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 패기로…그땐 무섭지도 않았지”
해방전쟁, 항미원조 참전 로군인 김봉수옹

2020-10-22 09:39:26

김봉수 로인

14일, 해방전쟁과 항미원조에 참가한 적이 있는 로군인인 연길시 김봉수(90세) 로인을 만났다. 연길시 북산가두에 살고 있는 김로인은 온화한 말소리에 인상이 매우 부드러웠다.

김봉수 로인은 1947년 17세 나이에 도문에서 참군, 군인운전사로 해방전쟁에 참가하여 물자를 운수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1950년 11월, 그는 중국인민지원군 자동차44퇀에 편입되여 항미원조에 나갔고 후근 전투물자 운수임무를 맡게 되였다.

낮에는 적들의 비행기 공격과 감시가 이어지다 보니 주민들의 집 옆에 차를 세워놓고 벼짚으로 공중에서 잘 보이지 않게 위장하기도 했다.

김봉수는 물자운수를 다그치기 위해 날이 채 어두워지기 전부터 적군의 비행기를 피해 자동차를 몰고 운수를 시작했다. 칠흙처럼 어두운 밤에 꼬불꼬불한 산길을 달리느라면 도정신을 해야 하고 포격으로 파손된 곳이 많아 위험할 때가 많았다. 특히 밤중에도 적들의 비행기가 뜨군 했는데 그럴 때면 감시를 피해 자동차라이터를 끄고 달려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도 자다가 간혹 전쟁할 때의 기억이 떠오를 때가 있소. 그럴 때마다 다시 잠들지 못하기도 한다오.” 어느 한번 적군의 비행기 공격에 조수석에 앉은 전우가 다리에 총상을 입었다. 공중공격을 피해 황급히 차를 돌려 전우를 병원에 이송하고는 치료상황을 지켜볼 새도 없이 다시 운수임무에 뛰여들었다. “그 전우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지금도 모르오.”라며 김봉수 로인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전날 같이 식사하던 전우가 이튿날이면 3분의 1이 줄어들기도 하는 험난한 전쟁터에서 김봉수는 희생된 전우들의 몫까지 짊어지고 더 결사적으로 운수에 매진했다.

김봉수는 목숨을 내걸고 남들이 하루 한번 운수할 때에 두번, 세번 물자를 날랐다. “그때는 무섭지도 않았지. 20세의 패기로, 그리고 결혼도 하지 않은 홀몸이라 두려울 것이 없었소.”라고 그 시절을 회억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여러차례 위급상황을 극복하며 무사고를 기록한 김봉수는 뛰여난 표현으로 1951년 10월 대공을 수여받았다. 그는 “우리를 모아놓고 페기된 금광 동굴에서 표창대회가 열렸소. 중국 료리사가 와서 료리를 해주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먹은 볶음료리가 너무너무 맛있었다오.”라고 말하며 흐뭇한 표정으로 대공 표창장을 보여주었다.

1953년, 김봉수의 부대는 중국에 돌아왔다. 제대 후 그는 도문시 석현종이공장 소방대에 배치받았고 주공안국 소방대대 대대장직에서 퇴직했다.

퇴직 후 그는 간부휴양소를 다니면서 학습을 견지하였는가 하면 당구, 촬영, 문구 등 취미생활도 즐겼다. 몇년 전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기도 했다.

“지금 취미생활을 즐기면서 남부럽지 않게 잘살고 있기에 더 바라는 게 없다.”는 김봉수 로인은 “사회가 좋아 큰 근심걱정이 없이 편안하게 만년을 즐기고 있다.”며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글·사진 한옥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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