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라이프

이딸리아인이 꼽은 세리에A 전설의 스타들

이딸리아 사나이 알베르토가 들려주는 축구이야기

  • 2017-07-24 16:18:11

이딸리아 축구 력사에 대해 알기 위해서 인터넷과 위키피디아 검색, 세리에A의 력사를 기록한 자료를 찾는 것은 최고의 방법이 아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전국에 산재한 수많은 바(bar : 까페)에서 이딸리아 남자들이 커피를 마시며 신문도 읽고 축구 이야기, 특히 이탈리아 축구사의 진수에 열을 올리며 하는 토론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바에서 세리에A를 비롯하여 챔피언스 리그, 해외 축구 등 지난 경기와 축구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나 축구팬들이 커피 한 잔에 곁들이기 가장 좋아하는 주제는 뭐니뭐니해도 이딸리아 축구와 세리에A의 력사적인 선수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사실 선수들이 은퇴하면 그들의 명성은 사그라들기 마련이고, 전성기처럼 관심을 받고 기억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필드를 떠난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오늘날까지 축구팬들의 기억과 마음속에 남아있는 거장들이 있다. 기본적으로 축구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구단을 제외한 다른 팀에는 비우호적이며 배타적이지만 그 누구도 싫어할 수 없는 축구계의 전설들이 있다. 어떤 팀에서 뛰었는지와 관계 없이 이 전설의 스타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항상 사랑과 존경을 받는다.

이딸리아 사람들 마음에 항상 남아있는 세리에A 력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들은 누구일까? 모든 대회에서 우승했거나 평범한 선수들이 가지지 못한 축구 스킬이나 능력을 보여준 세리에 A 전설이 된 영웅들을 떠올려 보고자 한다. 80년대 이전에 활약한 발렌티노 마촐라, 가에타노 시레아, 잔니 리베라 등과 같은 전설의 선수들의 경기를 내눈으로 직접 볼 기회도 없었거니와 바에서 커피 한 잔 할 때도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힘들기에 조심스럽게 제쳐두고자 한다.

“황제 프란츠” 프랑코 바레시

1977년 17세에 세리에A에 데뷔해서 22세에는 주장이 되였고, 1997년 37세로 은퇴할 때까지 AC밀란과 축구인생을 함께 했다. 중앙 수비수를 맡고 있는 이딸리아 젊은 축구선수들에게 프랑코 바레시는 최고의 롤모델이다. 또한 프랑코는 꼴 문 앞에서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선수로 성장하기 위한 살아있는 교과서이기도 하다.

프랑코는 15세 때 그의 형인 주세페 바레시와 인터밀란 입단 테스트를 보았다. 그러나 인터밀란은 그의 형 주세페만을 발탁했고, 프랑코는 AC밀란 입단테스트에 도전하게 된다. 두 번의 락방 뒤 세번 째 시도에서 드디어 발탁되였다. 이는 인터밀란 력사상 가장 큰 실수였다. 프랑코 바레시가 얼마나 많은 우승컵을 거머쥐였는가. 이탈리아 리그 6번 우승, 챔피언스 리그에서 3번, 인터콘티넨털컵에서 2번,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3번, UEFA슈퍼컵에서 2번의 우승뿐만 아니라 FIFA 월드컵에서는 1982년 이탈리아의 우승, 미국에서 개최된 1994년 월드컵에서 준우승, 1990년 월드컵에서는 3위를 차지했다. 프랑코 바레시는 파올로 말디니와 함께 력대 최강의 수비수로 일컬어진다. 196경기에 출전하면서 단 23골만 상대방에 내주었으니 말이다.

-1부-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