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갑수건 꾹 눌러쓰고
기운 옷 입고 쟁기 들고
온종일 땅에 머리 틀어박고
농민들과 함께 일해도
시내사람이라며 그들은 곁을 주지 않고
늘 거리를 두었다
-안녕하십니까
-어디로 가십니까
말 떨어지게 바쁘게 내뱉는 그들의 말씀
-아이쿠 닭살이야 얘쌔개
시내 아덜의 말은
-난 언제면 농민이 돼보나?
봄 여름과 버무려 외워도 보고
가을 겨울과도 씨름하며 외워보고
일할 때도 지어 이불 속에서도 수십번 수백번
따라 외워보던 소리
그러던 어느 날 드디여
저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소리
-깨까잠둥?
어디 감둥?
밥 잡샀습둥?
아슴채이꾸마…
-됐다 됐어
마침내 우린 하나로 됐구나
달려와 와락 끌어안으며
높이 웨치는 소리
세월의 한켠에 비켜서서
빙그레 웃음 짓는 바람
농민이 된다고 엄마는 눈물 삼켰지만
농민으로 되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많고 많은 농촌말 배워가며
시내말이 농촌말로 바뀌는 사이
덧없이 훌쩍 날아가버린 청춘
오늘도 혼자서 꺼내보는
푸른 추억 한장이여
시내말과 농촌말 2
농촌에서 집에 올라오자
형제자매들과 한 나의 말들
얼굴 구멍 나겠네
오빤 왜 그렇게 보기만 하오 챈챈보처럼
좀 자기 생각두 말해볼게나
언닌 왜 그렇게 퉁티 없소
막내야 동생아 니 또 도삽 쓸래
이 포재, 도채바
어이쿠
농촌에 갔다 오더니만 너 참 이상하다
찝지비 둥둥 찝지비 둥둥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
통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구나
절레절레 머리 저으며 하시는 엄마의 말씀
집에 왔으니 또 농촌말을 버려야 하나
아까운 청춘과 맞바꾼 이 보배덩어리들
버리자니 아까워 마음 안방문 열고
누구도 모르게 감쪽같이 숨겨놓았다
마음속 깊이 간직한 보석상자 하나
가끔 가다 그 상자를 가만히 열어보면
거기선 언제나 구수한 토장국 냄새가
물씬 풍겨나오고 있었다
도투괴기와 분토재
농촌에 내려간 첫해 설날아침
딱친구 순이가 엄마가 와 밥 먹으란다며
가만히 자기 집으로 불렀다
문 열고 집에 들어서니
가마 속에서 벌렁벌렁 끓고 있는
돼지고기에 감자국수 넣은 한가마 국
와 처음으로 보는 두 눈
감동과 함께 휘둥그래지는데
-열셋이나 사는 젊은이들 세간살이에
이런 걸 어찌 먹어볼 수 있겠나
자 도투괴기 분토재 장물
한사발 푹 자셔보게나
숟가락 쥐여주며 하시는
순이 엄마의 친절한 말씀
처음으로 만포식하고
흐뭇하게 집으로 오며
수없이 외워보고 또 외워본 말
도투괴기 분토재
도투괴기 분토재…
해가 가고 달이 가자
돼지고기 감자국수란 말보다
더 친근하고 구수하게 다가오는 말
도투괴기 분토재
도투괴기 분토재…
그 이름을 부르고 부르는 동안
나는 저도 모르게
서서히 농민으로 돼가고 있었다
엉치산
옛날 개구쟁이시절 어느 하루
친구와 함께 고향의 엉치산에 놀러가는데
범에게 물려갈가 봐 자기도 가야 한다며
기어이 따라오던 익살쟁이 친구 오빠
가다가 문득 쉿 하며 멈춰서더니
사위를 휘둘러보며 하는 나지막한 한마디
너희들 여기 꼼짝 말고 서있거라
오빠가 쉬하고 인차 올게
움직이면 범이 온다
인차 온다더니 코빼기도 안 보여
동동 발 구르며 울음 터뜨리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달려와 하는 엉뚱한 소리
범에게 물려가지 않고 잘들 있었네
엉치산에 앉아 일 보며
누구 엉뎅이 더 크나 몰래 재여보았더니
하 글쎄 엉치산과 내 엉뎅이가 똑같지 않겠니?
호호호
하하하
무서움은 금방 사라지고
배꼽 빠지도록 깔깔 웃어대던 영이와 나
언제나 찾아가면 큰 엉뎅이 들썩이며
얼싸 좋다 한품에 안아주던 산
아낌없이 자신의 모든 걸 다 주며
허기진 배를 채워주느라 애쓰던
아 어머니 눈물겨운 정든 고향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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