도현도서관에서 연구생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양대림은 학업성취로 모든 분들의 관심에 보답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새 세대는 대황구촌의 미래이다. 절대로 아이들이 가난으로 인해 학업을 포기하게 해서는 안된다.” 우연래는 촌의 학생이 있는 가정들을 일일이 등록하고 연변라지오텔레비죤방송국에서 조직하는 당원간부 의연금을 통해 루계로 5만 9000원을 지원했다.


◆위험주택 개조로 왕소운 아담한 새집에서 살게 돼

지난날 큰 수해를 입은 대황구촌 촌민들의 집들은 대부분 복구되였지만 여러가지 원인으로 인해 빈곤호 왕소운의 낡은 집은 그대로 남아 촌의 유일한 초가집으로 되였다. 왕소운은 ‘가정형편이 어렵고 나이도 많으니 그냥 이대로 살자.’고 생각했지만 집집이 륙속 아담한 새집에 들자 마음이 서글펐다. 이를 알게 된 우연래는 여러차례 그에게 위험주택 개조 정책을 선전하였고 그로 하여금 결심을 내리도록 했다. 몇달 후 왕소운 부부는 기분 좋게 새집으로 이사했다.

“자, 어서 들어오십시오!” 왕소운은 채소밭에서 금방 따온 딸기를 들고 열정적으로 기자를 맞이했다. 세칸짜리 기와집에는 깨끗한 타일이 깔려있고 화장실에는 변기, 온수기가, 창턱에는 싱싱한 화초들이 놓여있었다. 벽에는 성당위 서기 바인초루가 지난해 그의 집을 찾았을 때의 사진과 함께 안해가 수놓은 ‘백복도’가 걸려있었다. “당의 정책이 참 좋습니다. 우리 백성들의 행복은 아직 뒤에 있답니다!” 왕소운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대황구촌의 그 어렵던 세월은 이미 지나가고 지금의 대황구촌에서는 사람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있으며 황구령에서는 초요사회로 달려가는 노래소리가 울려퍼지고 있다.

  갈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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