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흔적을 옛날 사진과 문물에 담았다

2023-11-06 08:32:15

도문시공신창잡화점은 옛날 사진과 문물로 풀어낸 우리네 추억으로 새롭게 태여났다.


우리 지역 문화관광분야에는 어떤 관광상품이든 우리의 력사, 문화 자산들이 관광대상에 포함되여있다. 올해 5월에 새롭게 단장을 하며 관광객들의 필수 탐방지로 된 도문시공신창잡화점은 그런 의미에서 더욱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이곳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가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도문시 국경로 139-9번지에 위치해있는 도문시공신창은 동북이 일본에 함락되였던 시기인 1923년에 지어진 도문 경내 유일한 금융 및 상업 건물로 도문시의 금융 및 상업 발전을 보여주는 건물인 동시에 일본 침략자들의 범죄증거중 하나이기도 하다. 당시 공신창은 조선, 로씨야, 일본 상품을 취급하고 중국의 차, 도자기 등 특산물을 수출하는 것을 주로 했다. 당시 국경 무역상품거래의 중심지였던 셈이다. 그리고 100년이 흐른 지금 이 건물은 력사, 과학, 예술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더불어 도문시의 금융 및 상업 발전 연구에 중요한 증거를 제공하고 있으며 2016년에 공신창잡화점 건축유적은 주급 문물보호단위로 선정되였다.


올해 제2회 연변 필수 탐방지로 선정된 공신창에 이번 추석, 국경절 련휴기간 하루 평균 1만여명의 관광객과 시민들이 찾아들었다.

공신창에 들어서면 100년의 력사가 느껴진다. 이곳의 오래된 물건들과 옛날 추억이 담긴 사진으로 도배된 사진전시벽은 도시의 발전력사를 보여주며 도문 시민들의 100년의 감정을 담고 있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녹아있는 다양한 민속문물들을 고이 모아두고 있는 공신창에는 과거, 먼 옛날로 돌아가 ‘그땐 그랬었지’ 하며 옛집과 그리운 옛사람 그리고 마음의 고향을 만날 수 있다.


공신창의 1층 홀은 다양한 민속문물과 손때 묻은 옛 물건들을 전시하고 있다. 민속문물은 대부분 농업과 관련된 것들이다. 례컨데 도리깨, 호미, 훑개(벼이삭을 훑을 때 사용하던 농기구), 지게, 워낭, 살포(논두렁에서 사용하던 일종의 삽), 방직기 등이다. 이외 큰 물고기를 잡을 때 사용하던 작살, 포수들이 사냥감을 담았던 망태, 토기 제작시 사용하던 물레 등이 전시되여있다.

거기에 고풍스러운 자태로 빛을 내는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장롱, 소박해보이나 결코 우아함을 잃지 않는 도자기들, 조상들의 일상생활에 사용했던 취사도구들과 아름다운 산천을 담아낸 민속화와 같은 민속문물과 행방전쟁시기와 항미원조시기 병사들이 사용했던 홍색문물 등 값으로 따지기 어려운 희귀 유물이 즐비하다. 거기에 흑백텔레비죤, 전화기와 록음기, 손재봉틀, 각종 시계 등도 시대별로 진렬되여있어 추억에 잠기게 한다.


민속공예에 관련해서는 조선족 녀인들이 시집올 때 가져왔던 경대 및 노리개, 반지, 귀걸이, 안경 등이 전시되여있고 조선족의 주거생활을 립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전시실을 할애하여 주거공간을 꾸며 놓았다.

2층은 추억을 소환하는 옛 사진 전시벽으로 꾸며졌다. 무려 수천여점의 옛날 사진이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됐다.

사진은 도문시, 연길시, 룡정시, 동녕시, 집안시 등지의 시민들에게서 수집해온 1920년부터 1970년까지의 조선족 민중들의 생활사진과 결혼사진, 졸업사진으로 그 시절 우리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어 특별함을 선사한다.

어린시절 나의 추억의 흔적이, 옛 감성을 되살리기에 딱 좋은 사진들이 박물관에 전시됐다. 그 시절 우리의 이야기로 가득찬 사진전시벽은 관광객은 물론 시민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다. 때론 나의 어린시절을 담은 사진을 우연하게 발견하기도 하고 나의 졸업 사진과 마주하기도 한다. 어린시절의 모습을 보며 풋풋한 추억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었고 부모님 세대 결혼사진을 보며 그리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이 옛 사진 전시벽은 시민들이 관람자가 아닌 전시의 주최가 된 셈이다. 내가 쓰던, 부모님이 아껴 보관해온 소소한 물건과 아껴 고이고이 보관했던 옛 사진 그리고 깊숙히 간직해온 이야기가 전시 콘텐츠로 도문공신창에서 되살아났다. 이곳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가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거칠고 가치 없다고 홀대받기도 했던 우리 조상들의 생활유물을 수집해온 이는 공신창 책임자 석군이다. 공신창에 진렬된 문물과 옛 물건 모두가 석군이 수십년을 수집해온 것들이다. 텅빈 건물이였던 공신창은 석군이 애지중지 수집해온 유물들이 들어차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농촌 사람들이 ‘이까짓 거’ 하면서 내다버리는 농기구나 민구들을 정성스레 수집해 보관하면서 갈 데 없어 류랑하던 유물이 그의 집안에 들어찼다. 수만점으로 쌓여가는 귀한 문화유산을 후손들에게 보여주며 가르쳐야겠다고 다짐하면서 그간 수집해온 유물들에서 천여점을 선정해 공신창에 진렬했다.

석군은 “옛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단순한 삶을 살았지만 그 속에서도 삶의 지혜를 쌓아왔습니다. 문물을 통해 그들의 삶을 리해하고 그들의 지혜를 배우고 또 알리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민속자료들이 그 의미와 가치가 밝혀지기도 전에 사라져가고 있는 지금, 우리 주변에 작은 규모라도 민속문물을 보존하고 알리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어 다행이다. 도문에 들린다면 우리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공신창에 꼭 들러보길 추천한다.

  글·사진 신연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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