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시 계주구 찬령묘 렬사릉원은 초목이 울창하고 렬사 묘비가 엄숙히 서있으며 추모하러 온 관광객들의 발걸음은 가볍고 표정은 엄숙하다.
섬서성 포성현에 위치한 포삼 옛집에는 그가 부모에게 쓴 편지 한통이 진렬되여 참관자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소국생은 항일전쟁시기 정치사업일군의 모범으로 손색이 없다.” 당시 신사군 제1지대 사령원이였던 진의는 ‘모범 정치사업일군 소국생을 추모한다’는 글에서 이같이 지적했다.
북경 서남쪽 깊은 곳는 거센 물결 굽이치고 천길 벼랑이 솟았는데 방산, 래수, 탁주 세곳이 이곳에서 린접한다. 80여년 전 평서항일근거지의 간부와 군중들은 이 높은 산과 격류 속에서 투쟁했다.
산서성 진중시 태곡구(원 태곡현) 동남부의 산꼭대기에는 한 마을이 있는데 원래 이름이 풍자령촌이였으나 풍자령전투에서 희생된 마정부 렬사를 기념하기 위해 마정부촌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그는 청화대학 학생으로서 민족의 생사존망이 위기에 처했을 때 거리에 나서 항일구국을 웨쳤다.
어머니 허여매의 묘를 해남성 해구시 금우령 해남도해방전역렬사릉원으로 옮긴 이래 84세의 부여래는 시간만 나면 이곳을 찾는다.
광동성 매주시 흥녕시 대평진 상대당촌에는 산과 강을 끼고 있는 청나라 때 지은 집이 있는데 이 집이 바로 혁명렬사 황문걸의 생가이다.
청해성 해동시 민화회족투족자치현 렬사릉원에서 시민 송녀사는 력사사진과 문자소개를 통해 항일영렬 마등운의 사적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
여름날의 성도시 인민공원은 초목이 우거지고 해빛이 찬란하다.
산동성 유방시 림구현 동성가두 두가와촌에서 ‘무림장군(武林将军)’ 두래경의 항일사적은 가가호호에 알려졌을뿐더러 《림구현지》에도 기록되여있다.
“이 머리는 자를 수 있지만 모욕할 수 없고 이 몸은 굽힐 수 있지만 꺾을 수는 없다.” 6월 30일, 항일장령 진중주의 사적을 각색해 만든 회극 《포연을 불태우다》가 그의 고향인 강소성 염성시 건호현에서 상영됐다.
중경 만주의 위영상은 자신의 일생이 생면부지의 쏘련 조종사와 밀접하게 련결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 조종사가 바로 그레고리 쿠리센코이다.
귀주성 삼도현 혁명렬사릉원의 산꼭대기에는 푸른 송백나무 사이에 기념조각상이 우뚝 서서 먼곳을 바라보고 있다.
1940년 8월, 충성으로 조국에 보답하며 항일구국의 일선에서 분투하던 경애화교련합총회 청년이 일본침략자의 총탄에 쓰러져 소중한 생명을 바쳤다. 오늘날 그가 우리를 떠난 지 이미 85년이 지났지만 당은 그를 잊지 않고 경애인민들도 그를 잊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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