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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성행되는 대표적민속놀이

조선민족 민속널뛰기의 유래

  • 2011-04-29 08:31:28
놀이란 인간의 생존과 관련된 활동이나 “일”에 해당하는것을 제외한 모든 신체적, 정신적 활동을 가리킨다. 인류의 탄생이래 모든 민족, 모든 개별인간은 누구나 놀이를 즐겨왔고 우리 선조 또한 생활속에서 독특한 놀이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왔다.
민속은 한 문화권내에서 다수가 향유하는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문화이다. 여기에는 사상, 종교, 철학, 예술, 구전, 풍속, 놀이, 축제 등의 정신문화와 의식주를 포함한 각종 문화재, 생산양식과 생산도구, 경제체계 등의 물질문화도 포함된다.
민속놀이는 인간의 여러 행위와 놀이중에서 민간에서 발생하여 민간에 전해내려오고있는 놀이를 말한다. 이러한 민속놀이는 일정한 때와 특정한 장소라는 제약성을 지니며 특정민속놀이는 세시와는 관계없이 계절의 운행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성을 갖는다.
우리 민족 녀성들의 민속전용놀이인 널뛰기는 지레대원리를 리용한 우리 민족의 디딜방아에서 유래되여 우리 민족 녀성들의 놀이로 음력 정초를 비롯해 단오, 한가위 등 큰 명절에 행해졌다. 널뛰기의 기원은 알수 없으나 전설에 의하면 높은 담장속에 갇힌 녀인들이 남편을 보기 위하여 한 녀인이 다른 한 녀인을 꾀여 널뛰기를 하였다는 말이 있다.
널뛰기의 기원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수 없으나 고려시대부터 전승되였을것으로 학자들은 추측하고있다. 고려시기에는 녀성들도 기마나 격구를 하였다는 기록에 미루어볼 때 그 가능성은 충분하다. 조선조의 후기에는 유교적사상으로 녀성들의 나들이마저 금기되였으나 “처녀시절에 널을 뛰지 않으면 시집가서 아기를 낳지 못한다 하여 힘차게 널뛰기를 시켜서 시집을 보냈다”고 하는것처럼 방안에만 갇혀있던 부녀자들이 마음껏 뛰고 즐길수 있는 대표적인 놀이였다. 또한 전설에 의하면 높은 담장 저편에 갇힌 옥중의 남편을 보려고 그 안해가 다른 죄인의 안해를 꾀여 둘이 널뛰기를 하면서 그리운 남편의 얼굴을 엿보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옛날 집 담장안에서만 지내던 녀인들이 이 놀이를 창안하여 높이 올랐을 때 담장밖의 세상풍경과 남자의 모습을 훔쳐보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설이나 추석, 또는 5월 단오 등 명절에 주로 녀성들이 즐기던 민속널뛰기는 길이 2~2.4메터, 너비 20센치메터, 두께 5~7센치메터 가량의 널판자를 짚단이나 가마니로 고이고 두 사람이 량쪽에 올라서서 널이 평형을 이루도록 조절한후 한사람이 뛰여 올랐다가 내리면서 발을 구르면 그 힘의 반동으로 상대방이 공중을 뛰여오르는 놀이로 그 높이는 2~3메터에 달하기도 했으며 널뛰기를 하다가 발이 널판자에서 떨어지는 사람은 다음 사람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규칙도 있었다.
일본의 오끼나와현(冲绳) 류뀨(琉球)에 전승된 판무(板舞)가 널뛰기와 류사한것으로 알려지고있다. 널뛰기놀이는 도판희(跳板戏) 또는 판무(板舞)라고도 해서 고려시대의 녀자들의 놀이로 퍼져서 해외에 전해진것으로 알려져있다. 1792년 중국 청나라 사신인 서보광은 청나라 고종 건륭 57년(1972년)에 책봉사로 류뀨에 갔었다. 《중산전신록(中山传信录)》은 그때 류뀨국에서 보고 들은것들을 기록한 류뀨려행기록이다. 서보광이 일본의 오끼나와견문을 기록한 《중산전신록》에 나오는 판무가 곧바로 조선반도와의 문화적교류를 통하여 전파된것으로 추정된다.(《중산전신록》 원문 생략)
이에 대한 유득공의 경도잡지와 최남선의 연구에 의하면 고려말부터 조선 중기까지 류뀨국과 빈번한 교류에 의한것으로 추측되지만 그 원류에 대하여서는 확실치 않은것으로 알려지고있다.


김영웅(연변대학 체육학원 교수)
성금환(연변대학 체육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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