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넘어 중국 항전을 지원한 국제 공산주의전사 뻬쮼

2025-08-15 08:44:27

한여름에 태항산은 초목이 우거지고 생기로 차넘친다. 하북성 래원현 왕안진 은산구촌에 위치한 뻬쮼전지수술실 전시관에서 100명의 중소학생이 한창 연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학생들은 유적지, 문물과 사료 등을 참관하면서 뻬쮼이 당년에 어떻게 항일전선에서 부상자를 치료했는가를 직관적으로 느껴보았다. 뻬쮼전지수술실 전시관 옆에는 10평방메터도 안되는 작은 절이 잘 보존되여있는데 이곳이 바로 뻬쮼이 당년에 부상자를 치료한 전지수술실 옛터의 하나이다.

1938년, 화북지역의 항전 형세는 매우 심각했다. 중국공산당이 령도하는 진찰기항일근거지는 적후 항전의 최전방에 처해있었으며 전쟁이 빈번했다. 당시 팔로군은 무기장비가 락후하고 의료조건이 결핍하여 많은 부상자들이 제때에 구급치료를 받지 못했다.

바로 이런 배경에서 뻬쮼은 산과 바다를 건너 중국에 와 항전을 도와주었다.

뻬쮼은 카나다 공산당원으로서 유명한 흉부외과 전문의이다. 1938년 1월, 카나다공산당과 미국공산당의 파견을 받고 그는 카나다-미국 중국지원 의료대를 인솔하여 연안에 도착했으며 항일전선에 나가겠다고 제기했다. 같은 해 6월, 뻬쮼은 진찰기항일근거지에 도착해 군구위생고문으로 있으면서 수술대를 전선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설치하자고 창조적으로 제기했다.

뻬쮼의 도래는 의사와 약이 부족하던 진찰기항일근거지 군민에게 눈 속에서 숯을 보내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진찰기군구 후방병원에서는 뻬쮼은 한달 동안에 무려 147명의 부상자를 수술했고 광령도로 매복전에서 련속 40시간 동안 71건의 수술을 진행했다. 기중항일전선에서 그는 4개월 동안 750여킬로메터를 전전하며 전지수술을 315차례 진행했다. 그는 또 제때에 치료경험을 총화하고 항전실천과 결부된 의학전문서적을 편찬하여 팔로군 의료일군의 전지구호 수준을 신속히 제고시켰다.

1939년 10월, 일본군은 북악구항일근거지에 대해 겨울철 ‘대소탕’을 감행했다. 뻬쮼은 결연히 귀국 일정을 연기하고 전투 일선에서 부상자를 치료했다. 이번에 뻬쮼은 수술대를 래원현 왕안진 손가장(현재 은산구촌에 속함)의 작은 절간에 설치했다. 당시 이 작은 절간을 선택한 것은 전선과 가까워 부상자를 치료하기 쉬웠던 것과 절간이 마을 밖에 있어 촌민들이 적들의 폭격을 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였다.

전쟁상황이 격렬해지면서 왕안진 거점에 있던 일본군이 손가장을 향해 진격해왔다. 갈수록 격렬해지는 총소리 속에서 뻬쮼은 마지막 부상자를 위해 수술을 마친 후에야 철수했다. 고도로 긴장된 상태에서 그는 손가락이 부주의로 긁혀 상처가 났으며 구급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또 치명적인 감염을 받았다. 1939년 11월 12일, 위대한 국제 공산주의전사 뻬쮼은 하북성 당현 황석구촌에서 서거했다.

이 소식을 들은 당현 사람들은 비통을 금치 못했다. 바로 그해 6월말, 기중전선에서 순회의료 임무를 완수한 뻬쮼이 의료대를 거느리고 당현에 왔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발에 생긴 감염으로 진찰기군구 사령부 주둔지인 당현 군성진 화가장(지금의 화가장촌)에서 휴양했다.

오늘날 당현 뻬쮼기념관에 전시되여있는 진귀한 사진들과 실물 전시품들은 방문자들에게 그 잊을 수 없는 력사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년간 기념관은 전문전시회를 개최하고 연구활동을 전개하는 등 방식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뻬쮼의 이야기를 료해하고 그의 위대한 국제주의 정신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신화사 기자 소개양

来源:延边日报
初审:南明花
复审:郑恩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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