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세계대전중에도 축구를 계속한 리유

2021-01-17 21:05:53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유럽에서 축구는 2020년 3월 중단되였다. 영국의 프리미어리그(EPL)도 3월 13일 리그를 멈춰세웠다. 이에 많은 언론은 “2차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영국과 유럽에서 축구가 중단되였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비록 정상적인 리그는 아니였지만 전쟁중인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영국에서 축구 경기가 진행되였다. 이들은 전쟁중에도 축구를 왜 계속했을까?

1940년 런던에서 열린 아스널과 찰튼의 경기 모습. 독일 공군기를 대비해 공습 감시관이 하늘을 주시하고 있다.

1939년 9월 1일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뽈스까를 침공했다. 이에 뽈스까와 군사동맹을 맺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는 이틀 후인 9월 3일 독일에 선전포고했다.

하지만 뽈스까 침공으로 발발한 2차세계대전 초반에는 련합군과 독일군 사이에 전면적인 충돌은 거의 없었다. 주력부대를 뽈스까 침공에 투입한 상황에서 독일군은 련합군과 전쟁할 생각이 없다는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영국과 프랑스도 독일과의 전면전을 우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서부전선에서 련합군과 독일군의 ‘기묘한 고요’는 1940년 5월까지 이어졌다. 이 기간을 전쟁답지 않은 전쟁이라 하여 흔히 ‘가짜 전쟁’이라 부른다.

영국의 선전포고와 함께 영국축구협회는 풋볼 리그와 FA컵을 중단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전쟁이라는 공포 속에서도 축구가 민간인과 군인 사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간주해 경기가 계속 열리길 희망했다. 이에 중단된 풋볼 리그를 대신해 전시 리그가 창설되었다.

전시 리그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경기당 80킬로메터의 이동제한을 받았다. 이에 풋볼 리그는 1, 2, 3, 4부 리그로 나눈 디비전 구성을 페지하고 지역별 리그를 새로 구성했다. 전시 리그의 첫 시즌인 1939~40년 풋볼 리그에 속했던 82개의 클럽은 10개의 지역 리그로 분배되였다.

아울러 전시 리그 초반에는 경기당 8000명의 관중만 입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인원 제한이 무의미할 정도로 초반의 경기들은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1940년 5월 독일군이 서부전선에서 베네룩스 3국을 점령하고 프랑스로 진격하면서 ‘가짜 전쟁’은 막을 내렸다. 6월 프랑스의 덩케르크에서 30만명이 넘는 련합군은 거의 모든 군수물자를 버리고 간신히 탈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 격화될수록 전시 리그의 인기는 올라갔다. 경기당 관중수 제한도 해제되였다. 전쟁의 공포 속에서도 1940년 6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풋볼 리그 전쟁컵(전시에 FA컵을 대신한 대회) 결승전에는 4만명이 넘는 관중이 모였다. 특히 며칠 전 덩케르크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상당수의 군인도 이 경기를 관전하면서 영국 국민에게 희망을 전해주었다.

히틀러는 “독일은 나폴레옹이 가지지 못했던 공군이 있다.”며 영국 침략에 자신감을 보였다. 독일 공군은 1940년 9월부터 영국의 주요 도시와 산업시설을 공격하는 영국 대공습을 감행했다.

하지만 처칠의 영국 정부는 대공습이 시작된 이후 일요일 축구 금지령을 도리어 해제했다. 축구를 통해 국민의 사기 진작에 나선 것이다. 1941년 열린 풋볼 리그 전쟁 컵 결승전에는 대공습 기간인데도 불구하고 6만명이 넘는 관중이 웸블리에 모였다. 결국 1941년 5월 독일 공군의 대공습은 실패로 끝이 났다. 히틀러는 영국 상륙작전을 포기하고 로씨야로 관심을 돌렸다.

영국에서는 전시 기간 총 784명의 프로 축구 선수들이 군에 입대했다. 참전 선수를 가장 많이 배출한 클럽은 울버햄튼(91명 입대)이였고 리버풀(76명 입대)이 그 뒤를 이었다. 이에 리그는 ‘초청 선수’라는 제도를 도입하게 된다. 그래도 클럽들은 여전히 선수들이 부족했고 많은 경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전시 리그의 경기력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무적의 팀도 없었고, 중요한 라이벌전도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90분 동안만이라도 전쟁의 고통을 잊기 위해 인생을 다시 한번 즐기기 위해 축구장을 방문했다.

전쟁 중에 영국만 축구를 한 것은 아니였다. 독일과 화란 등에서도 축구는 중단되지 않았다. 독일에서는 심지어 항복 선언을 하기 보름 전에도 경기를 벌였다. 화란 사람들은 식량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얼마 남지 않은 감자 등을 경기장 티켓과 바꿔 축구장에 갔다. 마찬가지로 1차 세계대전 중에도 축구는 유럽에서 중단되지 않았다.

따라서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사실상 모든 유럽 프로 축구가 페쇄된 것은 력사상 처음 있는 일이였다. 2021년 1월 현재 바이러스가 다시 극성을 부리며 리그 중단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많은 사람은 리그를 쉽게 중단하지 않는 리유로 TV 중계권료 등 경제적인 리유를 꼽는다.

하지만 리그를 중단하지 않는 진짜 리유는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 전시 리그가 그랬듯이 코로나19로 지친 우리에게 축구는 평소보다 더 중요한 걸 제공하고 있다. 바로 희망이다.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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